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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하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왕하13:1-25)

by 똑똑이채널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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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뼈에 닿자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 Washington Allston  (1779–1843)

 

북왕국 이스라엘의 10번째 왕은 예후였습니다. 그가 이전의 왕들과는 다른 것이 있었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이 그것이죠. 7번째 왕 아합이 수도 사마리아 성읍에 세운 바알 신전을 허물어뜨렸고, 그 바알의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바알의 추종 세력들까지 완전히 진멸시켰고, 바알의 신전을 허물어트린 그곳에 변소를 만들어버렸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예후를 기뻐하사 네 자손이 4대에 걸쳐 왕위를 이어 나갈 것이다하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 시절에 남왕국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여왕 아달랴가 왕권을 거머쥐고 6년간 통치했죠. 그녀는 왕위에 오른 뒤 모든 친손자들까지 완전 처형했죠. 장기집권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 죽음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갓난 아이가 하나 살아남았는데, 그가 바로 아히사야의 아들 요시아였죠. 그는 성전에서 6년간 숨어 지냈고, 7년째 되던 해에 제사장 여호야다와 백부장들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되었죠 하나님께서 7살짜리 어린 요아스를 왕위에 세우신 뜻이 있었죠. 북왕국 이스라엘처럼, 남왕국 유다도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토록 하기 위함이었죠. 그때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위에 세운 후에, 5번째 왕 여호람과 6번째 왕 아하시야, 그리고 7번째 왕이자 여왕인 아달랴가 퍼트린 바알 신전과 아세라 산당들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그 바알의 총 괴수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 맛단까지 공개처형했죠.

물론 북왕국 이스라엘의 10번째 왕 예후도 그렇게 멋진 종교개혁을 단행했어도 막판에는 초대 왕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우상숭배의 길을 걸었고, 남왕국 유다의 8번째 왕 요시아도 그렇게 멋진 종교개혁과 대대적인 성전수리를 행했어도 막판에 아람 왕 하사엘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 맡기거나 기도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치우쳐 성전과 왕궁에 있는 곳간의 금으로 그 왕을 달래 군사를 물리쳤죠. 그 일로 부하 장수의 칼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이했죠. 인생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구하고 듣고자 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10번째 왕 예후의 아들과 그의 손자, 이른바 3대에 걸친 왕위를 이어가는 모습 속에 일어난 일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남왕국 유다의 8번째 왕 요아스의 23년의 통치시절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17년간 다스렸다는 기록입니다. 문제는 예후의 모습과는 달리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길, 다시 말해 초대 왕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우상숭배에 빠져들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이 쳐들어왔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람 나라의 침공을 받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11번째 왕 곧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4절에는 여호아하스가 그 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간구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셔서 그 군대가 물러가게 해주셨습니다. 삶의 어려움이 닥칠 때 부모의 신앙을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호아하스는 그 문제 거리가 사라지자 여전히 초대 왕 여로보암의 길도 돌아서서 사마리아 땅에 아세라 목상을 세워 우상을 숭배케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람군대가 다시금 처들와 결국 기마병 50, 병거 10, 보병 1만 명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의 군대를 진멸시키고 말죠. 그것이 7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50명과 병거 10대와 보병 만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와 같은 폐망의 역사를 쓰게 된 것은 아버지의 길과는 다른 길, 곧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이 아닌 자기 보기에 좋은 길을 택했던 까닭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나 보기에 좋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택하여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느냐 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길을 얼마나 택하며 살았느냐를 더욱 평가하실 것입니다.

본문 10-25절까지는, 11대 왕 여호아하스에 이어 12대 왕 요아스 왕에 관한 행적입니다. 이 요아스는 남왕국 유다의 8번째 왕 요아스와 동명이인이죠. 지금까지 남북의 왕들 가운데 동명이인이 세 명이나 있었죠. 북왕국 이스라엘은 최초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아하시야-여호람-예후-여호아하스-요아스로 이어지고 있고, 남왕국 유다는 최초 르호보암-아비얌-아사-여호사밧-여호람-아하시야-아달랴-요아스로 이어졌죠.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8번째 왕과 남왕국 유다의 6번째 왕이 아하시야’, 북이스라엘의 9번째 왕과 남유다의 5번째 왕이 여호람’,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12번째 왕과 남유다의 8번째 왕이 요아스로 그 이름이 같았죠.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12번째 왕인 요아스는 남유다의 8번째 왕 요아스와 그 행적이 비슷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남유다의 요아스 왕이 7살 때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성전도 완전히 수리하는 선행을 보였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12번째 왕 요아스16년을 통치하면서 어떠했는가? 11절에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고 기록하죠. 그만큼 아버지 여호아하스처럼 악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요아스가 북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이스라엘에 있었는데, 요아스 왕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따랐습니다. 그것이 14절에 기록돼 있는데,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그 엘리사를 향해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할 정도로 엘리사를 의지한 요아스였다는 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사가 죽은 지 1년이 지나 모압의 도적떼가 이스라엘 땅을 괴롭혔는데, 그 도적떼를 보고 사람을 장사하던 자들이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졌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죠. 바로 그와 같은 능력을 요아스가 잘 알고 있었기에, 아람과 대치하던 국면에서 엘리사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사를 향해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하고 의지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어떤 말을 전합니까? 먼저 활을 잡고 동쪽 창을 열고 쏘라고 말하죠. 그리고 화살들을 집도록 하고 그 땅을 치도록 명령합니다. 이때 요아스가 세 번만 치고 그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크게 화를 내 버립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아람을 향해 완전히 정복하고픈 의지와 열정이 식어버린 것을 야단친 것이죠. 그만큼 요아스는 아람을 이기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없었던 것이고, 그것은 곧 영적인 무기력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일깨워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 21절에서는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시체 옆에 던졌는데, 그 시체들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다시금 회생하는 모습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요아스처럼 영적인 무기력감에 빠진 사람일지라도 엘리사와 같은 능력이 임하면 죽은 시체가 살아나듯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다시 말해 죽은 시체란 영적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요아스는 물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자들도 영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영적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지라도, 엘리사의 뼈에 닿아마자 시체가 살아나듯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회복될 수 있고 예전에 지닌 하나님의 열정을 다시금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아침에 죽은 뼈를 통해서도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어떠한 이유로든 삶의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면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무더위 속에 저희들의 심신이 지칩니다.

이 또한 찬 바람이 불 때 심신이 새롭게 되는 것처럼,

저희들의 심령속에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어주시옵소서.

죽은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살아나는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저희들도 성령님의 임재속에 다시금 새 힘을 얻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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