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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요한복음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21)

by 똑똑이채널 202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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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여기에서 유월절이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세 번째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죠. 이른바 온 인류의 대속을 위한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신 그 말씀을 성취하신 일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뒤에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다고 증언합니까? 본문 1절 하반절에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에서 말한 ‘자기 사람들’이란 1차적으로는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2차적으로는 오늘날 주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들을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증표가 이제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17장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가르침을 베풀어주시죠. 그것이 16장까지 이어지고, 이제 17장에는 예수님 당신을 위한 기도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쭉 이어나가고, 18장에 접어들어 이제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시죠. 바로 그곳에서 체포당하신 것이죠 그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 곧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증표를 요한복음 13-17장까지 계속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처럼 제자들을 사랑하시는데, 그런 사랑과 양립할 수 없는 구절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본문 1절에서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런데 본문 2절은 어떻게 기록이 돼 있습니까?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 곧 당신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데, 그 중에 가롯 유다는 오히려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게 과연 주님에게, 그리고 가롯 유다에게 어울리는 상황입니까?

이때가 유월절 전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제자들을 위한 강론이 끝나면 곧장 체포당하고 이어 심문을 받으신 다음에 골고다 언덕길에 올라 십자가에 처형당하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에 반해 가롯 유다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끝까지 그도 사랑하시는데, 그는 예수님을 팔 생각을 골몰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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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그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선 ‘끝까지’는 뜻은 ‘마지막까지’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 마지막까지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끝까지’란 그 시점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끝까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시지만 그 제자들이 어떻게 변해버릴지 모르는 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그랬죠.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지 않습니까? 당신의 살과 피라고 하면서 떡과 잔을 나누셨죠. 그리고 그것을 기념토록 하셨죠.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그런 최후의 만찬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만찬 제정을 우상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기 위해서 최후의 만찬을 기록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죠.

어찌됐든 그 제자들은 주님을 향해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베드로도 주님과 함께 자기 목숨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죠. 하지만 그들은 주님께서 체포당하실 때 다들 각기 제 살 길을 찾아 떠난 자들 아니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의 형편과 상황까지도 내다보면서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이 있는 갈릴리 해변까지 다시금 찾아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오늘 그 중에는 주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길 가롯 유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절의 말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가롯 유다까지도 ‘끝까지’ 믿어보고자, ‘끝까지’ 기다려보고자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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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1절과 2절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구절을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주님을 배반하려는 마음이 독버섯처럼 퍼졌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가룟 유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주님의 마음에 대해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주님께 직접 물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가롯 유다까지 긍휼로 품으신 주님의 심정을 사도 요한이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죠.

놀라운 것은 그런 가롯 유다를 포함한 제자들을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그 모습이 오늘 본문에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식사를 하시던 주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직접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겨 주신 게 그것이었죠. 그렇게 발을 씻겨주신 제자들 중에는 가룟 유다도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제자들을 발을 씻는 동안 베드로와 주님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주님, 어떻게 주님께서 제 더러운 발을 씻어주십니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제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십시오.” “아니다. 이미 목욕을 했기에 발만 씻으면 된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이미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가 오고가는 가운데 주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너희가 깨끗하지만 전부다 깨끗한 건 아니다.”

왜 그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탐욕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가룟 유다를 의식하신 까닭이었죠. 다시 말해 주님은 그 말씀을 통해 가룟 유다에게 직접 경고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질 다른 제자들보다도, 지금 함께 식사를 함께 하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속아 멸망의 길을 걷는 가롯 유다를 더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마음이 21절에 그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여기에서 ‘괴로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타라쏘’(ταράσσω)는 ‘물을 휘저을 때 사용하는 동사’입니다. 바로 그 동사에서 ‘소용돌이’를 뜻하는 ‘타라코스’가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자를 잃어야 하는 주님의 마음 속에는 소용돌이치는 격한 고뇌로 가득찼던 것이죠. 이러한 심령의 소용돌이는 주님께서 가룟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겪으셨던 고통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 위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평소에 당신의 제자들, 당신의 사람들을 대하시는 모습 속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과 식사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발을 닦아 주신 것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주님의 사랑은 오늘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 임마누엘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연약함을 품으시는 그 분의 긍휼하심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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