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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그들의 발을 친히 씻겨 주셨습니다. 이어 가롯 유다는 제 길을 가기 위해 밤중에 밖을 향해 나갔죠. 그때 주님께서는 그 다락방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위해 친히 강론을 펼치셨습니다. 이른바 내가 이제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 그러니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죠.
그때 베드로는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저희 가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했지만 주님은 오히려 네가 나를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만큼 베드로에게는 아직 주님의 그 사랑이 자리하지 않고 있어서 결코 주님의 길을 좇을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4장 말씀 역시 예수님의 제자강론입니다. 아직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그 장소에서 제자들에게 더욱 깊은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1-14절 말씀 가운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어떤 구절입니까?
어떤 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머잖아 가야할 천국 본향을 예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3절 말씀이 가장 깊이 와 닿을 수 있죠. 또 6절 말씀을 깊이 새기는 분들도 있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 이외에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죠. 왜냐하면 주님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크리스천들 가운데, 그 중에서도 조금 열정적인 크리스천들이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면 12-13절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압축이 되죠.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께서 하신 일을 그 사람도 하게 되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된다는 말씀이 하나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께서 행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이 그것이죠.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은혜롭고, 너무나도 좋은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는 크리스천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주님의 그 말씀을 자기 방식대로, 자기 믿음대로 이해해버리는 그런 크리스천들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들도 하게 해 주신다고 했고, 주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능히 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했다면서, 자신이 바라는 일이 그 어떤 일이든지 잘 될 수 있다면서 자기 신념의 믿음을 강화하는 크리스천들 말입니다. 그 일이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인지, 주님께서 원하실 일인지, 주님께서 진리와 생명처럼 여기실 일인지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신앙인들이 어떻게 합니까? 자신이 꾼 그 꿈, 자신이 바라는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고 ‘간구하는 이들’이 있죠. 그야말로 하나님 아버지께 떼를 쓰듯이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 아버지를 협박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말씀 가운데 유독 그 말씀만을 강조하고, 주문처럼 외우면서 기도를 하죠.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하는 그 구절의 말씀 말이죠. 과연 그것이 정상적인 신앙인의 기도요, 믿음의 자세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죠. 그것은 지금까지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자세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주님을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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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님께서는 제자강론을 시작하시면서, 맨 먼저 무엇보다도 ‘아버지께 가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너희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서두에서 꺼낸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설령 나를 부인하고, 나를 배반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직 내 사랑이 너희 안에 깃들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그것으로 인해 실족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죠. 너희들 안에 나의 사랑이 충만하면 충분히 내가 가는 길을 좇아 올 수 있다는 뜻이죠.
더욱이 너희들을 위해 하늘의 처소, 곧 천국의 집을 준비해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있는 곳에 너희들도 있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너희들이 보기 원하지만 나를 본 자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고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요10:30)이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가르치고 전하고 치료한 모든 일들은 아버지께서 보여주시고 일러주시고 가르쳐주셔서 하신 일들이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의로 하지 않고’(요12:49), 홀로, 독단적으로 하신 게 없고 모두가 아버지의 인도하심 속에서 하신 일임을 이미 밝혀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들이고, 내가 한 일은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지금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신다는 것이죠. 바꿔 말해 너희도 내 안에 거할 수 있고, 나도 너희 안에 거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 어떻다는 것입니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으니 여태껏 무슨 일이든지 아버지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했을 때 그 모든 역사가 이뤄졌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 중에서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좋아한다는 12-13절 말씀을 이제는 바르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과연 어떤 주님의 제자들로 살아야 할지 말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무엇을 구하며, 어떻게 기도하며, 어떻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지 말입니다.
본문 12-14절을 주님의 그 뜻에 맞게 재구성하면 어떤 뜻이 되겠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큰 일도 하게 된다, 이것은 주문이나 부적과 같은 말이 아니죠. 그 어떤 일이든 내가 바라는 대로 다 되게 해 주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만사형통을 말하는 게 아니죠. 천국의 보좌 위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신 예수님은, 늘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사셨습니다. 심지어 그 아버지의 뜻을 좇아 십자가에 대속물로 당신의 몸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면, 어찌 우리가 허황된 것을 구하며 꿈꿀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나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구하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 크고 대단한 역사를 주님께서 당신의 뜻 가운데 성취하게 해주신다는 의미죠.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바로 그런 관점으로 주님 보시기에 좋은 길, 주님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구하면 그 무엇이든지 어찌 응답해주지 않겠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키리는 헬라어 ‘피스티스’는 곧 ‘신실’이란 말과 동의어입니다. 믿음이 큰 자는 신실함이 크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은 그 신실함이 적다는 의미죠. 그만큼 큰 믿음으로 구하는 자는 신실함이 큰 것을 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매사에 주님 보시기에 신실함을 좇는 사람이 어찌 주님의 뜻과 상반된 것을 구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 자요,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신실하심을 좇아 구하며 나가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때 그것이 크든 적든 주님의 뜻 가운데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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