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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본 자가 풍성한 식탁과 빈약한 식탁 사이에 놓인 간격을 이해할 수 있다. 맞아본 자가 때릴 수 있는 위치와 맞는 자 사이에 놓인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빚진 자가 빚 없이 떵떵거리는 자와 빚진 자 사이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 지진 속에서 생사를 넘어온 자가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그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이 그런 사람이다.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감당하던 그가 모든 걸 내려놓고 남미 ‘라르쉬’ 장애인 공동체로 들어갔다. 가톨릭 사제인 그는 64세 일기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상처받은 치유자〉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어떻게 치유자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고통당한 만큼 상대방의 고통을 공감하고 보듬어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1∼3)
‘갇히다’는 헬라어 ‘데스모이스’(δέσμιος)는 ‘묶이다’ ‘포로자’(마2:15,막15:6) ‘수감자’(히13:3)를 뜻한다. 공금을 횡령했거나 남의 돈을 갈취했다면 수감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갇힌(엡3:1,딤후1:8,몬1:9) 것이다. 낙심하거나 절망치 않고 자신을 찾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이유도 그것이다. 주님은 상처받은 치유자 바울을 통해 지금도 절망 속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불어넣고 있다.
안인모의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는 하루 한 장의 그림과 음악을 소개한다. 그중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그림이 있다. 퇴행성 근육장애를 앓고 있는 크리스티나가 들판의 자기 집을 향해 기어가는 그림이다. 무명의 와이어스가 그 그림을 내놓자 뉴욕현대미술관은 즉시 구입해 전시를 했다. 왜일까? 그녀의 삶을 통해 절망 속에 빠진 누군가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함이다. 주님은 삶 속에서 상처받은 나를 통해 지금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신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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