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어제 살펴봤던 요한복음 9장의 마지막 절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1)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주님의 평가요 결론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실천한다고 자부하는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영적으로 가장 맹인이었고 헛똑똑이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법의 명문에만 빠진 채 안식일의 참된 본질이요 정신을 놓친 자들이었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명분만 앞세운 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놓치고 말았던 그들이죠.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강조하는 율법 준수는 사람들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폭력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바로 그런 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전해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여기에 나오는 ‘너희’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어제 읽은 9장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죠. 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꼴입니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는데, 너희들이 어리석은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하는데, 너희들이야 말로 실제적인 도둑이자 강도이지 않느냐? 너희들은 양의 문인 내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하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 주님은 강한 어조로 그들을 향해 날을 세우면서 퍼붓고 있는 격입니다. 더욱이 우리 주님은 3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알고 따라간다”고 비유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엉뚱한 관점에 대해 대 놓고 책망하시는 것이죠. 그들은 9장을 통해 살펴봤지만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치료해주신 주님이 안식일법을 어겼다면서 격분했죠. 그렇게 안식일 법을 어긴 자가 어찌 죄인일 수 없겠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죄인의 은덕을 입은 사람, 소경이었다가 주님에 의해 두 눈을 뜬 그 사람도 출교시켜버렸던 것이죠. 더 이상 유대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것은 결국 예수님에 관한 영향력을 차단코자 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을 가만히 놔뒀다가는 예루살렘 곳곳에 예수님에 대한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율법의 본질이나 정신보다도 율법의 명분에만 집착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들이야말로 영적인 맹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거부하는 그들에게 어찌 주님이 그들의 목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출교당한 그에게 다가가 주님이 메시야요 구원자이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육신적인 맹인의 상태로 있었던 게 오히려 더 복이 되었음을 알게 해 주셨죠. 자기 의를 드러내며 눈에 보이는 안식일 법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그 바리새인들보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서 주님의 은혜를 더 갈망하며 살아 온 그가 영적으로 훨씬 더 눈을 뜬 자임을 알게 해 주셨던 것이죠. 바로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을 통해 세 번째 ‘에고 에이미’에 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7절) 그리고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절)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양의 문’이라고 밝혀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 7가지 ‘에고 에이미’가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주님께서 친히 밝혀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군중들에게 그런 육신적인 양식을 통해 영원한 양식, 곧 영원한 생명의 양식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뜻이셨죠. 그리고 두 번째 ‘에고 에이미’는 “나는 생명의 빛이다”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율법에 능통하고 밝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의로움에 갇혀 진리와 생명되신 주님의 빛을 거부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영적인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임을 일깨워주신 것이었죠. 그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이를 고쳐주신 주님께서는 오히려 세상을 보는 자들이 소경이요, 세상을 보지 못한 자들이 진정으로 눈 뜬 자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그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명분에만 치우친 채 율법의 본질과 정신 곧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놓치고 있었기에, 그들이야말로 주님을 거부하는 자요 양의 문이신 주님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들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다”하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이 백성들 앞에 진정한 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주님의 문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 그렇다면 내게로 와라. 내가 베푸는 구원을 받아들이고 내게서 배워야 한다.”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11-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네 번째 ‘에고 에이미’를 표현한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하신 주님의 말씀 말입니다. 구약의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는 말씀이 나오죠.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곧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 있을 때, 그때 부른 고백의 찬양이기도 하죠. 그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라”고 고백을 한 다윗입니다.
왜죠? 목자는 결단코 그 양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달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이 그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목사의 음성을 따라 어디든 갈 때, 그 목자가 그 양을 책임져줄 것을 믿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하고 밝히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소경이었다가 두 눈을 뜬 그 사람이 이제부터 나를 구세주로,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한 결단코 그를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생명 다하기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인도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에 비해 너희 바리새인들은 어떠하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들이야말로 선한 목자가 아니라 삯꾼 목자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양처럼 잘 인도하는 것 같고, 백성들을 잘 돌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일이더냐? 그것이 너희들의 생명까지 걸고 던질 수 있는 일로 섬기고 있는 것이더냐? 그저 너희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통치하고 명예를 얻고자 백성들을 양처럼 이용하고 있는 삯꾼들이 아니더냐? 하시는 말씀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그것은 마치 이 땅의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행태와 같은 격이죠. 그들이 백성들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지만 실은 백성들을 이용한 삯꾼 목자와 같은 격이죠. 이른바 본문 속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 14-15절에 다시금 선한 목자이심을 천명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실로 그렇죠. 우리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십자가 위에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죠. 주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 주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따라가는 것 말입니다. 오늘도 그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요11:1-16) (1) | 2024.06.09 |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10:22-42) (1) | 2024.06.09 |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요9:13-41) (1) | 2024.06.04 |
세상의 빛이로라(요9:1-12) (1) | 2024.06.04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요8:31-59) (0) | 2024.06.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