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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느 교회의 설교 시간에 앞줄에 앉아서 매번 졸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맨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분이 눈에 뜨이니 그 목사님이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습니까?
한 번은 그 교회 목사님이 예배 때마다 졸고 있는 성도님 집에 심방가서 조심스레 여쭤봤답니다.
그때 그 성도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목사님, 정말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송구스럽습니다. 실은 제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예배시간만되면 특히 목사님 설교시간만 되면 잠이 쏟아지네요. 너무 죄송해요.”
그 이야기를 들은 그 목사님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후 목사님은 교인들 중에 예배 때 조는 분들이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지금 불면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계시는 중이네요.”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배 시간에 조는 분이 있다면 말입니다. 할렐루야.
(발췌)1947년 10월 14일입니다.
척 예거라고 하는 조종사가 시험비행기를 타고 당시 일급비밀인 음속장벽을 깨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전에는 비행기가 음속에 가까이 가면 비행기 기체가 흔들리고 심한 요동 때문에 다들 주저했죠..
그런데 처음 음속 돌파 시험을 하면서 로켓 엔진을 달고 엔진에 불을 붙여 점점 속도를 높였습니다.이제 그 속도가 점점 음속에 가까이 다가가자 압박감도 심해졌습니다.
비행기 계기판은 완전히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음속을 넘어섰는데 지상에 있던 실험관측요원들은 찢어질 듯한 굉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에거가 탄 비행기는 기체의 떨림과 동요가 멈추면서 그대로 하늘로 치솟았다고 합니다.
에거는 그때 하늘 꼭대기로 올라간 느낌이었습니다.
하늘은 진주색을 변했고 갑자기 별이 나타나고 달도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태양도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황홀한 우주가 그 앞에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구 위에서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홀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경이로운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치 아기의 배처럼 부드러웠습니다.”
“할머니가 차를 마시며 앉아 있을 정도였죠.”
(깨달음)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길 때 경험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염려와 걱정이 있지만 주님의 함께하심을 온전히 믿을 때 모든 것을 내어맡기는 것 말입니다.
(적용)하나님께는 지금도 주님께 모든 걸 내어맡기는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역배)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쓴 시요 성전에 올라갈 때 다시 말해 성전에 올라가 제사드릴 때 부른 노래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요 강력한 제국을 다스린 절대군주였죠.
솔로몬은 유프라테스강에서부터 블레셋과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 나라들은 솔로몬에게 온갖 조공을 바치며 섬겼습니다(왕상5:1-2).
그를 위해 솔로몬은 외교력을 발휘해 정략적인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 이방나라에서 들인 후궁 700명, 첩 300명을 두고 살았습니다(왕상11:3).
문제는 그녀들이 몸만 온 게 아니라 이방 나라에서 섬기던 신들까지 가지고 왔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은 그녀들이 섬기는 신들까지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세우도록 허락해줬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의 태평성대를 유지파고픈 그의 욕심이기도 했죠.
그 당시 솔로몬의 하루음식은 가는 밀가루 30가마, 굵은 밀가루 60가마, 살진 소 10마리, 풀밭의 소 20마리, 양 100마리였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 그의 식탁에서 매일 올라왔습니다.
이스라엘 각처에 백성들이 수확한 것들 가운데 산해진미를 뽑아 임금님 밥상에 올린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솔로몬은 잠언 삼천 개를 읊조렸고 천다섯 편의 노래를 짓기도 했습니다(왕상5:12).
(깨달음)그토록 솔로몬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치 능력 외교능력 때문이었습니까?
자신에게 조공을 바치는 이방나라의 왕을 달래고 그 왕의 딸들과 결혼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솔로몬의 통치 시대에 태평성대를 누리고 세계의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혜나 명철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개)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원해)여기에 집은 히브리어로 ‘베이트’(בַּיִת)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방주처럼 건물(창6:14,창7:1)의 의미도 없지 않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가족 식구들을 뜻하는 공동체(창12:1,창12:17)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House보다 Home의 개념이 강한 뜻이 ‘베이트’ 곧 집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본문 1절 후반부의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건물로서의 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그 성읍에 사는 사람들 곧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죠.
목포시를 말할 때 그것은 목포시 자체보다도 목포시를 형성하는 시민들을 뜻하는 게 훨씬 강하듯이 말입니다.
(깨달음)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지 않으면 세우는 자가 수고가 헛되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지 않으면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게 헛되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자기 열심가운데 수고하고 땀흘려 가정공동체를 이루고 국가 공동체를 지켜나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불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우리도 내 힘과 내 능력과 내 열심을 믿고 뭔가를 이루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 의탁하며 사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를 위해 한나처럼 기도에 힘쓰고 요셉처럼 사소한 일조차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그 길 위에서 하나님께서 가정도 세워주시고 자녀들의 앞길에 은총을 부어주시고 일터와 사업장도 형통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은총이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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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원해)여기에 ‘헛되도다’하는 단어가 1절에 2번 나오고, 2절에도 다시 나오는데 ‘샤바아’(שָׁוְא)입니다.
‘텅비다’ ‘무가치하다’ ‘쓸모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을 자며 수고한다 해도 쓸모 없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왜요?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지켜주시 않으시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 일하고 밤늦게 일하면서 수고를 거두고 돈을 모아들인다 한들 하나님께 잠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척 예거가 음속비행기에 도전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셔야 그 굉음의 환경을 통과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역본)그런데 새번역성경은 본문의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깨달음)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가 잠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멋진 번역입니까?
이것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짓습니다.
누군가는 양식장에 전복의 씨를 뿌리고 새우의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겠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농부가 잠자리에 들 때도 곡식은 자라야 하고 전복도 새우도 잠을 자는 동안도 자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농부가 잠자리에 자는 순간 가라지가 나거나 벌레나 바이러스가 침투한다면 어찌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겠냐는 것이죠.
건물을 짓는 사람도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건물을 짓는 사람이 그 밤에 도둑이 들어 건축자재를 훔치거나 건물에 균열이 생긴다면 어찌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무역업을 하는 사람도 외국에 물건을 보내고 잠을 자지만 그 사이 해적선이 탈취해간다면 어찌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냐는 것이죠.
(원성)그렇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잠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앞날을 전적으로 주남께 맡기도록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마6:25-34).
(깨달음)주님께서는 우리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해서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의 내일은 그 내일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날의 밤중에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어찌 그 밤에 평안하게 잠들 수 있겠냐는 것이죠.
(원성2)그것은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 역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다’하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그러나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신8:17-18)
(깨달음)무슨 뜻입니까?
내일 씨를 뿌리고 먹을 것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죠.
그것을 뿌리고 심고 성실을 다하되, 그 너머의 영역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네가 네 힘으로 모든 것을 모으고 쥐략펴락하고 엄청난 재물을 모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 밤 사이에 너를 복되게 하지 않으면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죠.
네가 내일의 씨와 계약과 입찰과 물품을 염려하며 잠자리에 든다해도 하나님께서 그 밤에 평안의 복을 주셔야 형통케 되는 게 아니겠냐 하는 뜻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하루 13시간 17시간씩 잠을 자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아이가 내일을 불안해하고 걱정한다면 어찌 엄마 품에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내 인생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걱정하고 염려한다면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불면증도 실은 걱정과 염려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겠니까?
오직 하나님께 내어 맡길 때만 내가 잠자는 동안에도 씨앗도 자라고 전복과 새우도 자라고, 계약도 되고, 낙찰도 받고 보낸물품도 잘 도착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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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시시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척 예거가 음속 비행기 시험에 도전할 때 온갖 굉음을 견디고 이겨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오직 그 심령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 불안과 초조와 굉음 속에서도 평안을 유지하며 나갈 수 있지 않았더냐?”
“다윗의 열 번째 아들 솔로몬이 왕실의 시기와 질투와 권모술수속에서도 왕이 되고 가정을 세우고 왕권이 평안케 된 이유가 무엇이었더냐?”
“그의 통치력이 뛰어나고 외교력이 훌륭해서가 아니지 않느냐?”
“그의 시대가 평안하고 안정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그의 시대를 지켜주셨기 때문이지 않더냐?”
“농부가 씨를 뿌리고 어부가 전복의 씨와 새우 씨를 부리고 무역업을 하는 이가 외국에 물품을 보내도 그 밤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평안가운데 잠을 잘 수 있는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 네 모든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아무리 수고하고 땀흘리며 일한대로 대가를 누릴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아무리 내일 일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한들 너의 내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갓 태어난 아이가 하루 13시간 17시간씩 평안히 잠을 자는 모습을 통해 너도 너의 하나님께 네 삶을 온전히 맡겨야 평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겠느냐?”
(찬양)나 약해 있을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시고
나 소망 잃을 때에도 주님은 내게 오시네
나 시험당할 때에도 주님이 지켜주시고
나 실망당할 때에도 주님이 위로하시네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예화)며칠 전에 ‘평범한 일상이 신비로운 예술세계’라는 목회일지요 새벽묵상글을 카톡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글에 쓴 이우환 작가의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점으로부터〉는 1975년에 그런 작품이고 〈선으로부터〉는 1974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어떤 형상도 보이지 않고 그저 뭔가를 단순 반복한 그림 같지 않습니까?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리겠다 할 정도죠.
그런데 이런 그림 작품 하나가 23억이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우환 작가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나는 것입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에 부엌에서 쌀을 씨는 어머니의 단순반복을 통해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 되면 부엌에 나가 쌀을 씻는 단순반복된 일을 해서 따분하고 답답할 것 같았지만 늘 웃는 모습이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일을 통해 자식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희망을 내다봤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모습을 통해 이우환은 그 작품을 그 당시에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 우리의 일상도 단순반복적인 일들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따분하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고 소망을 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는 이 일을 통해 내 자녀들이 커가고 성장할 것을 믿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마찬가지죠.
내 믿음이 작고 초라해 보이고 무미건조해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나를 향한 소망을 품고 계시다는 것 말입니다.
내가 나를 봐도 실망케 되고 연약해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기대를 잃지 않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기대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넘어지고 실수해도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고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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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최다희의 〈친절한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란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했고, 둘째 아이는 거꾸로 들어서서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죠.
그 후 셋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군인인 남편은 해외 파병의 꿈을 접지 못해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떠났죠.
그 무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들까지 코로나에 걸려 셋 다 집에서 보육하며 지내게 되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죠.
2021년 1월생인 막내는 그 후에야 비로소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해 여유가 생길 수 있었죠.
(깨달음)어떻습니까?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낳지 않으려는 세대에게 아이 셋을 키우는 그 엄마는 가히 국보급 엄마 아닙니까?
세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육아에서만큼은 국가대표선수급로 추앙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녀가 그런 국보급으로 존경받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군인 남편과 살다 보니 그녀의 체력도 강철체력으로 올라와 잘 키운 까닭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그녀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크고 자란 것이죠.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비가 온 뒤 신발이 젖어도 전혀 게의치 않고 놀이에 빠진 그 적응력 말이죠.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빛을 주시듯,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비를 공급해주시듯, 그 아이들도 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을 통해 품고 키우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적용)저와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부모님들은 어떻게 칠남매를 오남매를 다 키웠냈겠습니까?
어떻게 세 자녀를 그리고 두 자녀를 낳아서 키울 생각을 했겠습니까?
부모님의 능력이 슈퍼우먼이기 때문입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의 사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품어주셨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성장케 된 것이죠.
부모인 내가 지쳐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그 밤에 아무런 일이 없도록 품어주셨기에 아이가 열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죠.
내가 슈퍼우먼이요 수퍼맨이었기에 아이를 잘 키운 게 아니라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베풀어주셔야 내가 뿌린 씨앗 내가 맺은 계약 내가 참여한 입찰 내가 보낸 물품들이 잘 해결될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 모든 염려와 걱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주님께서 내가 잠을 자는 밤 중에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원성)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깨달음)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무거운 짐들까지도 온전히 맡기길 원하시는 주님인 줄 믿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편안한 잠을 주실 것이고 내가 잠을 자는 중에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내가 내 자녀들을 양육하고 키워냈다고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해 주세요.”
“내가 슈퍼우먼이요 내가 슈퍼맨이라 아이들 일곱 다섯 셋 둘을 키워낸 게 아니었네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계를 통해 아이들을 품어주시고 밤 사이의 열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셨기에 오늘날 잘 자란 줄 믿습니다.”
“주님. 나의 지혜나 나의 명철로 나의 모략으로 하나님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고백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가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셔서 내가 뿌린 씨앗이 잘자라고 내가 맺은 계약이 잘 성사되고 내가 참여한 입찰이 낙찰되고 내가 보낸 물품이 탈없이 잘 발송되는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나의 나된 것은 모두가 주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고 남은 인생도 오직 주님께 내어맡기며 살게 해주세요.”
(찬양) 하나님은 너를 만드시는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시는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 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이세상 그 무엇 그 누구보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너와 같이 있고 싶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광야에서도 폭풍중에도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과 우리의 자녀들을 세워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양육케 해 주지 않았던들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핏덩이 아이가 젖을 빨고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고 성인으로 성장한 것도,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양육시켜주신 은혜 아니겠습니까?
내가 뿌린 씨앗이 밤 사이 아무런 일 없이 자라는 된 것도, 내가 맺은 계약도, 내가 참여한 입찰도, 내가 보낸 물품도, 밤사이에 잘 해결된 것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복인 줄 믿습니다.
내 자식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고 따라다닐 수 없어도 내가 평안히 잠들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총이 앞으로도 내 삶 속에 가정 속에 자녀들의 앞길 위애 내 앞날의 인속에도 펼쳐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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