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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로마시대의 호민관이었던 그라쿠스 형제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하루는 그 집에 서너 명의 귀족 부인들이 놀러왔습니다.
그들은 차를 마시면서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인 코르넬리아 부인 앞에서 자기들의 보석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걸이는 다이아인데 어떻습니까?”
“이 사파이어 반지는 어떤가요?”
“이 금팔찌는 어떤가요?”
그런데 코르넬리아 부인은 그들이 자랑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중 한 부인이 “코르넬리아 부인, 부인도 아주 좋은 보석이 있을 것 같은데 어서 가져와서 우리에게도 좀 보여주시고 자랑도 좀 하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코르넬리아 부인은 어쩔 수 없이 보석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양팔에 두 아들을 끼고 나왔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 귀부인들은 “아니 보석은 어디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코르넬리아 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보배는 바로 이 두 아들입니다”하고 말이죠.
(깨달음)다이아 목걸이, 사파이어 반지, 금팔찌만 보석이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과 딸이라는 자녀가 진정한 보물이요 보석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녀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일구고 후대의 구원을 엮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예화2)홀리데이인(Holy day Inn)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제재소 직원이던 그는 아침에 출근해보니 자기 책상 위에 해고 통지서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황당하게 해고된 그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직장과 자기 상관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제재소 옆에 똑같은 제재소를 만들어 볼까 생각해 봤지만 자본금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나머지 집을 떠났습니다.
여러 달 동안 방황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진 돈을 모두 써버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자살하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
이때 아내는 남편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한 가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신 적이 없잖아요.”
아내의 말 한마디는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아, 나는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 후 그는 아내와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기도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자기 마음에 있었던 직장과 상사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건축업이 너무 잘돼 5년 만에 제 발로 설 수 있는 조그마한 사업가로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니까 맘에 드는 호텔이 없습니다.”
“좋은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제가 호텔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하고 아주 깨끗하며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되어 오늘날의 ‘홀리데이인’이라는 호텔이 된 비결입니다.
(깨달음)가정에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식이 힘들어할 때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식구들이 격려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적용)러시아에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번씩 기도하라.”
“사랑하는 아들이 전쟁에 나가 전투를 하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하여 하루에 두 번씩 기도하라.”
“그러나 그 사랑하는 아들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미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라”
결혼을 할 때 항해 나가는 것보다, 전쟁에 나가는 것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위해,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자녀들의 결혼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기도의 토대 위에 하나님께 자식들의 집을 아름답게 세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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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오늘 묵상할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성기에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던 절대 군주였죠.
그런 절대 권력을 마음껏 누렸던 솔로몬이 나이가 들어 ‘지혜의 보물 창고’와 같은 잠언과 전도서를 썼습니다.
그가 인생의 경륜 속에서 깨닫고 겪었던 일들을 후대에 전해서 자식과 후손들이 인생에 시행착오 없이 복된 인생을 살라고 쓴 게 잠언과 전도서죠.
그런 것처럼 오늘 읽은 127편도 솔로몬이 겪은 삶의 지혜가 본문의 짧은 구절 속에 압축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원해)여기에 ‘집’은 히브리어로 ‘베이트’(בַּיִת)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도 ‘베이트’(창6:14,창7:1)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버지 집(창12:1)에서 떠나라고 할 때도 그 단어가 쓰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일로 바로의 집(창12:17)에 재앙을 내릴 때도 그 단어를 썼는데 그때는 집이라는 개념보다 식구들이란 개념이 더 강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사로잡혔을 때 그 집에서 기르고 훈련된 318명을 데리고 구하러 갈 때도 그 단어가 쓰였습니다.
그때도 집이라는 개념보다 식솔들이라는 개념이 훨씬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솔로몬이 자신의 집을 세울 수 있는 처지나 가정을 꾸리고 식속들을 세울 입장이 아니었죠.
다윗의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이었지만 다른 형들과 다른 처지에서 태어났죠.
태어나자마자 죽은 자기 형은 밧세바의 불륜으로 태어나 죽었고 그 다음으로 자신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주변에서 입방아를 찌어댔겠습니까?
그런 천덕꾸러기가 어찌 왕위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왕이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가정을 꾸리고 식속들과 민족을 거느릴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셔야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원해) 여기에 ‘세우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나’(בָּנָה)는 ‘새로 짓다’ ‘회복하다’ ‘되찾다’ ‘번성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취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실 때(창2:22)도 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님지와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그것이 가정을 세우는 길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다고 할 때도 ‘바나’가 사용(창30:30)된 이유입니다.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뤄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도 ‘바나’(창8:20)를 사용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금 세운다고 할 때도 ‘바나’(렘24:6, 렘42:10)가 쓰였죠.
(깨달음)그렇기에 집을 세운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단순히 집을 짓는 건축행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가문을 세우는 것이요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물을 얻고 재물을 모으는 것도 그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적용)그러나 그 집은 내가 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솔로몬이 인생 경험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집과 자기 궁궐을 건설해 본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이복형제들의 정치적 도전과 반란도 경험했습니다.
수많은 정치적 모함과 권모술수가 가득한 궁궐에서 왕위에 오른 것은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었죠.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셔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청문회 때 보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이룬 사람들이 황당한 사건들에 연루돼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적인 일을 사적인 일로 이용하려다가 수십 년간 쌓은 명성과 성공이 한꺼번에 몰락하는 모습도 있죠.
그들 스스로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고 하지만 그들의 인생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원성)말라기 1장 4절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열면 닿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 말씀입니다.
인간이 그 위대한 바벨탑을 쌓고자 할 때도 하나님께서 허물어 버리면 한순간 허물어지는 게 인생 탑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하시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도 다시금 세우게 하시는 분입니다.
(전개)그래서 1절 후반부에 뭐라고 솔로몬이 읊조렸습니까?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성’이 의미하는 게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의 지경 곧 공동체의 영역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업과 일터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파수꾼이 아무리 노력한들 적의 공격 앞에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정의 풍요와 안전도, 일터와 사업장도, 나라의 안보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죠.
(깨달음)솔로몬이란 이름은 ‘샬롬’ 곧 평화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의 정치를 잘 해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잘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터와 사업장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솔로몬의 다른 이름은 ‘여디디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삼하12:25)라는 뜻입니다.
다른 형들의 시기와 공격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하나님께서 품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정글의 법칙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것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주셔야 온전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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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수년 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카고에 한 유명 호텔에 하루 투숙할 때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부터 호텔 주방은 분주했습니다.
호텔 최고의 쉐프들의 지휘 아래 수십 명의 주방 직원들은 대통령의 아침 식단에 올려질 다양한 최고 산해진미의 메뉴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대통령이 주문한 음식 메뉴는 달랑 오트밀과 토스트 한 장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밤새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쉐프틀과 주방 직원의 노력과 수고는 허탈감으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는 다르게 헛된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토록 애를 썼는데 낙찰되지 못하고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는데 통과되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그때마다 깨닫는 것은 모든 일이 내 뜻과 내 수고와 내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구나, 하는 것이죠.
그 사실을 본문의 솔로몬이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자녀들과 후손을 세워주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듭니다.
농부가 잘 때도 곡식은 자라야 하는 법이죠.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은 외국에 물건을 주문하고 송장을 보내고 나서 밤에 잠을 잡니다.
내가 잘 때도 무사히 물건이 오고가야 합니다.
그렇듯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의 성취를 내 몫으로 이뤄진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어리석음이 우리를 잠들게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밤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겨야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자신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나의 노력과 수고의 결실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지켜주셔야 우리가 편안한 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정과 사업장과 일터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그 귀부인들이 저마다 다이아와 사파이어와 금팔찌를 자랑할 때 코르넬리아 부인은 자식들이 자랑임을 보여주지 않았더냐?”
“홀리데이인 호텔 창업자도 빈털터리가 됐을 때 아내의 격려와 하나님께 기도한 까닭에 그 인생이 새롭게 출발 수 있지 않았더냐?”
“네 가정도 자녀도 후손도 네가 세우려고 발버둥치면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면 무난하지 않겠느냐?”
“솔로몬도 아버지가 낳은 형제들 속에서 조롱과 경재에 치였지만 그가 가정을 일구고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품어주셨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가정과 자녀들과 후손을 위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해야 하지 않겠느냐?”
“농부가 아무리 씨를 뿌려도 밤사이에 하나님께서 돌봐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아파트를 지을 때 밤사이에 불이 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외국에 물품을 보낼 때 밤사이에 해적선이 탈취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보호해주지 않으면 그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겠느냐?”
“너의 자녀가 항해할 때 군대에 갈 때 결혼해 가정을 꾸릴 때 하루 한 번 두 번 세 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녀들의 가정과 후손과 사업장과 일터를 복되게 세워주시고 견고하게 해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시니 말이다.”
(찬양)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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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현재 미국 노동자의 3분의 1은 프리랜서라고 합니다.
독립계약자 프리랜서 임시직 등 대안적 근로형태 속에 일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도태되면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해고되는 사회죠.
그만큼 우리 자녀들이 고용불안에 떨고 직장실종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늙은 부모에게 기대며 사는 자녀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뺏겨 더 큰 낙오자로 떠밀릴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아빠가 자녀에게 온실에서 자라 약하다고 했지만 앞으로는 자녀가 아빠에게 “아빠는 온실에서 살아서 세상 물정을 잘 몰라요”할지 모릅니다.
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직장을 얻고 가정을 세우고 믿음의 후손을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도록 보호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의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이가봇’의 시대였지만 그 속에서도 한나의 기도를 통해 사무엘을 준비하셨듯이 말입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이 밝아오듯 이 살벌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분인 줄 믿습니다.
(전개)한나의 그 기도처럼 자녀들이 가정을 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로서 그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다가 갑자기 애굽의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아갈 때 얼마나 그 삶을 부정하고 싶었겠습니까?
“이런 내 주제에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냉소주의에 빠지듯 말입니다.
냉소주의가 무엇입니까?
새로 들어간 직장의 조직과 부서의 문화가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 열정을 가지고 바꿔 보려고 하다가 포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꼰대들은 본래 저런 사람들인데 어떻게 바뀌겠어요.”
2003년에 개봉한 영화 〈황산벌〉에는 계백이 백제를 위해 부인과 자녀의 목을 베고 전장에 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계백이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하고 말이죠.
그러자 죽어가는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입은 삐뚫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뒤지는 거이여.”
그 모습 역시 냉소주의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쳐 죽는 게 영광이지 않겠냐고 생각했습니다.
(깨달음)우리의 자녀들이 일터에서 인정받고 가정을 일구고 후손을 이어나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가정을 꾸리는 일이 모두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일로 여길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저 천국만을 하나님의 나라로 여기지 않고 지금 이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로 여기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변한다고 윗 상관이 변하겠어” 이런 냉소주의가 아니라 윗상관이 변하든 변치 않든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성실을 다하는 것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직장에서 인정받게 하시고 더 좋은 반열로 세워주시고 가정을 꾸려 후손을 이어나가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노예로 끌려갔을 때 냉소주의에 빠져 인생을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라는 놈은 쓸모 없는 놈이야?”하면서 생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노예의 삶에도 성실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를 기반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길을 열어주셨고 가정을 꾸리고 국무총리의 반열에 오르는 길로 세워주신 것이었죠.
(내기도)그렇기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하나님.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직업을 갖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가정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는 시대에요.”
“대부분이 프리랜서로 고용불안에 떨고 있고 직장실종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고 인공지능에 밀려나고 있어요.”
“주님. 이럴 때일수록 내 자녀들이 요셉처럼 하나님의 관계를 의식하며 주어진 일에 성실을 다하여 사람을 통해 길을 더 좋은 반열로 세워주시는 은혜를 체험케 해 주세요.”
“그래서 자녀의 인생도 결혼과 가정을 일구는 것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지켜주셔야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해 주세요.”
“그를 위해 부모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더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탁하길 원합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저의 자녀들이 꿈을 갖고 하나님의 소명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믿음의 가정을 세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찬양)하나님은 너를 만드시는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시는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 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이세상 그무엇 그누구보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너와 같이 있고 싶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광야에서도 폭풍중에도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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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지난 인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일터와 사업장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세워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온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솔로몬도 여러 형제들의 시기과 질투 속에서 왕이 될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고 품어주셔서 그런 왕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평안케 살 수 있었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열심히 씨를 뿌려도 밤사이에 하나님께서 자라게 해 주셔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무역업을 통해 외국에 물품을 보내도 밤사이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해적선을 만나지 않고 잘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게 내 수고와 땀의 결실인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로 세워주시고 보호해주셔야 모든 게 세워지고 평안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 하나님께 더욱 기도하고 맡길 때 그런 은총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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