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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의로 모든 것을 행하고 당신 자의로 모든 때를 펼쳐나가는 것 같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자의로 하신 적도, 당신 자의로 모든 때를 주관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 후반부에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무리들에게 그렇게 밝히셨죠. 나는 내 자의로 행하는 게 아니라는 것, “아버지께서 보여주지 않고 행하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자”(요5:19, 30)라고 말입니다.
어제 읽은 7장 8절에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의로 모든 때를 행해 나가는 것 같지만,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 곧 그 동생들이 초막절 명절을 맞이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영광과 권세를 얻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들도 그 덕을 좀 볼 수 있지 않겠냐면서,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록 촉구했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다”(요7:8)고 말씀하셨죠. 거기에서 ‘내 때’란 예수님의 자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때를 말하는 것이죠. 그처럼 예수님의 모든 행함과 모든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대로 행하는 삶이었고, 그 분의 모든 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도해 가시는 때였죠.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들이 요구할 때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동생들이 올라간 뒤에 예수님께서도 곧장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말하시는 예수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죠. 예수님의 동생들이 요구한 그 때는 예수님 스스로의 영광이자 그 동생들의 영광을 위한 때요, 예수님께서 그 뒤에 올라가신 때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때였기 때문에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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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4절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여기에서 말하는 명절인 초막절 다시 말해 장막절을 말하는 것이죠. 그 명절의 ‘중간’이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며칠 동안 초막절을 지키는 것이었을까요?
레위기 23장 33-36절에 이렇게 명령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그런가 하면 신명기 16장 13-15절에서도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초막절의 중간쯤 되었다고 밝혀주고 있죠. 그렇기에 그 1주일 동안의 어느 한 날인게 분명하죠. 그때 예수님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불신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역공을 펼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문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해 비아냥거린 것이었습니까? 이미 요한복음 5장 18절에서 그렇게 증언해주고 있었죠.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친 것,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동등하게 여긴 것, 한 마디로 안식일을 범한 것과 신성모독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놀라면서도, 동시에 편견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이 본문의 15절에서도 동일하게 비아냥거립니다. 15절 하반절에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배우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어디 학교 출신이냐?”하는 뜻이죠. 바울이 자신을 소개 할 때 가말리엘 문하라고 했던 것은 자신의 출신학교를 밝힌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16절 하반절에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본인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들어내려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심지어 좋은 지역을 도구 삼아 자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다른 말로 자기 자신의 배경을 감사하면서, 그 배경이 되어 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높이기보다는 자신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죠.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배경되시는 하나님, 곧 자기 자신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문 18절이 그것입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권위’라는 단어는 영어로 ‘Authority’입니다. 그 어근은 ‘Author’ 곧 ‘저자’라는 뜻입니다. 무의 이야기를 유의 이야기로 글을 통해 창조하는 이를 저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그 책의 권위는 해설가나 평론가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저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사람들에게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성경교사와 같은 랍비들에게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랍비나 서기관들이 성경 저자입니까? 아니죠. 그들은 교사일 수 있고, 해설가나 평론가 일 수는 있지만 성경의 저자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2000년 전 유대인들만의 태도이겠습니까? 아니죠.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 자체보다 설교를 잘하고 말을 잘하는 유명한 목사님이나 부흥강사들만을 더 좇으려 한다면 그들과 똑같은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의 조명 속에서, 말씀 그대로 받고, 읽고, 깨닫고, 삶 속에서 실천하기보다, 그 말씀을 권위 있게 전한다는 목사님이나 부흥강사들을 더 열렬히 추종한다면 말입니다. 심지어 내가 그 유명한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을 유명한 대학출신인 것처럼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어찌 어찌 세속적인 가치관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달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보다 달 자체를 놓치지 않아야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전하는 자들보다 말씀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더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이들을 향해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하죠. 그 날이 평일이든 안식일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안식일을 어기면서 까지도 남자아이의 작은 부분을 칼로 도려내는데, 그 의식 자체를 구별된 하나님의 선민으로 여긴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안식일에도 그런 의식을 거행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게 무엇이 잘못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예수님을 외모로, 출신지로, 살아 온 관습이라는 선입견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 아버지의 말을 전하고, 아버지의 뜻을 좇아 행하고, 아버지의 때를 따라 살아가는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을 공의롭게 바라보라는 주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도 눈에 보이는 외모대로 보려는 연약함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가치관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보려고 하는 연약함들 말입니다. 그것이 어찌 주님을 비아냥거린 유대인들만 바리새인들만의 문제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연약함들이 모두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더더욱 겸손한 마음,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 속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루의 은혜를 구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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