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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면서도, 그는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느냐면서 비꼬았습니다. 이른바 그가 나사렛 촌동네 출신이고, 또 갈릴리의 무식한 배경 속에서 자란 자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칠 수 있는지, 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가르칠 수 있는지, 바로 그것에 대해 놀라면서도 무시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공의로 보는 게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고 공의로, 곧 하나님의 긍휼과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내아이들이 태어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한는 의식을 전통으로 이어받았습니다. 심지어 그 날이 안식일일지라도, 유대인들은 안식일보다도 할례의식을 더 우위에 두면서 하나님의 선민의식을 강화했죠. 그런 그들인데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을 두고서 함께 축하해주고 기뻐하기보다는 안식일법을 어겼다면서 무시했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면서, 신성모독죄를 덧씌워서 죽이려는 마음까지 품었던 그들이죠.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할지라도,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때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3년의 시점인 그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6개월 전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때를 고집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살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분이요, 누구든지 그 분의 정하신 때에 이끌려 살고자 하는 자에게 그런 은혜의 길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제도 말씀을 드렸죠. 내가 주님을 붙잡고 내 믿음의 밧줄로 주님의 포구에 묶어 놓을지라도 태풍이 불거나 거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면 언제 그랬냐 싶게 그 믿음의 밧줄도 풀려나갈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낭떠러지에서 내가 주님을 붙잡는 손은 작고 미미한 어린 아이의 손과 같은 격이요, 오히려 그 큰 아버지의 손길로 나를 끌어주는 게 주님의 손이라고 말입니다. 어린 내가 쟁기질하는 모습을 뽐내고 소에게 이랴 저랴 명령하지만, 실은 내 뒤에 있는 아버지가 그 큰 쟁기의 방향을 정하며 나를 붙들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때가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때, 그 분의 시간표 속에서 움직이는 것임을, 그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일깨워주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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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 25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들 앞에 그 예수님이 나타나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지금 예수님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들이 놀란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예수님이 드러내놓고 활보해도 아무 제제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당국자들, 사정 당국자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으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예수가 그 메시아일 수가 없다고 단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27절에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이 말을 새번역에서는 분명하게 번역해 줍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 사람이 나사렛 촌동네에서 온 사람이고, 지금은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올 때에는 어디에서 왔늕, 아는 사람이 없게 온다는 것이죠. 그것이 유대인들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곧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이 예수는 결코 우리를 향한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28-29절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요, 구원자요 메시아이심을 천명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예수님은 너희들이 나를 알지 않느냐, 하십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수많은 기적과 병든 자를 고친 그 기적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 기적들은 그런 능력들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더냐,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다고 분명하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이 초막절보다 6개월 전 즈음에 행하신 기적, 곧 유월절이 다가오기 전에 디베랴 바다 건너편 산 위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면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하신 그 말씀을 다시금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 30절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하고 밝혀줍니다. 아무리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가 아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죽이려드는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닌듯합니다. 본문 31절입니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시는데, 그 기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리스도 곧 그들을 위한 구원자가 설령 온다해도, 이 사람처럼 대단한 능력을 행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예루살렘의 지도층이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32절 하반절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이른바 체포조를 보낸 것이죠. 예수님을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34절) 예수님은 너희들이 나를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또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죠. 과연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그 날에는 진정으로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른바 초막절이 끝나고 이로부터 6개월이 지나는 유월절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데려가시는 때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상황과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계를 주관하시는 때요, 그것이 가정과 자녀들을 주관하시는 때요, 그것이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때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내 인생의 행해자가 되어 최선을 다하면서 살지라도 더 크신 항해자 곧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께 내 인생의 항로를 내어맡기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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