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음행을 피하기 위해 아내를 두고 남편을 두라(고전7:1-5)

by 똑똑이채널 2024. 5. 15.
728x90
반응형
SMALL

음행을 피하기 위해 아내를 두고 남편을 두라.hwp
0.18MB

 

 

 

 

(설교열기)(예화)결혼을 앞둔 어떤 남성이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이런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고는 불행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상 구석구석을 살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40년을 허비했지만 그런 여성을 찾아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의 나이 이제 70인데, 이 세상에 자네가 찾던 그런 여성은 없었나?”

그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딱 한번 그런 여성을 만났었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었지. 그래서 결혼을 이루지 못한 거야.”

 

(깨달음)자기 눈이 높으면 상대방의 눈도 높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결혼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남자는 현모양처를 원하고 여자는 백마탄 기사와 같은 멋진 남자를 원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게 자기 바람과 자기 주장만 고집하다는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화2)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생명은 생각보다 짧다고 합니다.

미국 코넬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 남녀가 결혼하면 애정을 느끼는 기간이 18개월에서 30개월 정도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단계가 지나면 상대방을 보아도 더 이상 가슴이 뛰거나 손에 땀이 나는 일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허니문’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결혼후 얼마동안은 꿀맛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덤덤해진다는 말이죠.

 

결혼후 3∼4년이 지나면서 애정이 없어서 파경을 맞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결합은 언제까지나 애정만 따질 일이 아니죠.

그 삶을 위해서는 서로를 위한 섬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한 후에는 한쪽 눈을 감고 살라는 말이 있는 것이죠.

결혼생활의 3할은 사랑이고 7할은 용서와 이해라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의 성공은 이해와 용서와 섬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서로 이해하고 허물도 용서하고 또 서로를 섬겨주는데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2천년 전의 결혼은 그런 게 가능했겠습니까?

2천년 전 유대인들도 우리나라처럼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고 결혼도 법적인 울타리의 성생활 정도로 간주하던 때였죠.

더욱이 2천년 전에는 임박한 종말론이 만연해서 결혼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죠.

그러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 성경의 관점은 부부가 한 몸을 이루면서 사는 것이죠.

 

(적용)그렇기에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토대로 2천년 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 시대에는 남녀가 결혼해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가 위해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겨주는 게 가장 중요하듯 말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605319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book-product.kyobobook.co.kr

 

(역배)고린도전서 6장까지는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대립, 그리고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사도바울의 책망과 당부와 권면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부터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도바울에게 서신으로 질문했던 내용에 대한 답변이 나옵니다.

1절을 보면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이라고 돼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도바울에게 질문했던 내용에 대해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7장 1-8절까지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여부와 부부생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7장 8-16절까지는 사별한 사람 곧 남편이든 아내든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 재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한 사람은 이혼을 두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답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답변서를 써 보낸 2천년 전 고린도의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게 중요하겠죠.

그런 배경에 대한 선 이해가 없으면 오늘 본문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고 말기 때문이죠.

 

2천년 전의 고린도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쾌락풍조였습니다.

극심한 성도덕의 문란이죠.

고린도는 거의 평지인데 해발 575m의 아크로 고린도가 있었죠.

목포 유달산은 200m가 넘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고지에 세워진 성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고 그곳의 여사제들은 낮에는 신전을 섬기고 밤에는 고린도시에 내려와 창녀로 살았죠.

그 수가 무려 1천명었죠.

여사제들은 모두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쾌락을 추구했던 것이죠.

 

그런 쾌락주의가 만연케 된 것은 그릇된 철학사조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에피쿠로스 철학이었죠.

인간은 단순한 원자의 결합체이고 죽음은 물질의 해체이기 때문에 공포나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쾌락을 추구하면 된다는 것이었죠.

그만큼 성도덕은 문란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해결책으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그런 성도덕을 문란케 하는 도다른 사조가 있다면 영지주의였습니다.

인간을 영과 육체로 따로 분리해서 이원론적으로 생각한 사조였죠.

영혼은 고귀한 것이고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는 무슨 짓을 해도 높은 차원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쾌락을 추구해도 전혀 죄책감을 가져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쾌락주의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있었습니다.

금욕주의의 뿌리도 실은 영지주의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이 고귀하고 육체는 저속하기 때문에 육체의 본능에 따라서 무슨 짓을 해도 영혼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쾌락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영지주의자들 가운데 영혼은 고귀하고 육체는 저급하기 때문에 영혼의 순결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죠.

그들은 결혼도 하면 안 되고, 내가 만약 결혼했다가 그런 금욕주의에 빠지면, 부부관계를 갖는 것도 죄가 되고, 또 가정을 지키는 것도 죄로 여기는 것이죠.

 

고린도의 세 번째 사회적 배경은 남성 위주의 사회 제도였습니다.

부부지간이라 할지라도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관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에 불과했죠.

 

네 번째 풍조는 임박한 종말사상이었습니다.

종말에는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은 자신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종말이 자신들의 당대에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였죠.

심지어는 사도 바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본문 26절에도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로마서 13장 11절에서도 바울은 임박한 종말론을 갖고 권고한 바가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그것은 당시의 베드로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은 종말의 때를 말하는 것이죠.

 

그렇듯 바울이나 베드로 대부분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당대에 예수님이 재림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종말이 온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게 여길 수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이 종말을 내다보면 진리를 좇아 살 수 있지만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면 모든 것을 무익하고 무용한 것으로 여기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결혼에 대해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또 결혼 결혼했으면 부부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홀아비이고 과부인데 재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냐?

바로 그런 질문들을 바울에게 던졌고 그와 같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일일이 답변을 써 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쓴 다른 서신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절들이 고린도전서 7장에 나옵니다.

6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여기에 ‘허락’이란 헬라어로 ‘슁그노메’(συγγνώμη)인데 ‘관대함’(indulgence)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바울이 하는 말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바울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도 좋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도 자신이 주는 답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절대 진리의 답변이 아니라 고린도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답변임을 밝힌 것입니다.

 

또 1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여기에서는 명령하는 자가 주님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하면서 주님의 절대진리가 아니고 나의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깨달음)이와 같은 내용들을 통해 깨닫는 바가 무엇입니까?

2천년 전 고린도의 상황과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같은 부분도 있고 또 다른 상황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토대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서는 바울의 개인적인 견해도 참조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린도전서 7장을 읽어나갈 때 우리는 본질적인 정신을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6349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book-product.kyobobook.co.kr

 

(본문)이런 선 이해를 갖고서 본문 1-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원해)여기에 ‘가까이 하다’는 헬라어 ‘압토마이’(ἅπτομαι)는 ‘손을 대다’(to touch) ‘달라붙다’(cling to)는 뜻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손을 대고 달라붙는다는 것은 ‘합법적인 결혼’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결혼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남자와 여자가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 거죠,

그것이 바울의 답변인데 과연 그것이 성경적인 뜻이요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18절에 사람이 독처하는 게 좋지 않다고 하면서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 하와를 지어주셨죠.

그리고 서로 한 몸이 되어 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결혼하라고 하셨는데 사도 바울은 왜 남자와 여자가 혼자 사는 게 좋다고 하는 것입니까?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임박한 종말을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일 종말이 오는데 결혼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깨달음)그런데 2절에서는 뭐라고 권면합니까?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권고하죠.

남자나 여자나 결혼하지 않는 게 좋은데 혹여라도 음행의 죄를 짓지 않으려면 남편과 아내를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결혼이 고작 음행을 피하기 위한 수단인가, 아주 동물적인 의미로 격하시킨 것처럼 보일 수 있죠.

하나님께서는 결혼의 의미를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창세기 2장 24절에서 밝혀주셨습니다.

출신도 사상도 배경도 다른 이질적인 인간이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가 먼저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결혼은 크리스천이 참된 삶을 살기 위한 거룩한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하고 신성한 결혼을 사도 바울은 하지 않는 게 좋고 음행을 피하기 위해 한다고 말했는데 왜 그렇게 권면했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죠.

그 당시의 시대 자체가 쾌락주의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쾌락주의에 빠져 있고 영지주의에 빠져서 아무하고 관계를 가져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았던 시대였죠.

더욱이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갖고 있었으니 바울이 그렇게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적용)그렇기에 본문을 통해 우리가 적용할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 시대에도 쾌락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영향도 있고 영지주의 사상에 물든 이들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시대에 임박한 종말론은 그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고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을 믿지만 지금 당장 주님이 재림한다는 임박한 종말론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결혼의 대전제를 신앙생활의 근간으로 여기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삶이 결혼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다른 남자나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는 쾌락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결혼할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그런 동물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한 몸이 되어 사는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결혼의 목적을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출발로서 결혼하여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결혼은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출발점이지 않느냐?”

그런데도 2천년 전 고린도엔 쾌락주의와 임박한 종말론이 대두돼 결혼은 음행을 피하는 수준으로 하고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게 낫다고 바울이 말한 것 아니더냐?”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가 아내를 두고 여자가 남편을 둔다면 그런 결혼생활은 동물처럼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그러니 바울이 권면한 것은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속에서 권고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근간으로 삼아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너의 시대에는 남녀평등의 시대임을 알고 서로 사랑과 이해와 섬김이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결혼생활 18개월에서 30개월만 지나면 꿀이 떨어지던 허니문은 끝나고 갈등의 문이 열린다는 걸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갈등과 다툼을 해소하며 결혼생활을 하려면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는 한 쪽 눈을 감고 이해하고 수용하며 사는 게 최고이지 않겠느냐

주님은 그런 너의 결혼생활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생육하고 번성하는 기쁨을 누리는 너의 가정과 자녀를 복되게 하지 않겠느냐?”

 

(찬양)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며 사는 것을 결혼생활의 첫걸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은 서로가 존중히 여기고 이해하고 수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비록 2천년 전에는 쾌락주의와 임박한 종말론으로 인해 결혼을 저급하게 여겼고 결혼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간으로 올바른 결혼생활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토록 달콤한 허니문 기간은 18개월에서 30개월이면 끝이고 그 다음은 전쟁터와 같은 결혼생활이니 그 속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그것이 서로의 정을 쌓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비결이요 그런 가정과 자녀들 위해 어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케 하는 은혜의 복을 부어주지 않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은혜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