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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6:12-14)

by 권또또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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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예전에 군대에서 복무할 때 고참 선임병이 구원파에 소속된 분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가운데 내부반 고참들이 죄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논리는 ‘살인을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인즉 영혼이 구원받았으면 육체로는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뜻이었습니다.

 

(깨달음)그런 논리의 이면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신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됐습니다.

영지주의란 인간은 영과 육체로 구성돼 있는데 영은 거룩하고 육은 땅에 묻힐 것이기 그 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원파나 JMS와 같은 교주들이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논리가 그것입니다.

구원은 영적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이후에는 내 육체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 말이죠.

 

(적용)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주님께서 재림하실때까지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하는 것이죠.

더욱이 우리의 몸은 우리가 죽은 뒤로 흙에 묻히고 진토가 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에 아담의 몸처럼 영화로운 육체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그 날을 바라보고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도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구별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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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전서 5장 6장은 고린도 교회 교인의 도덕적 타락을 질타하고 권면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느 정도로 타락해 있었습니까?

5장 도입부에는 음행에 관해서 사도 바울이 지적해 주었죠.

음행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만연해 있었는지 어떤 성도는 아버지의 첩과 음행을 저질렀죠.

그런 자가 있을 경우 교회에서는 출교라는 징계를 통해 그 영혼을 건져올리도록 도와주고 교회 자체는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죠.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듯이 말이죠.

다만 남의 허물과 티를 보기 전에 나의 들보를 먼저 살피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6장에서는 성도가 교회 안에서 성도간의 개인적인 대립문제를 세상의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을 바울이 질타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세상의 승리자인데 성도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이미 영적으로 패배한 자이기 때문이죠.

그로 인해 복음의 문이 막히고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바울은 그래서 세상 법정에 나가 다투는 자나 음행이나 우상숭배자나 동성애자나 모두가 같은 죄를 범하는 자라고 말하죠.

나는 비록 세상 법정에가서 성도의 문제를 소송했지만 간음도 안하고 동성애도 안하고 토색도 않했다면서 깨끗한 자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와 당사자가 그런 일을 벌일 때 교회 성도들은 왜 잠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미 고린도교회 성도들 대부분이 불의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렇게 타락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주님을 만나 구원은 얻었지만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사는 영적인 미숙아였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 것으로 왕 노릇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기준이 없고 자기 본능을 좇다보니까 그렇게 타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죠.

 

(깨달음)물론 우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서 다른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인데 세상 사람들보다 좀 더 구별돼야 하지 않냐는 것이죠.

어떻게 그들이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우상숭배, 간음, 술취함, 토색, 동성애, 이 모든 죄를 범하는가, 하는 것이죠.

그것은 2천 년 전 고린도에 만연해 있던 사회 풍조와 무관치 않습니다.

당시 고린도를 비롯해서 헬라말을 하는 헬라세계에는 두 가지 부정적인 사상이 모든 사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죠.

 

그 첫째가 영지주의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구분해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육신은 고귀한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에피쿠로스’ 철학 사조입니다.

인간을 철저하게 물질적인 결합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원소의 결합이기에 그렇다면 죽음은 물질의 해체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단순히 인간이 물질의 결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산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 존재의 불안감, 죽음의 두려움, 감정의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쾌락을 통해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상을 쫓는 자들을 일컬어 쾌락주의자들이라고 칭합니다.

그들이 본능을 쫓아 쾌락을 따라 사는 것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도 아니고 오히려 존재의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구원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지주의와 에피쿠로스가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왔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릇 받아들이는 복음과 맞아떨어지니까, 그 영지주의와 에피큐리즘과 같은 사상이 구원 사상과 접목돼서, 구원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도 아무런 양심에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잘못 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날 구원파 집단에서 횡행하는 구원의 교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오늘날은 교회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릇된 사고방식에 의해 교회가 오염지가 되고 있는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죠.

바울이 이 편지를 썼던 그 시대와 우리 시대는 정말로 다른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의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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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제 고린도전서 6장 후반부인 본문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6장 전반부인 1-11절까지는 성도 사이의 소송 문제에 대한 교훈을 다뤘습니다.

12절부터 20절까지는 성도의 자유에 대한 오용 문제와 음행의 본질에 대해 되짚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원해)여기에 모든 것이 ‘가하다’는 헬라어 ‘엑세스티’(ἔξεστι)는 ‘용납되었다’ ‘합법화되었다’(it is lawful)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는 영지주의자들도 또한 에피쿠로스 주의자들도 다 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여기까지는 다 할 수 있죠.

죄에서 자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냐, 영지주의자냐, 에피쿠로스 주의자들의 차이가 무엇으로 나타나겠습니까?

그 다음 구절에 있죠.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유익한 것이 아니기에 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연적인 것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자연현상은 영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통제 속에 있을 때만 그것이 보석으로 빛나는 법입니다.

그 초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통제 속에서 벗어날 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약이 아니라 독약이 되는 것이죠.

 

(원해2)여기에서 ‘유익하다’는 헬라어 ‘쉼페로’(συμφέρω)인데 ‘함께 지탱한다’ ‘함께 운반한다’(to bear or bring together)는 뜻입니다.

이 세상 인간 중에 어떤 인간도 혼자 사는 인간은 없습니다.

누군가와 연관을 맺고 살아가지요.

나한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와 연관을 맺고 함께 공동체를 지탱하고 진리를 운반하는 나와 관련 맺은 사람들을 위해 나는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우리가 이 세상을 쉼페로의 존재임을 알면 나의 유익이나 내 감정보다도 상대방과 더불어 사는 삶을 더 존중하게 되죠.

그래서 내게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을 뿌리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에 종속되어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나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해3)여기에 ‘얽매이다’는 헬라어 ‘엑수시아죠’(ἐξουσιάζω)로서 ‘지배를 받다’(to have power or authority)는 말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누구에게든지 종속돼서 지배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꽃뱀이나 제비족이 돼 그 날밤은 즐겼을지 모르지만 다음날이 되면 돈을 요구하고 신고한다고 위협을 가하겠죠.

그렇게 서서히 그런 삶에 지배를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나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돈 위에서 살아가느냐, 돈의 지배를 받는 노예로 살아가느냐, 그것에 따라 내 삶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이 돈의 지배를 받고 살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를 지배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지만 나는 하지 않을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용)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두 가지 원칙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모든 것이 가하다.’는 자유죠.

다른 하나는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를 지배하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나는 자유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원성)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도 고백한 바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바울은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기 육체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함께 더불어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종노릇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사는 이들을 위해 자유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절제하며 살았다는 뜻이죠.

그것이 내게 주어진 자유를 오남용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비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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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이제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식물’은 배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배’는 육체의 한 부분입니다.

이 배는 먹을 것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기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하는데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종말의 때에는 이것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죠.

그것들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원해)여기에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할 때 ‘몸’은 헬라어로 ‘소마’(σῶμα)입니다.

보통 ‘육체’를 가리키는 헬라어는 ‘사르크스’인데 그것은 고깃덩이와 같은 육체를 가리키죠.

하지만 ‘소마’는 단순한 고깃덩이가 아니라 영혼을 지닌 전인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다운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주님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썩어질 고깃덩이로만 있다면 얼마든지 음란을 하겠지만 전인적인 우리 몸은 주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니 함부로 더럽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몸으로 오셨고 부활하실 때에도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천하실 때에도 몸으로 승천하셨죠.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몸으로 종말의 날에 살리신다는 것이죠.

 

(적용)무엇을 강조하는 것입니까?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형편없는 고기덩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은 영혼도 중요하지만 영혼을 품고 있는 육체의 몸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육체를 함부로 내어 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육체도 내 것이고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육체마저도 주님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절제하며 살라는 뜻이죠.

그만큼 그리스도인이 자기 몸을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영혼만 아니라 몸을 위해서도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주님을 위해 더불어사는 이들을 위해 절제하며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남용하거나 오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주님께서 너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것은 너의 영혼만을 위함이 아니라 네 육체의 구원을 위함이기도 하니 말이다.”

네가 구원받은 이후에 영혼의 구원에 만족하지 말고 네 육체로 주님을 위한 도구로 타인을 위한 도구로 절제하며 산다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겠느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그 육체로 영지주의자들과 에피쿠로스 쾌락주의자들과 어울려 음란한데 내주는 성도들도 있지 않았더냐?”

그것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영과 혼과 육이 흠없게 보전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뜻과 무관한 삶이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은 너의 영혼이요 너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만큼 너의 육체가 이 세상의 쾌락이나 돈을 좇는 자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을 좇는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너의 육체가 구원받은 육체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몸으로 주님을 위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선한 도구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시대에 이단 사이비 교주들이 영혼만의 구원을 외친 채 육체로 방탕하고 음란한 것을 좇도록 한다면 철저하게 구별하여 선한 통로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자유를 남용하고 오용하는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한 것도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지 않더냐?”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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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그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 너희는 모르느냐 늘 깨어 있으라 잠들지 말아라 주님과 동행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온몸과 영혼이 주 오실 그날에 흠 없기 원하노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코자 하심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육체의 구원을 위함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영혼의 행실도 중요하지만 육체의 행실은 더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재림의 날에 영과 혼과 육체가 흠없게 보전되기를 바라시는 게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구원받은 이후에 모든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몸을 방탕한데 사용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이든 뭐든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한 통로로 함께 더불어 사는 이들을 위한 도구로 살면서 내게 주어진 자유를 절제하며 살아갈 때 그 영혼과 육체를 아름답게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재림하실때가지 그런 몸으로 단장하며 등불들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권성권 - 교보문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성경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7가지 패턴이 있다는 게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찾아와 주시고, 그 인간과 관계를 맺어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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