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느냐(고전6:1-5)

by 권또또 2024. 4. 10.
728x90
반응형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느냐.hwp
0.18MB

 

(설교열기)(예화) 실제 있던 일인데 어느 목사님이 신학교 시절에 겪은 이야기입니다.

신학교 시절에 그 분은 전도사였지만 무급으로 중고등부와 청년들을 가르치며 봉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연세 많은 담임 목사님이 노회의 보고도 없이 예배당을 팔고 이전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노회는 그걸 불법이라 해서 정치 문제로 다루고 전권 위원을 구성해서 새로운 목사를 당회장으로 위임해 파송했습니다.

 

그때 교인들은 어땠을까요?

갑자기 나타나 노회로부터 파송 받은 당회장이라며 자기 말을 거역하면 제명시키겠다고 엄포 놓는 목사를 오히려 거부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분쟁으로 혼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자 했지만 항상 몇 명의 젊은 사람을 동반하고 온 그 목사로 인해 번번이 아수라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교인들은 대부분 떠나갔습니다.

 

그때 그 신학생인 그 분은 몇몇 학생들과 청년회장을 데리고 노회 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교회 분쟁으로 교인들이 떠나고 가족 된 학생들이 떠나고 있으니 교회를 살려달라고 간청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회의 답은 노회가 파송한 목사를 받아들이든가 싫으면 두고 떠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교인들에게 있어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교회 분쟁과는 상관없이 토요일 주일마다 나오는 학생들을 두고 홀가분하게 떠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학생예배시간에 와서 방해하던 그 목사님 측과 청년 학생 간에 서로 밀고 버티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목사님은 학생들한테 폭력을 당했다고 주일인데도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 관할경찰서에 고소 한 것이죠.,

거기다가 그 신학생은 주동자로 고발되었고 피의자가 되어 경찰서에 가서 죄인 취급받으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신학생을 고소한 목사도 검사실에 왔는데 검사가 먼저 그 신학생에게 목사를 때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가 말합니다.

“야가 앞장서서 먼저 나를 때렸다”하고 말이죠.

그러자 검사는 “내가 목사님한테 물었습니까? 그렇다고 교회 학생들이나 교인들을 고발하고 고소하는 목사는 잘하는 짓인 줄 아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신학생은 당시 상황이나 그때의 느낌을 일기식으로 기록해 놓은 노트가 참작이 돼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신학생에게는 매우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되었고 계속 이 길을 가야 하나 그만둬야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죠.

 

(깨달음)어떻습니까?

이런 일이 드문 일이 아니라 지금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 일어난 일로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나서서 해결하면 될텐데 그게 안돼 노회나 총회까지 가지고 가서 법정다툼을 합니다.

그도 만족하지 못하면 세상 법정에가지고 가서 판결을 받을 때 승복하게 되죠.

문제는 그 일로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전도의 문에 많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적용)과연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법정에까지 그 문제를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교회 안에 일어난 개인 간의 일, 목사와 장로의 일, 교인과 교인간의 일은, 될 수 있는 한 교회 내에서 해결하는 게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죠.

하지만 교회 바깥의 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해하려거나 이단 사이비가 교회에 해를 끼치려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지죠.

그때는 교회 공동체를 지키기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서 적극적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죠.

세상 법정은 그런 일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죠.

바울도 그런 일을 위해 세상 법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바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아니라면, 교회 내에 일어난 일이라면 될 수 있는 한 교회 안에서 지혜롭게 해결하는 게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6349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book-product.kyobobook.co.kr

 

 

(역배)고린도전서 5장은 고린도교회의 음행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그런 자는 출교라는 징계를 통해서라도 그 영혼을 건질 수 있도록 하고 교회에 죄악이 퍼져나가지 말도록 하라고 했죠.

물론 그런 자에 대해서 출교하기 이전에 너희 자신들의 죄악의 누룩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의 티를 들여다보고 비판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죄악의 들보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듯이 말이죠.

어찌됐든 교회 내에 음행의 문제에 대해서 바르게 잡지 못하면 작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간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게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6장 말씀은 성도 간의 소송 문제에 관한 부분에 관한 말씀입니다.

6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뉘는데 1-11절까지는 성도 사이의 소송 문제에 대한 교훈입니다.

12-20절까지는 성도의 자유에 대한 오용 문제 및 음행의 본질에 관한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본문1)우선 본문 1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원해)‘너희’란 고린도교회 교인들입니다.

‘일’이란 헬라어로 ‘프라그마’(πρᾶγμα)로 ‘문제’(a matter) ‘다툼’ ‘사건’(a thing)을 뜻하는 말이죠.

‘다른 이’는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과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교인들끼리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 일이 성도 간에 일어났을 때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불의한 자’란 세상 법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간에 싸움이 일어났는데 그 문제를 교회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세상 법정에 가서 송사를 벌인다는 것이죠.

 

(원성)그런데 개역개정에서는 ‘구태여’라는 말이 중간에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은 제일 먼저 나오는 ‘톨마오’(τολμάω)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아리마애 사람 요셉이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겠다며 달라고 하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15:43)

그때 당돌히 요구하는 말씀이 본문의 ‘구태여’와 똑같은 ‘톨마오’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고 존귀한 의원이었습니다.

상류층 사람이 국사범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한다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시체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당돌히’ 말입니다.

 

(원성2)또 요한복음 21장 12절에도 그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와 계신데 까마득히 잊고 갈리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욕망의 그물을 던진 것입니다.

밤새도록 실패했다가 주님께서 와서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죠.

그때 육지에 와서 숯불에 고기를 굽는데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만들고 계셨지요.

그러니 제자들이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감히’ 누구냐고 묻지 못했는데 그 단어가 본문의 ‘톨마오’입니다.

 

(깨달음)바울 사도도 교인과 교인 사이에 다투는 문제를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간 문제에 대해 그 단어를 쓴 것입니다.

그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다는 뜻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적용)그렇다면 바울은 세상 법정을 불의한 것으로 보고 세상 법정의 권위를 무시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관점과 대비해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불의한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법정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베스도 총독 앞에 섰을 때 그 법정을 부정한 적이 없고 최선을 다해 변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의 법정에까지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 법정의 송사를 벌여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공적인 문제에 걸려있을 때 바깥으로 위해가 가해질 때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 법정에 상소한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내가 회사를 경영하는데 누군가가 우리 회사에 불의한 방법으로 위해를 가해 모든 직원의 생존 문제가 걸렸다면 송사를 벌여야 합니다.

법의 도움을 받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의 생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단 사이비로부터 소송에 휘말렸을때도 마찬가지죠.

 

다만 바울이 본문에서 말한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교인과 교인간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서 송사를 벌이는 일이 어처구니 없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죠.

 

(본문2)바울이 왜 교인과 교인 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간 것을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여기는 걸까요?

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깨달음)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그들이 실낙원하고 이 세상에 살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욕망의 법칙에 매달려 살고 있습니다.

욕망의 법칙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눈앞에 있는 일만 보게 하는 것이죠.

욕망의 법칙에 휩쌓이면 멀리 보지를 못합니다.

눈 앞에 것만 보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죠.

 

반면에 교회는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의 법칙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멀리 보면 멀리 볼수록 오늘 이 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바르게 분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오늘날 정치 경제 교육 문화적으로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사회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유도 그것이죠.

그리스도인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판단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지막 때 주님의 심판 때가 이를 때에 심판장이신 주님 곁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역할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인데 교회안에서 개인적인 문제로 일어난 일을 왜 너희들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느냐 하는 것이죠.

여기에 ‘지극히 작다’는 헬라어는 ‘작다’는 최상급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판단하는 그 안목에 비한다면 교회안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일축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product.kyobobook.co.kr

 

(본문3)본문 3-5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원성)우리는 세상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도 판단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여기서 천사는 모든 천사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심판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타락한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흑암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그 천사를 심판하시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심판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런 권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2:11-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깨달음)그리스도인은 타락한 천사도 판단하는 존재하라는 것인데 바울이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입니까?

너희들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들을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하고 말하면서 어떻게 세상일을 판단치 못하느냐 하는 것이죠.

 

(원해)여기에 ‘세상일’로 번역된 ‘비오티코스’(βιωτικός)는 법정 용어가 아닙니다.

일반 생활에서 발생하는 평범한 일(the affairs of this life)을 말하는 것이죠.

그만큼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일반 상식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까지도 법정의 판단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교인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세상 법으로 가지고 가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죠.

 

더욱이 5절의 ‘형제’는 헬라어로 ‘아델포스’(ἀδελφός_인데 본래는 육신의 형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맥상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한 가족이 된 교회 구성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교회 내에서 발생한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의 분쟁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원고도 형제요 피고도 형제로서 서로 친밀한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듯 형제간에 일어난 문제를 가지고 외부인인 세상 법정의 재판관에게까지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과연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인들 스스로 수치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죠.

사실 고린도전서 4장 13절에서는 서로 왕노릇하는 고린도교회들이 분쟁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쓰는 게 아니라 자녀같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5절에서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한 것입니까?

사람이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잘못인 줄 알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을 일깨워주려면 수치를 줘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수치를 줘서라도 바르게 세워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주님 안에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16043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권성권 - 교보문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성경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7가지 패턴이 있다는 게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찾아와 주시고, 그 인간과 관계를 맺어 진리

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 일어난 사소한 문제는 지혜롭게 풀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교회 안에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나서서 해결하는 걸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목사와 장로 사이의 문제라든지 장로와 성도 사이의 문제도 그리고 성도와 성도 사이의 문제도 말이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성도 사이의 사소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치 못하고 세상 법정의 판단을 받고자 하지 않았더냐?”

그들 스스로 지혜있다고 자랑하고 그들 스스로 왕노릇하는 이들이 많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간음한 이 조차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으니 교인 사이의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그러나 세상 법정으로 가져간 일로 세상이 얼마나 비웃겠으며 복음이 얼마나 가로막히지 않겠느냐?”

물론 세상이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할 때 이단 사이비가 교회를 집어 삼키려고 할 때 그때는 적극적으로 세상 법정에서 지켜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교회 안에 사소한 문제가 생겼을 때 지혜로운 자들이 나서서 둘 사이를 조정하고 해결하고 이해하도록 하는게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 일이 돈이나 이해타산의 문제보다 자존심 때문에 붉어진 경우도 많은데 서로 자기 의를 내려놓도록 주변에서 지혜롭게 조정하도록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그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갈 때 얼마나 세상은 비웃겠으며 복음이 가로막힐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크리스천의 회사를 세상이 집어 삼키려고 하고 직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교회의 재산을 위협할때는 적극적으로 맞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께서는 오늘도 교회 안에 일어난 사소한 문제를 스스로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분인 줄 알고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찬양)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모든 구변과 지식이 풍족했습니다(고전1:5).

하지만 성도 간에 사소한 분쟁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까지 가서 다툼을 벌였으니 얼마나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식이란 마치 기계의 부속품과 같습니다.

반면 지혜는 그 부속품으로 기계를 조립하여 만드는 능력과도 같은 것이죠.

그렇기에 지혜 없이 지식만 있는 사람들은 부속품만 잔뜩 가지고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 지식을 활용하여 생활에 적용시킬 줄 아는 지혜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불의한 것인지도 판단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계모와 음행한 자에 대해서 징벌치 않고 수수방관만 했고 성도끼리 다투는 사소한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코자 않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과 이웃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 안에서 지혜롭게 적용하고 실천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일이요 복음의 문을 활짝 여는 길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은혜 속에 살아가는 복된 주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9805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book-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