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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7:7-16)

by 똑똑이채널 2024.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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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오늘날 청년들을 향해 7포세대라고 부릅니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하고 산다는 세대입니다.

그 중에서도 결혼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문제죠.

결혼해서 서로의 가치관도 취향도 자녀의 양육방식도 다르기 때문이죠.

그로 인해 결혼한지 3년내에 이혼한 부부도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청년들의 결혼관이나 이혼관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결혼할 상대자가 믿음이 없어서 내 신앙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면 홀로 사는 것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더이상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홀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깊이 생각하며 실천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둘째는 내가 지금 결혼해서 사는데 이혼 도장을 찍을지 말지 고민한다면 언제든 이혼 도장은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문제까지도 고려해 봐야 하고요.

그래서 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죠.

 

셋째는 결혼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왕이면 배우자가 믿는 자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죠.

물론 믿지 않는 자가 배우자의 믿음을 통해 주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쉬운 게 아니죠.

그래서 믿지 않는 자와는 결혼하는 청년이라면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죠.

 

(깨달음)이런 세 가지 차원의 결혼관 혹은 이혼관의 갖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화평을 위한 결혼생활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얽매이고 자기만을 주장하지 말고 화평을 위한 결혼생활이 돼야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고린도전서 7장부터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도바울에게 서신으로 질문했던 내용에 대한 답변이 나옵니다.

7장 1-8절까지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여부와 부부생활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8-16절까지는 재혼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7장 1-2절 말씀을 통해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임박한 종말론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죠.

또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나 여자나 아내와 남편을 두고 사는게 좋다고 했죠.

그것은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죠.

그 당시에 문란한 성이 판을 치는데 그런 음행을 피하고자 한다면 아내와 남편을 두고 사는 게 더 낫지 않냐는 뜻이죠.

중요한 것은 둘 다 2천년 전 고린도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답변이지 성경의 절대적인 답변은 아니라는 거죠.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길 원하고 있고,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삶이 거룩한 부부의 삶이죠.

 

3절에서 바울은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성적 노리개였는데 남편들은 아내에 대해 성적인 노리개로 취하지 말고 아내의 몸으로 온전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물론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는데 그것은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진 아내들을 위해 그렇게 권면한 것이었죠.

마치 남편과 관계 맺는 것 자체를 불결하게 여기고 죄악으로 여기는 극단적 금욕주의 여성들 말이죠.

그래서 4절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몸을 주장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을 위한 몸처럼 부부관계에도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5-6절을 통해서는 분방하지 말되,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 식음을 전폐하면서, 얼마간 할 수 있지만 다시 합하라고 하죠.

부부가 체질 때문에 일하는 시간대가 다른 것 때문에 따로 잠을 잘 수 있죠.

그러나 분방하지 말라는 것은 잠을 따로 자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관계를 완전히 차단한 채 홀로 거룩하다고 여기는 영적우월감에 빠져 있는 남편이나 아내를 말하는 것이죠.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의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금욕주의를 실시하는 것이 더 좋은 신앙인이 되는 거야, 하고 혼자 생각하고 실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그 남편이 밖에 나가 외도를 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진 아내의 책임이 큰 거죠.

물론 7장에서 권면한 내용들 대부분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바울의 권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의 말이니, 참조하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거야, 하는 뜻의 말입니다.

절대 규범은 아니니, 여러분이 허락해서 수용하고 지킨다면 더 좋은 것이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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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읽은 본문 7-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원해)여기에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것은 바울의 독신생활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사실 결혼했다가 이혼했거나 사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당시 산헤드린 의원이 되는 길은 20세 이상의 성인에다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임박한 종말론 때문에 재혼하는 것보다 그냥 지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처럼 살기를 원한다고 한 것인데, 모든 성직자는 독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그저 주님을 위한 독신으로 사는 것도 은사라면 그렇게 하고. 결혼해서 영광돌리는 것도 은사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독신이 좋냐 부부생활이 좋냐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가 무슨 은사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은 상처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8절 말씀도 마찬가지죠.

홀아비나 과부들은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역시 임박한 종말론 사상 때문에 그렇게 권면한 것이죠.

9절도 보면 똑같습니다.

임박한 종말을 안다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지만, 혼자 지내면서 절제할 수 없이 정욕이 불타오른다면 결혼하여 살라는 거죠.

 

(본문2)오늘 본문 10-1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깨달음)바울은 결혼한 자들 가운데 여자는 남편에게 갈라서지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님이시라고 말하죠.

도대체 왜 바울이 여자들에게 그런 권면을 하는 것입니까?

여기도 좀 전처럼 극단적인 금욕주에 빠진 여자들을 향해 한 말입니다.

부부관계를 죄로 여기고 분방하고 부부로 이름을 올린 것 자체를 멀리하고, 이혼까지 고려하고 있는 금욕주의 여성들을 향해 한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여자의 땅끝은 아프리카 오지가 아니라 자신의 가정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죠.

 

그래서 만약 갈라섰다면 그대로 지내든지 하고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고 권면하죠.

극단적 금욕주의가 잘 못 됐음을 깨닫고 신앙 안에서 바로 서든지 그 남편과 다시 합하든지 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남편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3)본문 12-1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깨달음)이 내용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만큼 바울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불신자와 함께 사는 부부의 경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경우는 불신자와 결혼한 경우도 있겠지만 바울이 고린도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고린도를 떠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부부 가운데에 지금 한 남자가 믿고 여자는 복음에 관심이 없는 상태입니다.

교회는 안 다니는데 이 여자가 남편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갈라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반대편도 마찬가지라고 1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믿고 남자는 도대체 교회 문턱을 넘지 않는다면 예수 안 믿는 것 빼고는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다면 버리지 말라고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14절에 나와 있듯이 남편이 아내로 인해 믿게 되고 아내가 남편으로 인해 믿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하는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섣불리 잘못 선택하고 헤어졌을 때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하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상대가 믿지 않지만 너로 인해 상대가 믿게 될 줄 알고 화목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구원시켜 주지 않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예수쟁이가 싫다고 한다면 헤어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구애받지 말라는 것이죠.

이제까지 그런 생각에 갇혀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해방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도 바울 자신의 견해임을 밝히면서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서 그런 말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아내된 자가 남편을 구원할지, 남편된 자가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지 않는 사람이 같이 살기를 원치 않을 경우 갈라서는 데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만 혹시라도 상대를 구원할 수 있음으로 쉽게 갈라서지 말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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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그래서 이 말씀을 오늘날의 삶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 수 있기 위해 시대적인 풍조를 거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2천년 전 고린도의 쾌락주의, 영지주의, 극단적 금욕주의, 가부장제, 임박한 종말론 같은 시대적인 풍조로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도 시대적인 풍조에 휩쓸리기보다 역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말씀을 내 심령과 삶에 채우고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은 결혼에 관한 화두는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식과 부모 형제와 주위의 모든 사람이 화평하기 위해서 결혼생활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녀를 불러 한 몸을 이루게 하실 때 화평 중에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부르셨다’는 헬라어 ‘칼레오’(καλέω)는 직설법 능동태로 ‘계속 부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나를 통해 내 배우자와 자식과 부모 형제와 사위와 며느리까지도 화평하도록 부르셨다는 걸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화평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내 배우자와 살아가는 결혼생활도 그런 삶으로 확대돼야 하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쾌락을 따르는 시대에 역행하여 말씀을 좇아 살고 화평을 위한 결혼생활을 추구하며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2천년전 고린도의 특수한 임박한 종말론 때문에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자기처럼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 뜻을 이제는 알수 있지 않겠느냐?”

만약 정욕이 불타올라 참을 수가 없다면 고린도의 성적타락에 빠지지 말고 아내와 남편을 두고 사는 걸 권면한 것 아니더냐?”

결혼한 자들 중에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져 부부생활 자체를 죄악을 여긴다면 그런 어리석음에서 돌이켜 온전한 한 몸을 이루며 살도록 한 것 아니더냐?”

혹여라도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기로 생각하여 결혼했다면 상대방에게 더욱더 화평의 사람임을 보여줘서 믿지 않는 자가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

믿지 않는 자로 인해 신앙생활에 어려움에 있어서 갈라서고 싶은 것은 자유지만 화평을 좇는 삶을 통해 주님께서 그를 구원하실지 어찌 알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은 임박한 종말론 때문이 아니라 7포세대의 어려움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시대임을 네가 잘 분별했으면 좋겠구나.”

그런 시대적인 풍조만을 좇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부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혹여라도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져 부부생활을 죄악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부부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결혼생활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

배우자가 세상에 취해 사는 것 때문에 이혼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가 구원의 길로 들어서도록 화평을 좇아 부부의 삶을 성실하게 이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지 않겠느냐?”

 

(찬양)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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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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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7포세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걸 꺼려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시대의 풍조를 따르기보다 말씀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결혼을 하되 화평을 위한 부부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져 부부관계를 죄악시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부부관계를 엮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나의 믿음을 좇아오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배우자에 대해서 무조건 이혼하기보다 화평을 좇는 나의 삶을 통해 변화될 수도 있으니 주님께 더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가정의 토대위에 자녀들도 참된 결혼관을 세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총의 가정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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