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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부르신 그대로(고전7:17-24)

by 똑똑이채널 202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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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5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복을 주실 때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가 죽고 자식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이사야서에서는 ‘혼자 있을 때’라고 곧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라고 말하는 것이죠.

만일 아브라함이 그때 세속적인 관점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냈어도 그가 하나님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갔게습니까?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자식들도 많고 가진 게 풍족했다면 아브라함은 백 번 불러도 응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처한 상황 곧 자식이 없는 혈혈단신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신 상황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결핍 부족함 곤궁함의 상태가 곧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라는 것이죠.

 

(적용)이것은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언제 형통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가 국무총리에 올랐을 때 성경은 형통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39:2)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39:23)

 

창세기 39장 말씀은 요셉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노예로 일할 때 형통했다고 밝혀주고 있고, 억눌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할 때도 형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요셉이 그 상황을 피해 도망치고자 했다면 요셉의 인생은 끝나고 말았겠죠.

 

중요한 것은 형통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형통’은 히브리어로 ‘짤레흐’(צָלֵחַ)로 ‘돌진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걷는 길이 굽어돌고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을 우직하게 믿고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땅이 척박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그 속에서도 씨가 나오고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자 자라가는 모습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의 믿음은 부르신 그대로 나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뭔가 환경이나 상황이 좋기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죠.

그것이 참된 믿음이고 크리스천의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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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전 7장부터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1-16절까지는 결혼 여부의 원칙 곧 사별한 독신자의 재혼 문제나 기혼자의 이혼 문제에 관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인 신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사도 바울이 답변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시간 결혼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은 2천 년 전 고린도교회라고 하는 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 처한 질문의 답변이었습니다.

바울은 답을 하면서도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또 이것은 개인적인 답변이다 하고 구별했습니다.

오늘 보고자 하는 주제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통용이 될 수 있는 삶에 전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본문)본문 17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원해)여기에서 ‘행하라’는 헬라어 ‘페리파테오’(περιπατέω)는 ‘걸어가라’(to walk)는 뜻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형통하다’는 히브리어 ‘짤라흐’와는 다른 단어지만 그 의미는 같지 않겠습니까?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간에 주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걸어가는 것, 돌진하는 것, 하나님께서 맡긴 그 자리에 충성하는 것 말이죠.

 

그러면서 바울은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하고 말을 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교회 모든 성도를 향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전개)그렇다면 무엇을 향해 걸어가라는 것이겠습니까?

본문 18-19절을 같이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깨달음)유대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태어난 지 8일 만에 생식기의 표피를 베어내는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를 행했다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란 말이죠.

그런데 2천 년 전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인만 회심하고 교회의 교인이 된 게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주님께 나와 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똑같이 교회 공동체의 교인이 되었는데, 한 그룹은 할례를 행하는 유대인이고 다른 그룹은 하지 않는 이방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들 사이에 논쟁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할례를 행한 사람 가운데에 할례는 구원의 표식이자 조건이라고 말을 하겠죠.

할례를 행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방인들 가운데도 할례를 받으려고 줄을 서는 일도 있었겠죠.

물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라고 하면서 할례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죠.

그랬더니 할례를 행한 유대인들 가운데 무할례자들이 되려고 하는 자들도 있었구요.

 

바울은 이미 할례받은 자가 있다면 무할례자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미 할례를 받았는데 다시 성형수술을 해서 무할례자처럼 살아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무할례자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았다면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하죠.

바울이 지금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더욱이 바울은 할례를 받고 안 받고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입니까?

할례에 관한 언약은 창세기 17장 10절에 처음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언약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여긴 게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보면 할례를 시행하기 이전에 이미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장 11절에서 할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뜻입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인정해주기 위해 할례를 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할례는 하나님께서 새 생명을 주신 그 은혜를 받은 자답게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갖고 사는 증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은 다른 데 있고 육체의 할례를 행했다는 것만으로 구원받은 자라고 착각하며 산 것이었죠.

바울이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할례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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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본문 20-2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원해)두 번째 부르심에 관한 말씀이 나오는데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 하고 말합니다.

17절과 18절에 나오는 첫 번째 ‘부르심’은 ‘칼레오’(καλέω, to call)라는 동사입니다.

그리고 20절에 나오는 ‘부르심’은 ‘클래시스’(κλῆσις, calling)라는 명사입니다.

20절에 나오는 부르심은 그 상태로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라,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돌진하라는 뜻입니다.

 

(깨달음)그래서 바울은 종으로 있을 때 너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렇다면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물론 종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라고 말하죠.

무슨 뜻입니까?

2천 년 전 노예는 자기 재산도 자기 인격도 없는 주인의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노예를 향해 네가 노예 상태로 있을지라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노예 상태에서 자유할 수 있으면 자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도 되고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네가 종의 상태라 할지라도 거리낄 게 없이 살라는 것이죠.

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원성)바울은 로마서 8장 1-2절을 통해 그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인데 그분 안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지 못하지만 주님이 죽음을 깨트리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도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죠.

그만큼 나 자신이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계회복이 주어진다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암담해도 하나님은 내게 불필요한 상황을 허락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모든 상황에 모든 제약에 자유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네가 자유자로 있을 때 너를 부르셨다면 네 마음대로 하고 살라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또 네가 다른 사람보다 자유롭고 지위가 높은 상태에서 너를 부르셨다면 그걸로 네 멋대로 살라고 부르신 게 아니라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들과 더불어 살도록 자유를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성2)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아주 명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5:13)

자유인만 사랑으로 종노릇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구의 억압이나 강압에 의해 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죠.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둔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네가 누구의 종이냐, 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자유인인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네가 자유인이냐, 하지만 네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그래서 23절과 24절을 통해 결론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값으로 산 우리를 향해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그 당시의 노예들에게 모두 도망가라고 하는 뜻입니까?

회사에 모두 사표 내라는 의미입니까?

아니죠.

내가 사람의 종으로 그 사람을 모시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사람을 모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람을 섬기면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사람을 섬기면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열등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의 종이 될 때 그때 비굴과 열등감 속에 사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현재 상황 속에서 부르신 그대로 주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권면하는 것이죠.

‘거하라’는 헬라어 ‘메노’(μένω)는 ‘머물다’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을 받들고 주님의 시선을 좇아 함께 지향하는 삶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너를 부르실 때 그 상황을 회피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답게 걸어가라 하는 뜻입니다.

 

(적용)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혈혈단신으로 아버지 죽고 자식도 없는 그 상태에서 부르심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듯 말이죠.

요셉이 보디발의 노예로 살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할때도 부르심 그대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듯이 말입니다.

지금 자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라도 그 속에 부르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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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있든지 그 상황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좇아 믿음을 나아가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혈혈단신을 아버지 주고 자식도 없는 그런 상태에서 부르시지 않았느냐?”

요셉이 형통하다는 것도 국무총리가 됐을 때가 아니라 종살이하고 옥살이하던 절망의 상황이지 않았더냐?”

지금 바울이 할례자로 불렀든 무할례자로 불러던 할례자체보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라면 모든 상황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는 것을 더 귀히 여긴다는 것 아니더냐?”

종의 상태에서 불렀다고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는 자유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고 자유인을 불렀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타인을 위한 주님의 종의 자세로 살라고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님께서 너를 부르실 때 아브라함이나 요셉을 부르실때의 상황과 같지 않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뭔가 풍족하고 넉넉하고 모든 것에 자유할 때 부르셨다면 그런 세상의 것에 취해 있을 때 온전히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겠느냐?”

주님께서 너를 불러 구원의 자녀로 은혜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너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때요 그때가 은혜의 때였지 않더냐?”

그러나 네가 세상에서 얽매여 있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고 세상에서 자유롭다면 타인을 섬기도도록 너를 주님의 종으로 부르셨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주님께서 너를 어떤 상태에서 어떤 환경속에서 부르셨든지간에 주님 안에서 자유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장 기뻐하지 않겠느냐?”

 

(찬양)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구원하시는 부르심의 은혜를 베푸실 때는 연약하고 부족한 상태에서 부르시는 분입니다.

뭔가 넘치고 부족함 없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부르심에 응답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아브라함을 부르실때도 요셉을 부르실때도 모세나 여호수아를 부르실 때도 오늘 우리를 부르실때도 마찬가지죠.

2천년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 중에는 할례받은 자도 있고 무할례자도 있었습니다.

할례를 받았으니 안 받았으니 그것을 구원의 기준으로 삼는 게 어리석은 것이요 그것조차 부르심 상태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게 은혜의 길임을 바울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요 할례는 그 증표와 같은 것이니 설령 할례 받지 않았어도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게 최고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당시 노예상태로 불렀어도 주님 안에서 자유인이요 설령 자유인의 상태로 부르셨다면 누구를 대하든지 주님의 종의 자세로 섬기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받은 자녀로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요 내 곁의 누군가를 섬기는 주님의 종으로 부르셨음을 기억하고 사는 은혜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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