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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우리 속에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13-35)

by 똑똑이채널 2024.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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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실의와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주님을 만나, 주님께서 떡을 떼어주심으로 인해 그들이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 실의와 절망 대신에 기쁨과 소망을 얻으면서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을 만나 사실을 다른 제자들에게 이이야기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주님을 만나기전까지만 해도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넘어가는 태양을 안고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그림자가 축 져진 그런 심령의 상태였죠.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것도 자신들이 도저히 상상하기 싫은 그런 일들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체포가 있었고, 제자들이 다 도망가면서 공동체가 다 흩어지는 모습, 또 성난 군중들의 선동에 의해 주님께서 십자가 사형에 처해지는 판결을 받는 모습, 그리고 시체 가운데 죽으신 그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많은 여인들과 제자들 사이에서 유언비어처럼 퍼져나간 일들이었죠. 그 모든 일들이 불과 수일 사이에 다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아마도 꿈꾸는 게 아니었나 싶은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허탈한 심정, 복잡한 심정, 실의와 절망에 빠진 심정으로 두 제자가 엠마오 도상으로 내려가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해 보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한숨과 의문에 찬 질문만 하면서 길을 나선 것이죠.

그런데 뜻밖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길목에 합류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과연 그 둘이 주님을 알아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 두 제자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죠? 그 이유가 뭘까요? 본문 16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바로 그들에게 주님께서 계시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보다 더 답답한 경우가 또 있겠습니까? 주님은 그들에게 와 계셨는데, 그들은 주님이신 줄 알지 못하는 상황 말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영적인 침체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비단 본문의 두 제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를 당하거나, 고난을 맞게 될 때,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내 사고 속에, 내 아픔과 고난 속에 이미 찾아와 계시는데도 주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아니 주님을 인식조차 하지 않으려는 나의 영적인 침체의 모습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도 내 아픔과 고난 가운데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내 눈을 열어주시라고, 계시의 눈을 열어주시라고,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것은 누가복음 8장 23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죠. 예수님과 제자들이 거라사의 군대귀신 들린 한 사람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노를 젓고 가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큰 광풍이 몰아닥쳤죠. 그때 주님께서는 배 고물 다시 말해 배의 선미쪽에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배 이물 쪽에 노를 젓고 가던 제자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계셨는데도 왜 그랬습니까? 주님이 그 배 안에 계신 것 보다도 풍랑과 파도를 더욱 두려워했던 까닭이었죠. 풍랑과 광풍에 그들의 심령이 완전히 배앗겨 버렸기 때문에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도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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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하십니까? 본문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들의 마음 상태를 듣고자 그들에게 다가가신 것이죠. 과연 몰라서 물어보신 것이겠습니까? 아셨음에도 물어보고 있는 것이죠. 그들의 대답을 통해 그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본래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깊은 침체와 극한 고통 속에 있으면 입에서 좋은 소리 나오지 않죠. 괜히 쓴 소리가 나오고, 부정적인 이야기 나오고, 공격적인 말이 나옵니다. 마음속에 맺힌 것이 많아서 그렇죠. 고통스러운 기억들, 하기 싫은 기억들이 많아서 그렇죠.

주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실 때 그들도 그렇게 예수님을 힐난하면서 반문을 하는 모습입니다. 본문 18절에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그야말로 공격적인 어투입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쭉 실의와 절망에 빠진 어투로, 또 공격적인 어투로 24절까지 그간에 있었던 일들, 갑작스럽게 벌어진 그 일련의 일들을 쭉 이야기해 줍니다.

그 중에서도 21절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도 하죠.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하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분이 모세처럼 우리 민족을 구원해줄 사람이라고 소망을 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우리가 품은 소망이 꽝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22-24절까지는 부활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무슨 말입니까? “여자들이 말한 것처럼 무덤은 빈 무덤이 맞는데 예수님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글쎄 잘 모르겠어. 예수님은 없었거든..” 하는 뜻이죠. 두 제자가 주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예수님께 하지만,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나 소동 정도로 이야기하는 모습이죠. 왜죠?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당시의 여자나 아이들의 말은 법정에서도 신빙성이 없는 말로 간주하던 시대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여자’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빈 말이었을 것이다, 하는 어투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이제 반전을 가져오기 시작하죠. 예수님께서는 그 상황에서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도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예언된 말씀들을 풀어주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25-27절의 말씀입니다. 이때도 우리 주님은 하나 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차분하게 그들의 심령을 열어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27절의 마지막 부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얼마나 위로와 위안과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말입니까?

중요한 것은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상처나 실의와 절망에 묻어나는 고백들을 다 들어주길 원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소연, 탄식, 절망, 그 모든 고백을 다 들어주신 다음에, 그때 당신의 음성으로 확신을 불어넣어주신다는 점이죠.

오늘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주님께서도 그렇게 위안과 힘을 북돋아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날이 저물어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죠.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실 때처럼 말입니다. 마치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을 나누어주시는 그때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그때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인 줄 알았다고 본문 31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않았더냐?”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기쁨과 소망의 마음을 갖고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의 부활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 전적인 주님의 계시와 믿음을 주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 은혜로운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나눌 때 우리의 마음 속에 뜨거움을 불어넣어주신다는 것이죠. 성령이 역사하면 말씀을 들을 때 뜨거움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죠. 그로 인해 실의와 낙담이 변하여 기쁨과 소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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