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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눅12:35-59)

by 똑똑이채널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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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들은 들의 백합화나 궁중나는 새들보다도 훨씬 귀한 존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런 들판의 식물들 동물들조차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면, 너희들은 더욱더 귀하게 먹이고 입히지 않겠느냐? 왜죠? 농부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살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것보다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곧 나보다 더 연약한 자에게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흘러보내는 것, 구제하고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며 살라는 뜻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이요, 그때 하나님께서 다른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상급이 목적이 아니라 베풂과 나눔이 먼저요, 그렇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자연스레 상급은 그 분이 베풀어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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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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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 35절 말씀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마치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이 오는 것을 마중나갔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는 모습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렇게 신랑을 맞이하는 그런 열 처녀의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등불을 켜고 있으라는 것, 또 주인이 혼인집에 돌아와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그만큼 그 비유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재림, 다시 오심을 늘 사모하며 깨어 있으라는 비유입니다.

왜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38절에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이경이란 새벽 12시, 삼경이란 새벽 3시의 시간 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생각지 않은 시간대에 오시는 것처럼, 언제 이 땅에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로,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대부분의 성공은 직책이나 지위, 또는 연봉이 올라가고, 그래서 그러한 직책이나 지위에 걸맞은 대우나 대접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연봉이 1,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연봉이 수억, 수십억 원을 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죠. 하지만 주님은 연봉을 계산해서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오시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연봉에 관계없이 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깨어있는 바로 그 사람을 귀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내 연봉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어떠한 직책이나 지위에 있든지 허리띠를 띠고 등불을 밝히고 주인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주님께 주님의 재림에 대한 내용을 다시금 질문하죠. 본문 41절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베드로는 주님의 그 비유가 우리들에게만 해당되는 비유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비유인지 물었던 것이죠. 그러자 주님께서는 42-43절을 통해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주님의 그 말씀은 깨어 있는 자, 다시 말해 ‘진실한 청지기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구원이지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 모두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주님의 재림 앞에 깨어 있는 자로 사는 것은 아니죠. 더욱이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긍휼을 베풀며 사는 자도 많지 않습니다. 주님의 청지기로 살아가는 자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주님의 자녀들만 그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47절에서 말씀해 줍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주님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씀이죠.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다시 말해 순종하는 은혜가 항상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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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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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9-5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곧 심판의 주님으로 오심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때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화평을 위한 게 아니라 분쟁, 곧 나눠지는 것,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지고, 심판과 상급으로 나눠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심지어 52절에서는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부모 형제 사이에도 마지막에는 분쟁하게 된다, 곧 갈라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본래 그것을 원하시는 분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고, 모두가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분 아닙니까? 예수님은 평화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분쟁이, 갈라서는 게,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게 일어납니까?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죠.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빚어낸 일들이죠. 주님은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주길 원하시지만 인간이 거부한 채 자기 욕망을 좇다가 그렇게 분쟁하게 되고, 갈라서게 되고, 종국에는 심판을 맞이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자인 자신을 알아보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56절에 말씀하십니다.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57절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하고 말입니다. 천기를 분간할 줄 아는 자들이 이 시대를 분간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답한 마음을 표출한 책망의 말씀이죠. 자연 현상을 통해 구름이 임하면 비가 올 것을 알면서, 주님의 때는 왜 내다보지 못하느냐, 하고 꾸짖는 형국이죠.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이 세대의 사람들이 다들 이 세상의 흐름만을 좇지 않습니까? 그것이 대세인양 말입니다.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을 외면한 채 말이죠. 오직 세속적 가치만 따를 뿐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 일들을 탄식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본문 58-59절의 비유를 통해 법정에 서기 전에 화해하라는 내용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비유의 내용을 보면 피고인은 고발인에게 채무관계로 잘못을 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법정에 가기 전에 화해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빚을 다 갚기 전에는 결코 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죠. 이 비유가 무엇을 의도하는 것입니까? 불이 붙기 전에 빚진 자인 너희들이 채권자인 성부 하나님과의 화해를 빨리 하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채권자이자 동시에 최종심판자인 법관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심판자, 최종 법관이신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게, 또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그 분의 은혜 안에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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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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