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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말씀하셨죠.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하고 말입니다.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른바 천기를 분간할 줄 알면서, 다시 말해 구름이 오면 비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 왜 너희들은 세속적인 가치만 쫓고 있느냐,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채권자이신 동시에 최종심판권자인 법관으로서, 그 끝 날에 심판하신 분이심을,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심을 만천하에 알게 하실 것을 천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의 삶, 곧 코람데오의 삶을 산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죠.
오늘 읽은 본문 1절 말씀입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몇몇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이른바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 소식을 접한 예수님께서 2-3절을 통해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이 그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변을 당하지 않는 갈릴리의 다른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그렇게 살해당해 변을 당한 이들의 죄가 더 크고 무거워서 그렇게 변을 당한 것이고, 너희들은 죄가 없어서 그런 변을 당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변을 당했는데, 하필 나는 그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다 변을 당해 사고를 당한 경우가 있다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일단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죠. 그리고서는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그렇게 커서 그런 변을 당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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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5절은 또 다른 예를 통해 그것을 한 번 더 강조하십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실로암은 예루살렘 성벽 바깥의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 적이 있죠. 그때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을 때 눈이 밝아지는 은총을 입은 사건이 있죠. 바로 그 실로암 못이 있는 망대를 세웠다는 것이죠. 역사가들은 빌라도 총독이 그곳에 연못의 수로 공사를 위해 망대를 세웠다가 그것이 무너져 18명이 참사당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공사현장의 인재사고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그가 죄가 많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 왔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외가 아니었죠.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생각, 그들의 편견을 바로 잡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른바 그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너희들에게는 죄가 없는 줄 아느냐, 너희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 너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주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것이죠. 엊그제 모처럼 무화과열매를 먹었는데, 온실에서 자란 무화과라 그런지 푸석푸석하고 맛이 덜했습니다. 자연 노지에서 딴 무화과열매가 달달하고 꿀이 나오듯 맛있다고 하죠.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 동안에 걸쳐 자랐는데, 그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 곧 포도원 관리하는 이에게 뭐라고 합니까? 찍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죠. 왜 땅만 버리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관점은 어떻습니까? 생산성이 없는 나무는 전혀 수익을 창출할 수 없으니, 찍어 버려야 한다고 동의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8-9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금년에는 그대로 두시라고, 다시금 땅을 파서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도록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열매가 없을 때에는 그대 찍어버리소서, 하고 청을 하는 모습이죠.
실은 이것이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에 관한 비유의 말씀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보시고 얼마만큼 선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를 보고서, 혹은 다른 사람을 보고서, 주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나는 어떤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까, 하는 말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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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대해서 죽어난 사람들의 참변사고, 또 실로암 망대의 수로를 건설하다가 당한 사고사,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열매없는 모습, 이 이야기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할 때 너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은 율법교사의 관점이 되기가 쉽고, 너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티만 들춰내려는 모습, 곧 감독자와 심판자의 모습에 치우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라면 누구든지 다 포용하고 수용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곧 일흔 번에 일곱 번씩 용서하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주님 앞에서 다 당신의 자녀들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나보다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또 나보다 형편없이 보이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눈에 보일 수 있죠.
바로 그때 우리는 대부분 내 관점으로, 내 양식으로, 내 기준으로, 내 의의 잣대로, 내 자아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을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고통을 당했을 때 그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해서, 뭔가 큰 잘못을 해서 심판당한 거야, 하고 생각하는 걸 금하라는 것 말입니다. 내가 그들보다 의롭고 열심이어서 나는 그런 화를 당하지 않았다고, 자기 의의 착각 속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이면, 그 어떤 자식이라도, 말을 잘 듣는 자식이든 말을 잘 듣지 않는 자식이든, 부모는 다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그와 같다는 것을 너희들은 놓치지 말라는 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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