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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25-37)

by 똑똑이채널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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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언젠가 믿음이란 말을 그렇게 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믿음이란 ‘순종’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요 주어진 삶에 대한 순종이다, 하고 말이죠. 또 믿음은 ‘용기’라고 했죠. 내게 주어진 매사에 말씀에 순종하고,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믿음은 또 ‘시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용기를 지닌 믿음의 소유자는 그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될 수밖에 없다고 했죠. 그렇게 하나님께 시선이 고정돼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다루어가신다는 것도 깨닫게 되죠. 그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루어가심을 깨닫게 되면 될수록 그의 삶은 신실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믿음은 ‘다루어지는 것’이자 ‘신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살아가면 그 삶은 눈에 보이게 되고,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고 했죠.

그런데 이런 믿음의 출처가 정작 내게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시고(눅10:21) 계시해 주셔야(눅10:22) 그런 믿음의 진일보를 이룰 수 있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지정의의 믿음이라고 했죠.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식으로 깨닫고, 지식으로 깨달은 바를 마음으로 감동받고, 마음으로 감동받은 바를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말이죠. 믿음이 내 것인 것 같지만 실은 내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오직 성령님께서 나타내주시고 계시해 주신 것만큼 내가 믿음 안에 거할 수 있다고 말이죠.그것이 칠십인의 제자들을 둘 씩 둘 씩 고라신과 배새다와 가버나움 지역에 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귀신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주님께 그 사실을 보고했을 때, 그들의 믿음의 출처에 대해 바르게 깨워주신 말씀이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교사라 함은 구약 성경의 모세오경에 능통한 자요, 거기에 나오는 모든 율법에 대해 가르치는 자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를 몰라서, 뭔가를 깨닫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올무에 빠트리기 위해서 질문한 사람입니다.

그 질문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무엇을 해야 영생,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26절을 통해 되레 물어보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이른바 ‘율법에 잘 알고 있는 너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너는 그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하신 물음입니다.

그때 그 율법사가 27절을 통해 대답하죠.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구약의 613가지 율법 조항들, 하라는 긍정적인 명령의 조항들이 248가지,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의 조항들이 365가지인데, 그 모든 조항들을 묶으면 두 가지로 분류가 된다는 것이죠. 이른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 그리고 아래로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라는 것 말이죠.

어떻습니까? 그보다 더 명쾌한 이해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 취지인데 말입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렇게 살라고 주신 게 율법이지 않았습니까? 그 율법조항을 주신 취지가 바로 그것이었죠. 너희들은 애굽 땅의 그 백성들처럼 수만가지 만신을 섬길 필요 없이 오직 나 여호와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 그리고 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내 백성답게 살고자 한다면, 애굽의 백성들처럼 같은 동료를 억압하고 굴종시키며 만들지 말고 네 자신의 몸처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는 그런 차원에서 율법조항들을 모두 주신 것이었죠.

바로 그 율법학자가 그토록 귀중한 깨달음을 예수님께 아뢰고 있었으니, 얼마나 흡족해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말씀하시죠. 본문 28절에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즉 그 깨달음을 삶으로 옮기면 너에게 영생에 주어질 것이다, 하는 뜻이죠. 그러자 그 율법교사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질문을 던지죠. 29절에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자기 자신을 예수님께 과시해 보이려고,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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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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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이야기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30-35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이죠.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옷이 벗겨지고, 많이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때 제사장도 그 길을 가다가 피해서 지나가버렸다고 하죠. 레위인도 역시 보고 피해 지나갔고요.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서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에 소독을 해 주고, 그를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 보살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튿날이 되었을 때, 그 사마리아 사람은 주막의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나을 때까지 치료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 여행길을 하고서 다시 오겠다고, 만약 그 돈이 더 들었다면 자신이 와서 더 갚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듣기에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제사장이 제사 때문에 바빠서 그렇다고 변명할지라도, 레위인이 제사를 돕기 때문에 번거로운 일을 피하고 싶어서 그했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주님 앞에 그것이 통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지금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보살피고 신고하고, 헤아려 주는 것, 그것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가장 잘 보살펴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대했는지, 이미 살펴본 바가 있었죠. 누가복음 9장 52절 이하를 통해, 그곳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말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하늘에서 불을 명해서 다 태워버리자고, 마치 자신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등에 엎고서 심판자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하는 꼴이었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의중을 꾸짖고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셨죠. 그런데 그 사마리아 사람 중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모두가 다 주님을 부인하고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의 복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전체 숲은 그럴지 모르지만 그 나무는 다를 수 있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진정으로 받드는 자가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개신교 내의 어떤 특정 교단을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고, 또 가톨릭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고 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하시면서, 율법교사에게 36절을 통해 말씀하시죠.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하고 말이죠. 그러자 그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하고 대답을 하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Go and do likewise”(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듣고 깨닫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지식으로 깨닫고 감정으로 느꼈다면, 온 의지를 다해 행동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신실한 믿음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 순종에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죠.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받게 하실 때, 온 의지를 다해 순종하는 믿음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더욱더 겸손하게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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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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