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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인근에서 수많은 귀신들을 내 쫓아주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해주셨죠. 그런데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를 가로질러 가신 일이 있었죠. 그때 파도와 풍랑을 만나 제자들이 죽을 뻔한 일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무모한 현장을 꿰뚫고 그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셔야 했습니까? 이른바 거라사인 지방에 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고자 하심이었죠. 그 귀신의 떼가 2천 마리나 되었는데, 그 한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던 귀신들을 모두 몰아내 주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그 위험을 무릎 쓰고 그곳 거라사인의 마을, 이른바 데카폴리스 곧 10개의 마을 중에 거라사인 한 마을에 가셔서 그토록 위대한 역사를 펼치셨다면, 곧장 다른 9개 마을로도 가셔서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셨으면 좋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한 영혼을 위해 바로 그곳에 가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 영혼은 천하보다도 더 귀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곳 가라사인에, 그곳 데카폴리스 10개 마을에 귀신들린 사람이 그 한 사람 뿐이었겠으며, 다른 아픈 병자가 그 한 사람 뿐이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군대귀신 들린 사람이 주님이 계신 가버나움까지 나아 왔던 자였습니까? 그렇지 않죠. 오직 주님께서 내다보시고, 그가 필요한 부분을 먼저 생각하셔서, 그 한 사람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의 역사요, 치료의 역사, 곧 회복의 역사입니다. 그 인생이 군대 귀신에 휘둘려, 그 인생이 뿌리 채 뽑힌 가운데 절망과 낙담 가운데 있었지만, 주님께서 그의 필요를 아시고, 먼저 다가와 그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그렇기에 연한 순 같은 괴로움을 당했을 때, 주님께서 당신의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를 만져주실 수 있는 분이시오, 또 주님께서도 당신의 목숨이 뿌리 채 뽑힌 경험이 있으셨기에, 다시 말해 십자가에 완전히 죽으셨다가 사흘 째 되는 새벽 미명에 다시금 살아나셨기에, 뿌리 채 뽑힌 우리의 인생도 친히 회복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다만, 내가 그것을 점하거나 고집하려고 하기보다, 더욱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할 때, 주님의 때에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신실하고, 진실한 믿음의 은총으로 역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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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거라사인의 그 한 영혼을 위해서 당신의 사역을 하신 뒤에, 다시금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제자들과 배를 타고 돌아오셔서 하신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40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예수님께서 다시금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는데, 무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까닭이었죠.
물론 그것이 안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의 상태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린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들의 필요만을 채우고자 하는 것인지, 그것은 주님께서 다 꿰뚫고 계시는 것이죠. 우리 주님께서는 설령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고자 주님을 환영하고 주님을 기다려왔다 할지라도, 그것을 기점으로 서서히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알 수 있죠.
그런데 그 군중들 틈바구니를 뚫고 나온 사람이 있었죠. 본문 41절에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이른바 12살 된 딸을 둔 회당의 관리자요 총책임자였던 회당장 ‘야이로’(Ἰάϊρος,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 민32:41)가 예수님께 나왔던 것입니다.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말입니다.
몇 몇 주석을 살펴보니, 유대 사회에서 여자 아이들은 12살이 되면 성년으로 간주하게 되고, 그 나이가 되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성인으로 인정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자기 딸이 그런 성인이 된 12살인데, 그래서 가정을 꾸리고 손주까지 낳을 수 있는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데, 그 장성한 딸이 죽게 되었으니, 그 회당장 야이로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어쩌면 그 역시 자기 인생이 뿌리 채 뽑힌 상태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의 송두리째 뽑혀 버린 그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의 집으로 손수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 49절은 이렇게 증언해줍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 집에 가시는데, 벌써 그의 딸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전해 주는 사람들이 왔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본문 50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쓰지 말고 오직 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딸이 구원받은 것을, 회복되는 것을,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란 말씀이죠.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제쳐 놓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곧 회장장 야이로의 내외를 불러서, 그 죽은 아이에게 같이 가죠. 물론 사람들은 비웃죠. 죽었는데, 더 이상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이야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시죠. 마치 나인성 과부의 독자가 죽어서 상여가 나가는 그 상황에 그 상여를 붙잡고 그 청년에게 명령하실 때처럼 말입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4)하신 그 명령처럼 말입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 먹을 것을 주도록 했고, 그때 그 온 집에 기쁨이 일어났고, 자기 인생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버린 것 같은 회당장 야이로의 인생도 회복시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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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일만 있었습니까? 아니죠. 본문 42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께 나와 자기 딸의 사정을 이야기할 때 “무리가 밀려들었다”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밀치고 있었던 것이죠.
그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 곧 하혈하던 여인이, 이 의원 저 의원 좋은 의원과 좋은 약들은 다 써봤지만 별 효험을 보지 못하던 그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옷에 손을 댄 일이 있었죠. 그런데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는데, 그녀의 혈루증이 그 즉시 고쳐졌다고, 본문 4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본문 4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예수님은 무리들이 밀쳐오는 상황속에서도 당신의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죠. 그때 그녀는 자기가 그렇게 주님의 옷을 만진 이유, 너무 고통스러워서 옷만 만져도 역사가 일어날 것 같은 믿음이 생겨서 그렇게 했다면서, 주님께 엎드리죠.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하고 말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주님의 그 말씀이 자칫 그녀의 믿음 때문에 그녀가 고침받았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주님께서 그녀를 붙잡고 세워서 그녀를 보고 그렇게 말할 까닭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그녀를 붙들어 세워서 그녀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시켜 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녀의 믿음을 통해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함이란 사실입니다.
믿음은 한 순간에 부풀어 오르는 고무풍선이거나 한순간에 점프하는 점과 같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요 선을 이어나가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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