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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눅6:12-26)

by 똑똑이채널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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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믿지 않고, 또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말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들이었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비벼 먹은 것을 두고 안식을 범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자신들의 제자들은 일주일에 이틀씩 곧 목요일과 월요일에 금식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면서 헐뜯었죠.

그리고 그 안식일에 회당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앞에서 보란 듯이 ‘너의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죄사함의 권한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주님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그들 앞에서 나타내보이셨던 것이죠. 그러면서 주님은 그의 영혼의 죄만 해결해 주신 게 아니라, 그의 육신적인 질병의 문제, 곧 손이 오그라드는 문제까지 치료해 주셨습니다. 인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안식일의 참된 주인이요, 모든 만물의 주관자요, 해결자이심을 만 천하에 보여주신 것이었죠. 그렇기에 오늘도 나의 모든 날, 주일 뿐만 아니라 모든 날과 모든 시간과 모든 소유와 물질까지도, 아니 나의 육신과 영혼까지도 실은 주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늘 주님의 청지기로 사는 자가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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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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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14절의 말씀처럼 “시몬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마태와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세롯이라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예수를 팔 가롯 유다”였죠.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12명의 제자들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고, 심지어 사도행전에도 가롯 유다를 뺀 11명의 제자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서는 다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12명의 순서 중에 변함없이 그 순서를 유지하는 인물들이 있죠. 이를테면 베드로는 맨 처음에 나오고, 중간에 빌립,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이렇게 세 사람의 위치는 다른 복음서에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베드로나 빌립이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그 세 팀원들 간에 리더 격이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이 아주 중요한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12명의 제자, 12명의 사도를 세울 때 주님께서 어떻게 세웠는지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무엇을 생각게 해 줍니까?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 즉 ‘아포스톨로스’ 다른 말로 ‘보냄을 받은 자’,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직 주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서, 주님의 뜻을 드러내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위임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그 사도를 세울 때,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 나옵니까? 그렇죠.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증언해줍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 그것도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께 위임받은 자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자를 세우는데,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주님이십니다. 무엇을 생각게 합니까? 사람을 세울 때 함부로 세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세웠던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셔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고, 다시 말해 제자를 삼으시겠다고 한 장면을 읽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또 갈릴리의 세관원으로 일하고 있던 세리 레위 곧 세리 마태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장면과 함께 그의 집에서 함께 음식을 드신 예수님의 모습을 읽어보지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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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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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본문 13절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12명을 택해서 사도라 칭하셨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이 12명인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이었고, 그 중에서 특별히 12명만 택해서 사도로 다시 칭하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그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 그 12명을 택하기 위해서 주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셨던 것이고요. 그것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해 주는 말씀이 본문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여기에서 ‘그 제자의 많은 무리’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백성도 있다’고 밝혀주고 있죠. 이른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고 있는 장면입니다. 한 부류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이미 갈릴리 여러 지역에서 예수님을 스승으로 삼고자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뜻이죠. 그리고 다른 부류는 이제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가에서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점을 볼 때, 이미 예수님 주변에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선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2명이 사도로 부름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12명을 선택할 때,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것이죠.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는 그 말씀 앞에 떠오르는 게 있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주님께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죠. 그렇게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신 것처럼, 당신의 사도를 선택하실 때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기도하셨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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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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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7절에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이른바 12사도를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신 것이죠. 그때 평소 따르던 제자들의 무리와,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가에서부터 온 새로운 무리들을 모두 맞이하신 주님께서는 귀신들린 자의 귀신들을 내좇아 주셨죠.

그리고 이제 제자들을 향해서, 다시 말해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설교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본문 20절 말씀부터 49절까지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죠. 그 중에서도 20-23절 말씀은 어디에서 많이 봤던 말씀 아닙니까?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20-23)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 3-10절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팔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산 위에서 한 것으로 전하고 있는데, 누가는 산 아래 평지에서 한 것으로 전해주죠. 또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마태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기록돼 있는데, 누가는 그냥 ‘가난한 자’로, 또 마태는 애통하는 자가 그 뒤에 나오는데 누가는 그냥 ‘주린 자’가 곧바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는 긍휼히 여기는 자나 마음이 청결한 자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나오는데, 오늘 누가복음에는 그런 자에 관한 말씀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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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역대기서 읽고 묵상하기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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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볼 때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과는 달리, 누가복음을 받아들이는 청중들이 실은 매우 가난한 군중들이었고, 주린 자들이 태반이었다는 사실이죠. 그렇게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울면서 사는 자들이 너무 많았고, 그런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 이심전심의 마음,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너희 주린 자가 복이 있다, 너희 우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그렇게 몇 마디 말씀만 전해도, 그 말씀에 얼마나 복받쳐 올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버지 없는 아들의 설움을 보여주는 장면 앞에, 제 마음이 그 순간 마구 복받쳐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너무 힘들었던 때에, 주님 너무 힘드네요, 하면서 그때도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렸던 적이 있었죠.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 앞에 그 가난하고 주린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내가 처한 상황에 그렇게 공감적으로 이해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은혜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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