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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주변에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12명의 제자, 곧 12명의 사도를 택하려고 하니, 밤이 새도록 기도해야 했습니다. 당신의 전권대사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갈 주님의 동역자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을 택하신 뒤에 주님께서는 산 아래의 평지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향해 천국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하고 말입니다. 마태복음과 달리,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해 쓴 편지이기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니라 그냥 가난한 자라고만 해도, 또 그냥 주린 자라고만 해도, 그리고 우는 자라고만 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한 것으로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 주님은 그 당시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을 당신의 섭리 가운데 택하셔서, 당신의 나라를 함께 세워갈 동역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주님 앞에 가난한 심령, 주린 심령, 목마른 심령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은혜 속에서 부족하지만 그 일을 감당케 해 나가시는 것이죠. 그런 자에게 주님의 은혜는 오늘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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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주님께서는 천국복음을 강론해 나가십니다. 본문 27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에 대한 사랑의 법도를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또 자기 자신을 향해 저주하는 자도 축복하라고,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죠.
29절에서는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사실 이 말씀은 구약의 율법에 비춰볼 때 전혀 옳지 않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은 동태복수법으로 처리하도록 일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1장 23-25절에 그에 따른 구체적인 율법 조항이 나옵니다.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누군가의 생명을 죽였다면, 다른 사람의 소를 구덩이에 빠트려 죽이게 했다면 당신도 똑같이 소를 죽여서 그에게 배상을 하라는 것, 누군가의 눈탱이를 때렸다면 꼭 그만큼의 눈탱이를 때리라는 것, 그리고 손 부위에 상처를 내게 했다면 그만큼 상처를 내게 하라는 것, 바로 그렇게 들려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율법 조항은 그것을 당한 사람에게 복수형태로 갚으라는 것을 강조한 조항이 아닙니다. 그 조항은 누군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사람, 곧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율법 조항이라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출애굽기 21장은 율법 조항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민법에 해당되는 법 조항으로서, 상전과 종에 관한 부분이 많이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보다 윗전에 있고, 높은 자리에 있고, 가진 게 많은 사람으로서 더 연약한 자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도록, 보다 신중하게 삶을 살아가도록 하라는 차원에서 주신 조항입니다.
그런데도 그 조항을 두고, 똑같이 보복하라는 하나님이시구나,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던 그 시절, 곧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떠올려주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몰라준다고 속상해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는 어디를 맞아도 애굽 백성에게 저항할 수도 없었고, 노예로 이 주인에게 일하고 떠 저 주인에게 일할 때에 손해가 막심했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길 없던 이스라엘 민족 아니었습니까? 오른 뺨을 치면 그냥 맞아야만 했던 그 수모와 수치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내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죠. 너희들이 뭔가 가진 많고, 윗전의 자리를 취할 때, 너희들이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같은 민족끼리 살다가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종살이를 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동등한 입장에서 그를 대우해 줘야 한다는 뜻이죠.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조항 가운데 시민법이 지니는 취지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보다 한 술 더 뜨고 있는 주문 아닙니까? 실수로 혹은 고의로 너의 오른 뺨을 친 자가 있다면, 그에게 너의 왼 뺨도 돌려 대서 한 대 더 맞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네게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도 거절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옷은 대부분 사막의 담요역할을 하는 것이고, 속옷이 진짜 입고 다니는 옷의 성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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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까? 오른 뺨을 치면 진짜로 왼 뺨을 돌려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신 근본 취지가 무엇입니까? 본문 32절과 35절에 그 해답이 있지 않습니까?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누군가 내게 해 준 만큼 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죄인들도 그렇게 하는 방식이요, 주님의 제자로 사는 자들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자녀가 된 자들은 그 이상의 은혜를 베풀면서 살라는 주문이시죠.
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게 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한다면, 무엇보다도 누군가 너에게 한 만큼 똑같이 하려고해서 원수를 만드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 첫째죠. 그러나 그것은 소극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하는 자세요, 보다 적극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할 자세는 네게 손해를 끼치고 너에게 무엇을 원할 때 그 이상의 것을 대가 없이 베풀며 살라는 것이죠.
바로 그것이 잠언 25장 21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격이죠.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평소 원수같은 사람이 배고파하는데, 음식이 있다면 먹이고 목말라 한다면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의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에게 원수처럼 대했는데, 나는 그에게 원수가 아닌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과 자세로 대한다면, 그는 분명 속으로 부끄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겠습니까? 이스라엘 공동체는 좀 더 살맛 나는 세상, 죄와 악이, 원수가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하는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천국을 일구는 화평의 삶이요, 그를 위해 주님께서 그 산 위의 평지에서 천국복음을 가르치신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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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받은 자로서,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서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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