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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눅6:1-11)

by 똑똑이채널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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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바리새인들, 정말로 경건한 바리새인들(The most pious Pharisees)은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을 했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는 목요일과 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수여받고 내려왔다는 월요일날, 그렇게 이틀씩 금식해 왔는데, 문제는 그것을 자신들의 전통으로 삼았고, 그 행위로 자신들이 좀 더 열심을 내는 신앙인, 하나님께 더 인정받는 신앙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그런 신앙적인 행위의 열심을 타인과 비교하는 잣대로 삼는 점이었다는 데 있었죠. 자신들의 제자들도 그렇게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는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괜히 죄인 취급하는 모습이 그것이었죠. 그래서 우리 주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이 초등교사로 안내판과 나침반 역할을 해 왔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그 모든 율법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새로운 심령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뜻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 자신들도 내가 정해 놓은 어떤 신앙적인 형식이나 틀이나 어떤 행위를 남들과 비교하는 잣대로 들이대거나 으스대거나 하는 기준으로 삼을 게 아니라, 오직 주님의 더 큰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인 새 부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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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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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또다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곧 예수님의 메시아되심,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에 대해 반박하고 헐뜯는 ‘안식일 논쟁’의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유대인들에게 날의 개념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하는 날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가 하루에 해당되죠. 더 정확히 말하면 새벽 12시부터 낮 12시를 거쳐 밤 12시까지가 하루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날이 어두워지는 초저녁부터 다음날 초저녁까지가 하루의 날 개념입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죠. 그 날에는 응급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병원도 쉬고, 전쟁도 쉬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것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2002년에 직접 목격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음식점이나 호텔에서 빵과 포도주는 가져다가 자유롭게 먹는 모습은 또 보여주죠. 그러니까 248가지의 하라는 율법 조항들, 또 365가지 하지 말라는 율법 조항들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비하할 필요는 없겠죠. 오늘날까지 유대 민족이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실은 율법의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안식일 전통 말이죠. 그 강력했던 바벨론 제국도, 페르시아 제국도, 헬라 제국도, 로마 제국도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억압받고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디아스포라로 살던 유대 민족이 1948년 5월 15일에 독립하여 지금까지 세계사 속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게 바로 안식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민족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의미로서의 안식일법이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진정한 취지의 안식일법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의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는데,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서 ‘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느냐’하고 따져 물었던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예를 들어서 그들에게 설명해 주죠. 사무엘상 21장 6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른바 다윗과 그 부하 장수들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달아나는 상황이었는데, 며칠 째 굶주림에 처해서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던 터에,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이 없는지 물었죠. 그때 아히벨렉은 방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진설병을 새로 갈았는데, 거기에서 꺼낸 것이라도 먹겠냐고 물었죠. 다윗은 그때 그 무엇을 가릴 처지가 못 되었죠. 그저 아무 것이라도 준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 입장이었죠.

바로 그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병조차도 실은 사람이 굶어죽게 되었을 때 먹여서 살리는 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텐데, 어떻게 안식일에 배고파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는 걸 두고서 안식일 법 운운을 하느냐고, 예수님께서 되묻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핵심적인 말씀을 해 주십니다. 5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하고 말입니다. 다윗과 부하 장수들에게 그 떡을 내 준 이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한 일일지 모르지만, 안식일에 배고파하는 제자들에게 그 이삭을 자라서 비벼 먹도록 한 권한은 우리 주님에게 있다는 뜻이죠. 우리 주님은 천지의 창조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권한을 동시에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 그 날의 권한뿐이겠습니까? 우리 주님에게는 날과 함께 시간도, 물건도, 돈도, 생사여탈권도 모두 주님의 권한에 있는 것이죠. 내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도, 모든 날들도, 모든 소유도 말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일만 주님의 날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도 주님께 속한 날임을 기억해야 하겠죠. 그렇게 믿고 살아가며 의지하는 자에게 어찌 주님의 은혜가 더 크게 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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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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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절 이하를 보면 또 다시 안식일 논쟁을 벌입니다. 먹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병든 자를 고치는 것 때문이죠.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오른 손이 마른 사람, 다시 말해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회당에 들어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안식일 법을 어기는 어떤 행위를 하는지 그 증거를 찾아 고발코자 함이었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셨죠.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8절에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각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오히려 대놓고 그들 앞에서 논리정연한 말씀을 하시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게 낫느냐, 아니면 악을 행하는 게 낫느냐, 다시 말해 생명을 구하는 선을 행해야 하느냐, 아니면 생명이 죽어가는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악을 행하는 게 낫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었죠.

그때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죠. 심지어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백번 옳기 때문이죠. 그 누구든지, 어떤 군중이든지, 선을 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것이요, 병든 자는 혹은 죽어가는 자는, 그날 낫고자 하고,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적인 선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앞에서, 그 오그라든 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 하시고, 그 손을 회복시켜주신 것이었죠.

그 모습을 바라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어떻게 예수님을 처리할까, 논의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죠. 아직은 그들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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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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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말씀이 어떤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까? 인자는 안실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으로서, 우리의 모든 시간과 날과 소유물 우리의 생사여탈권도 실은 우리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주님은 그 날이 어떤 날이 되었든지 간에 병든 자는 고침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고, 죄로 인해 죽어가는 자는 새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을 그렇게 주님의 생명의 나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 속에 살아가는 날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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