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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죄를 사하는 권세(눅5:12-26)

by 권또또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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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 곧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를 부르셨습니다. 너희로 하여금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렇게 명령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그렇게 하신 것이었죠. 이른바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해 이제 그물을 씻어 뭍으로 나오려는 두 척의 배, 그 중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셔서 갈릴리 호수쪽으로 나아가게 하신 뒤에, 그 배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죠. 이른바 복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 복음이 어떤 내용일지는 이미 우리가 생각해 봤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눈먼 자에게 보게 하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케 하는 은혜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동업자 요한과 야고보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비로소 그때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고 했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제자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람 낚는 어부로 삼게 되었던 것이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죠. 개별적으로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또 말씀과 여러 사건들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받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힘과 능력과 은혜를 매일매일 공급해 주시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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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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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나병 환자 곧 문둥병 환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의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음은, 이미 누가복음 4장 후반부에서 살펴본 바가 있었죠. 특별히 가버나움의 회당에서는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고, 또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꾸짖으사 고쳐주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소식을 듣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나왔을 때 ‘일일이’ 안수하시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을 것이고, 어떤 병도, 어떤 귀신도 능히 고쳐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도 주님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아픔, 자신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죠. 레위기 13장에 보면 나병 곧 문둥병, 요즘 용어로 한센병이 어떤 병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피부의 감염으로 생기는 것으로, 심하면 그 부위가 썩어 문드러지거나 떨어져 나가게 되죠. 그 까닭에 그 사람은 동네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게 했던 것이죠.

 

오늘 본문의 나병 환자도 그렇게 격리된 채 살아왔던 사람임이 분명하죠. 그러나 그도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간절한 그 소망을 갖고 주님께 직접 찾아나온 사람이었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저를 깨끗케 해 달라고, 간청하는 그의 모습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어떻게 해 주십니까? 13절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전에 아픈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고 안수하여 고쳐주시듯이, 나병 환자에게도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면서’ 깨끗해 질 지어다, 하시면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단지 말씀만 하셔도 될 법한데, 명령만 하셔도 충분할 텐데, 직접 그의 몸에 손을 대시는 주님의 모습이죠. 무엇을 깨닫게 해 줍니까? 그 누구도 여태껏 부정하다면서, 더럽다면서, 몸에 나병이 옮길 수 있다면서, 그 누구도 자신의 몸에 손을 댄 사람조차 없었는데, 주님은 기꺼이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대셨던 것입니다. 그것 자체만 해도, 얼마나 그의 마음이 녹아내렸을지, 충분히 이해할수 있죠. 그것 자체가 주님께서 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요, 그런 관계가 형성될 때, 그의 마음은 주님을 향해 더 열게 되었을 것이고, 그때 주님께서 그의 심령과 그의 육체 자체를 온전케 해 주셨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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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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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주님은 14절을 통해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것은, 레위기 13장의 말씀처럼 나병이 깨끗하게 된 것을 제사장에게 검시받게 하는 일이었죠. 제사장이 이제 피부에 어떤 반점도 없다고 확증하고 선언하면 그때 비로소 그는 사회적인 격리상태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서 입증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뭐랄까요? 일종의 확증에 대한 예물 또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차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너의 생명과 너의 육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라는 그런 차원의 예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소문을 퍼트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소문은 점점 더 퍼져나갔고, 수많이 무리들, 이제는 나병 환자들도 더 많이 예수님께 달려왔겠죠.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 곧 치유자요, 해방자라면서 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보여준 태도가 무엇입니까? 16절에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왜죠? 예수님은 군중이 열광하는데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교제를 통해 당신이 메시아임을 더 확고히 했고, 그때에만 대중이 열광하는 그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과 더 기도하며 나아가셨던 것이죠.

우리가 뭔가를 성취하고, 큰 업적을 행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때, 그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알게 해 주는 부분이죠. 이것은 크리스천 연예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할 때, 그때가 바로 더욱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할 때라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도, 그 누구도, 모두 해당되는 부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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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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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절입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이제 드디어 예수님의 반대편 세력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누군가 잘 나가기 시작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각종 질병과 귀신들과, 사회적인 고립상태에 있는 나병환자까지 고쳐주셨다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그 소문이 예루살렘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에게 까지 전해졌는데, 그들이 지금 예수님의 그 치유사역 현장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게 어떤 현장이었습니까? 18절에 한 중풍병자, 요즘 용어로 말하면 뇌졸중을 맞이해 반신불수가 된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을 침상 채 메고 지붕을 뜯고 위에서 줄로 내리는 모습이죠. 왜 그렇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몰려들어서, 그 중풍병자는 도저히 들어갈 틈이 없어서, 그렇게라도 해서 고침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죠.

그때 주님께서는 20절 말씀처럼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말씀해 주셨죠. 그런데 실은 이 말씀은 그 중풍병자에게 급한 게 아니죠. 그저 육적인 뇌졸중만 고침 받고, 회복된 몸 상태만 유지해도, 큰 영광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씀을 하신 까닭, 여태껏 그렇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한 부분이 없었는데,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곳에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 곧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려는 자들이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었죠. 그들은 하나님 외에 죄사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여기는 자들이요,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진정한 메시아되심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뒤에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그를 깨끗케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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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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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많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개인이든 중보기도든 주님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그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죠. 물론 사람으로 인해 영광을 취하는 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더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주님이셨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인간의 육신적인 질병을 넘어 그의 죄까지도 사해주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죠. 오늘도 주님의 그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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