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눅5:33-39)

by 똑똑이채널 2024. 2. 29.
728x90
반응형
SMALL

이전과는 달리, 드디어 예수님 주변에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쫓아내주시고, 나병환자를 고쳐주실 때까지만 해도,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중풍병자 곧 뇌졸중 환자가 고침받을 때에, 그때부터 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른바 예수님의 메시아되심을,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부정하고, 헐뜯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보란 듯이 그들 앞에서 당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 눈에는 인간의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요, 그렇기에 그것이 신성모독하는 죄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런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풍병자의 육신도 친히 고쳐주셨죠.

그만큼 진리와 생명은 눈 가리고 야옹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비판과 모함으로 그것을 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와 생명은 밤 하늘의 별처럼 빛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 곧 메시아요 구원자되심은 그렇게 방해세력들의 공작이나 훼방 앞에서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후에 주님께서는 세리였던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하시면서 그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셨죠. 그때 레위가 ‘곧장’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죠. 그러나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건들을 우리가 되짚어 봤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세관원으로 있던 그였기에 모든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면 그에 합당한 세름을 매겼을 것이고, 또 일일이 각 사람에게 할당된 인두세도 받아냈다는 점이죠. 심지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실 그때에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레위 역시도 예수님께서 갈릴리 인근 마을에서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내 좇아주신 사건들도 직접 봤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겠죠. 바로 그런 점들이 그의 심령에 각인돼 왔었는데, 바로 그 시점에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하셨던 것이고, 이전에 죄인으로 살던 자신을 제자로 부르시는데, 어찌 감격하에 ‘즉각’ 따르지 않았겠냐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는 세리 레위를 부르시는 것으로, 세리 레위가 주님을 따라나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의 집에서 잔치를 벌여 주님과 함께 식사할 때, 다른 세리들도 함께 그 자리에 있었고, 심지어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여리고의 키 작은 세리장 삭개오도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니까, 그 동업자들의 삶도 변화되고, 더 먼 지역의 동업자들도 변화되었다는 사실이죠.

 

오늘 우리 자신이 주님의 진리와 생명으로 변화는 삶을 살게 되면, 그렇듯 우리 자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주변 동료들이 변화되고, 그것은 먼 지방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변화되는 주님의 은혜를 덧입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31-32절의 말씀은 정말로 중요한 말씀이죠.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자신이 병든 자요, 자신이 영적으로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 주님은 구원의 은혜와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605319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book-product.kyobobook.co.kr

누가복음 18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런데 이어지는 13절에 곧장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바리새인은 누가봐도 실로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칭타칭 의인 중의 의인이었죠. 그에 반해 세리, 세리 레위와 같은 사람들은 자타가 공인한 죄인 중의 죄인이었죠. 갈릴리의 빈민들과 어부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로마에 세금을 다 갖다 바치는 게 아니라 일정 부분 자기 주머니에 챙기는 삶을 살았으니, 스스로도 죄인임을 알았고, 남이 봐도 그렇게 죄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선하게 받으시는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닌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왜죠? 바리새인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긴데 반해 세리는 스스로 죄인으로서 의사인 주님을 필요로 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아무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법을 잘 실천하는 자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더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라도, 그것을 나의 의로움으로 나의 자랑으로 삼을 게 아니라, 우리는 더욱더 부족한 자요, 죄인이요, 더 연약한 자처럼, 세리와 같은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자를 주님은 더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6349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book-product.kyobobook.co.kr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금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반대편에서 신성모독한다면서 헐뜯고 비방하던 바리새인들이, 요한의 제자들과 자기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 면서 따지는 모습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혼인집을 예로 들면서 신랑과 신부가 함께 기뻐하는 날인데, 어찌 금식할 수 있겠냐면서 이야기를 하시죠. 다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때,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죽임 당하실 때 다들 슬퍼하며 금식할 것이라는 뜻이죠.

그러면서 하시는 결론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36절에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새로운 부대를 준비하며 그 분을 모실 만한 그릇이 돼야 하는데도, 여전히 묵은 포도주가 좋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기준을 꼬집는 말씀이죠. 그것은 좀 전에 말씀드린 바리새인의 기도에 나온 내용이 그랬죠. 누가복음 18장 11절에서 그들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한다면서 자랑하는 기도를 했었죠. 예수님 시대에 정말로 경건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해 왔는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고 여기는 목요일날과, 또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받아 내려왔다고 여기는 월요일날,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을 금식해 왔던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전통으로 여기면서 자신들은 남다른 유대인들이라며, 남다른 선민들이라면서 스스로의 규정으로 여기고 과시하며 의롭다고 여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같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셔서 먹고 마시는데, 자신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날 금식하고 있으니, 그것이 자신들의 열심과 헌신인양 여기면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게 당연했던 것이죠. 왜 너희들은 우리들처럼 하지 못하느냐, 하는 그런 투였죠.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심령이 새 포도주를 담는 새로운 그릇, 새로운 심령이 돼야 한다는 뜻이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일날 전했던 말씀이 깊은 깨달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율법은 하라는 248가지의 계명과 365가지의 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우리에게 강요하지만, 주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순종할 힘을 불어넣어주신다고 말입니다. 율법은 타인의 티끌을 정죄하지만 주님의 은혜는 타인의 들보까지도 다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율법은 가장 의로운 사람까지도 정죄하지만 주님의 은혜는 가장 더럽다고 여기는 세리까지도 품으시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