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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세리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앉아(눅5:27-32)

by 권또또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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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개인의 간구함이든지, 누군가를 위한 중보기도이든지, 주님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나병을 앓고 있어서 사회적인 격리의 대상으로 살았던 그 사람에게도, 또 중풍병자 곧 뇌졸중으로 쓰러져 도저히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그를 들 것으로 실어왔을 때에도, 우리 주님은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더욱이 그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에는 육신뿐만 아니라 그의 죄까지도 사해주신다는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전과는 달리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그 자리에 있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곧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당신이 친히 하나님의 아들임을 공개적으로 밝히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도 내 쫓으시고, 당신이 공개적으로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혔을지라도, 주님은 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인기와 명성,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고자 함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만 군중이 유혹해 오는 일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전에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이후에, 또 한 사람의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죠. 이른바 레위 곧 세관원으로 일하고 있던 세리 레위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이 레위가 실은 마태요, 훗날 마태복음을 기록한 장본인이지 않습니까? 레위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헬라식 이름이 마태였던 것이죠.

그런데 본문 28절이 이렇게 증언해줍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레위 곧 마태를 보고서 ‘나를 따르라’하셨는데, 그가 곧장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고 증언해주는 모습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단박에 따라나설 수 있는 것일까요?

이전에도 우리가 살펴봤듯이,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너에게 아들이 잉태될 것이다.’하는 그런 미션도 단박에 행한 게 아니라 전후 과정을 설명한 후였죠. 이른바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이 사라처럼 나이가 많아 도저히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지금 임신한지 6개월이 되었는데, 그 일이 성령으로 된 일이라면서 납득을 시켜주신 이후에, 너에게도 성령으로 아기 예수가 잉태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녀가 주의 여종이오니,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원하나이다, 하고 순종했던 것 말이죠.

또 있었죠.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곧장 “나를 따르라,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신 게 아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들의 배에 올라, 친히 복음의 말슴을 가르쳐주셨고, 그때 그들에게 그물을 깊은 데 던져보라고 해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나를 따르라”하셨던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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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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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그런 전후 관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 전후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3-1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 말씀을 통해 세리 레위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그가 세관에 앉아 있었다는 게 그것이죠. 당시의 세관원 곧 세리들은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고 있었고, 모든 일터에도 세금을 매기고 있던 사람들이죠. 심지어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이들에게도, 세금을 매겼죠.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세리였던 레위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가 고기를 잡을 때 분명코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겼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는 그 장면을 목격했던지, 아니면 들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그때 레위는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았겠습니까? 어떻게 평생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로 살아온 그들이, 한 순간에 예수란 사람을 따라 나설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이죠.

그런데 레위가 그것만 목격하고 전해 들었겠습니까? 그가 갈릴리의 세금원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병자들, 수많은 귀신들린 자들, 심지어 나병환자도, 또 중풍병자도 고쳐주시고, 그 죄까지도 사해주신다는 사실 앞에, 어찌 레위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들, 이런 전후사정들 속에서 이미 레위의 마음도 예수님을 향해 열려 있었기에, 주님께서 레위를 향해 “나를 따르라”하셨을 때, 그도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나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레위를 향한 주님의 관계형성 장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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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있잖습니까? 본문 29절 이하에 보면 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주님께서 레위를 향해, 다시 말해 마태를 향해 ‘나를 따르라’해서 세관원 직업을 내 팽개치고 주님을 따라 나섰고, 그래서 이제 자기 집에서 초청하여 예수님과 함께 큰 잔치를 열었던 것 아닙니까? 이때 ‘세리와 많은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다시 말해 또 다른 세리들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함께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이죠.

물론 그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면서, 어찌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냐고 비아냥 거리는 모습이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죠. “나는 너희들처럼 건강하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쓸 데 없고, 스스로 병들고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에게 쓸 데 있는 자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주님의 말씀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레위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가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고, 그 잔치에 참여했습니까? 세리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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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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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세리와 죄인을 동등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에게 고기에 대해 세금을 물리고, 그것으로 로마에 일정부분을 납부하고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돈으로 삼았으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을 죄인으로 취급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그 세리 레위의 집에 들어가 잔치를 벌이고 있고, 그 집에는 또 다른 세리들도 함께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또 다른 세리들’에 마음이 쏠리는 것이겠습니까?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또 한 사람의 세리, 아니 세리장, 다른 말로 하면 세관원 원장이 나오기 때문이죠. 여리고의 삭개오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도 주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되고, 그때 자신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축적한 것들을 다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의 변화를 보이죠.

바로 그 삭개오의 변화 때문에, 오늘 본문의 ‘또 다른 세리들’의 모습에 눈길이 쏠렸다는 것입니다. 세리 레위, 그 한 사람의 변화가 다른 동료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게 되었고, 그들의 변화가 여리고의 나사로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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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세리로 살던 레위가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받게 되자, 다른 동료들도 변화되었고,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주님의 소문을 들었던 삭개오까지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진정으로 찾아와 내가 죄인임을 알고, 영적으로 변화되고 이 땅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지금도 일어나는 놀라운 주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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