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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펼치신 공적 사역의 주무대는 갈릴리 가버나움, 곧 갈릴리 주변 마을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또 주님의 복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 다들 환영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어린 시절을 보낸 나사렛 산동네의 회당에서, 주님의 은혜의 해에 관한 복음을 전할 때 다들 놀랬지만,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죠. 왜냐하면 그런 은혜의 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 곧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임하기 때문이죠. 그러자 다들 예수님을 향해 화를 내면서, 그 산동네 아래로 밀어서 떨쳐버리려고 했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모든 자들에게 열려 있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역사하는 구원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힘이나 자기 능력을 믿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과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붙들고자 하는 자에게 임하는 구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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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나사렛 산동네를 빠져나와 갈릴리 가버나움에 가셔서 행한 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지형적으로 따지면 366미터 아래에 위치한 곳이 가버나움입니다. 유달산이 228미터 높이니까, 그 아래 있는 목원동보다도 100미터 가량 더 아래에 위치한 동네가 가버나움임을 알 수 있겠죠. 안식일날 그곳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처럼 똑같이 강론하시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들 놀라게 되는데, 그 분이 가르치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권위에 대해 신명기 18장 18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신명기는 모세의 회고록 아닙니까?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도록 하면서 다시금 광야에서부터 주신 그 말씀을 그들에게 강론한 것이죠. 그때 선지자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그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둘 것이라고, 그에게 명령한 것을 무리에게 다 말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준 것입니다. 그 선지자를 시대적인 선지자로 여길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가버나움 회당에서 전하는 구약성경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것을 예수님의 입에 두셔서 전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남다른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입에 당신의 말씀을 두고 계셨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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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회당에 나온 사람 가운데 귀신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큰 소리를 지르면서 말합니다. 34절에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이 누군지 귀신이 먼저 알아보는 모습입니다. 귀신의 영이 하나님의 아들을 먼저 알아본 것이죠. 그때 귀신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귀신을 꾸짖었고, 그 사람에게 들어갔던 귀신이 떠나가면서 그를 넘어뜨렸는데, 그 사람은 하나도 다친 게 없었죠. 우리가 귀신 들린 사람의 귀신을 쫓아낼 때도 이렇게 하면 된다는 뜻이죠. 다만 귀신 들린 사람에게도 인격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건드리거나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죠. 그 사람의 인격은 그대로 품어주되, 귀신을 향해서만 꾸짖고 나가도록 명령하면 되는 것이죠. 그렇게 귀신이 떠나가되, 그 사람을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니까, 모두들 놀라게 되고, 근처 동네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본문 38절은 이제 예수님께서 그 회당에 나가 시몬의 집에 들어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베드로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당시의 의술로는 열병을 고치지 못한 때였죠.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열병을 귀신을 꾸짖듯 꾸짖으면서 고쳐주셨습니다. 귀신도 아닌데, 열병을 꾸짖어 고쳐주셨다니,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겠냐고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으로서, 인격을 갖고 있든 비인격적인 사물이든, 모든 것을 통제하시고 제압하시고 다스리는 권세를 지닌 분이라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곧장 그녀가 예수님께 수종들었다고, 다시 말해 시중을 들었다고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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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0절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다는 소식, 또 가버나움에 베드로의 집이 있었는데, 그 장모의 열벙을 고쳐주셨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자, 인근 동네에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을 죄다 데리고 와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한 사람 한 사람 긍휼이 여겨주셨다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인산인해를 이루며 찾아온다면, 결코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만져주고 상담해주고, 살펴주는 게 쉽지 않는 일인데 말입니다.
오늘날 대학병원도 환자 한 사람의 진료 시간을 3분으로 정해 놓고 진찰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 더 많은 환자를 진찰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영리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목적으로 병든 자, 귀신 자들을 살핀 게 아니시죠. 그들을 향한 가난한 마음, 그들을 향한 공감적인 이해심으로 보살피면서 일일이 어루만진 것이었죠. 그래서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이 떠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 귀신들도 이전에 회당에서 했던 그 귀신처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본문 41절 중반절에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왜 그랬을까요? 오히려 더 퍼트리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8장 44절에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로 여길까 봐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한 것이죠. 대신에 그 백성들이 실제로 보고, 깨닫고, 예수님을 직접 하나님의 아들로 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그런 은혜를 입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다른 데로 못 가게 막아서는 모습이고, 예수님은 또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한다면서, 갈릴리 여러 회당에 가셔서 전도하시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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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인격이 있든 사물이든 그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을 통제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요, 어떤 귀신들도 다 제압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사탄은 공중권세 잡은 자로서, 그 수하의 귀신의 세력들을 동원해 우리를 유혹하고 믿음생활에서 넘어뜨리려고 하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기에, 더더욱 창조주의 능력이신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가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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