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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예수님께서 마귀 곧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죠. 돌이 떡이 되게 해 보라,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권세를 줄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보라 그러면 천사들이 너를 붙잡아 줄 것이다, 하는 세 가지 시험이었죠. 그때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 곧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것은 오직 말씀 속에 거하기 때문이었죠. 우리에게 악한 영들이 시험할 때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길도 예수님처럼 말씀의 은혜 안에 거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또 하나 있지 말아야 할 것은 악한 영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유혹해 올 수 있다는 사실이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너를 붙들어준다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해 오는 것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맹목적인 자기 자랑을 삼게 하는 일을 마귀는 유혹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도 말씀에 붙잡혀 있을 때에 우리가 악한 영들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이죠. 그렇게 매일매일 말씀의 은혜 안에 붙잡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벽을 깨우는 자들의 특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회당에서 사역하실 때 환영받으신 모습과 나사렛의 회당, 곧 고향 땅에서 사역할 때 배척을 받으신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인데, 어렸을 때 사신 곳은 나사렛 촌동네였습니다. 그런데 공적인 사역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그 사역을 위해 갈릴리에 거처를 따로 마련해 놓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그곳이 바로 갈릴리의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그곳에 또 다른 거처를 마련해 놓으셨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밝혀주고 있듯이 갈릴리 주변 지역에서 사역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병든 자를 고쳐주고, 상처받은 자의 심령을 어루만져주고, 또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그런 능력과 권능을 베푸시니, 어찌 갈릴리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에도, 이미 인근 지역에 좋은 소문이 나 있었으니, 회당에 모여든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더없이 칭송하고 또 칭송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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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문 16절 이하부터는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자라셨던 나사렛의 회당에서 있던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6절에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그 북쪽에 위치한 산동네 나사렛의 고향 땅으로 돌아온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곳 나사렛에서도 안식일이면 회당에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셨다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예배 모임을 꾸준히 참석하셨던 것을 알 수가 있겠죠.
그래서 어떻게 하시는가? 16절 하반절에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예수님께서 안식일 예배 모임에 참석하시면, 늘 하던대로 성경을 읽었다는 것이죠. 유대인들의 안식일 예배 모임이 그렇게 성경을 읽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렸다, 바꿔 말해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도록 누군가 이미 제시해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회당장이거나 서기관 출신이었거나 아니면 유대 사회의 또 다른 랍비였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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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정해 준 부분을 읽는 게 아니었습니다. 책을 펴서 다른 부분을 읽어나갔던 것입니다. 그 부분이 어떤 부분입니까? 이사야 61장 1절 이하의 말씀이 그것이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하는 그 부분 말입니다.
실은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사역의 초점이자 방향 아닙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것, 또 기름을 부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 곧 구원받게 하시는 것, 그리고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는 것, 다시 말해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것, 그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역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영적으로 눌린 자 곧 악한 영들에게 붙잡힌 자들도 완전히 놓임받게 하시는 것, 그것이 주님의 은해의 해, 곧 레위기 25장의 희년에 관한 말씀을 성취고자 하시는 것이었죠. 그것이 예수님께서 펼치실 사역의 초점이자 방향이죠.
그래서 그 말씀을 읽고 이제 덮었습니다. 그랬더니 청중들 곧 그 회당에 몰려든 나사렛 출신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죠. 본래 회당 예배에서 성경 부분을 읽은 사람이 그 부분에 대한 깨달음을 한 마디씩 하는 게 유대인들의 안식일 예배 전통이죠. 그래서 그 청중들이 예수님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무슨 깨달음의 말을 전할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꺼내신 첫마디가 그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것을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방금 읽은 구약의 이사야서 61장의 1-2절 말씀이 너희들에게 오늘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청중들은 모두 감탄하면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서로들 놀라서 묻게 되죠.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요셉의 아들이 어떻게 저렇게 은혜로운 말을 우리들에게 할 수 있냐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본문 23-27절 말씀으로 그 참석자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그들이 달가워 할 리가 없는 말씀을 하죠. 이른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일어났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낸 사람은 사렙다 과부 한 사람이었다는 것, 엘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나병 환자들이 많았지만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만큼 나사렛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나사렛 촌동네의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해가 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그런 하나님의 역사,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임하는데, 다들 그렇게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회당에서 듣던 자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좇아내서 산 아래 낭떠러지로 밀쳐버리려고 하죠. 나사렛 동네가 산등성 위에 자리 잡은 곳이라, 충분히 그렇게 밀쳐서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유유히 빠져 나가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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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 영생의 은혜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만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곧 자기 힘과 능력과 지혜를 부인하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와 말씀 안에 거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생명과 평강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그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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