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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하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왕하6:1-33)

by 똑똑이채널 202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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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내려가 7번 담글 때, 바꿔 말해 자기 지위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꺾고 완전히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 그를 치료해주셨죠.그에 반해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그가 가져온 예물에 욕심을 내, 엘리사의 이름을 팔면서 은 한 달란트옷 두벌을 받아 자기 집에 숨겼죠. 그리고는 태연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척 했지만,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역행하는 그에게 나아만의 문둥병이 걸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값으로 흥정하려는 자,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흠집을 내는 자,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말라는, 오늘날의 세대에 대한 경종의 음성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1-7절은 선지학교의 거주지가 좁아, 요단에 가서 나무를 베어 거주지를 짓고자 하는데, 그때 빌려온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 사건이 발생했죠. 엘리사가 나무를 베서 그 물에 던졌을 때, 쇠도끼가 떠오르는 사건입니다. 본문의 이 사건은 마태복음 1430절을 연상케 하죠. 풍랑과 바람을 보고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베드로를 건져주신 예수님의 모습 말입니다. 이것은 자연인 엘리사의 능력이 아니라,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사건의 궁극적인 본질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와 의를 위해 신실하게 일하는 자들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임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본문 8-23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인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치고자 하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본문 8-9절에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아람 왕이 이스라엘의 변방을 치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이스라엘 왕이 그 방면으로 군사를 보내기 때문에 쳐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따르면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죠. 이때 군대장관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앞장에서 살펴 본 나아만이 등장하지 않는 셈이죠. 나아만의 신앙심이 깊어지자 왕이 그를 경질시켰는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이 몇 년이 지나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데, 그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의 신앙심이 깊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겠죠.

그런데 이때 아람 왕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왜 그렇게 이스라엘 왕이 우리의 계획을 그때마다 알아차리는 것인지, 혹시 우리 가운데 세작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12절에 보면 그 신복 중 하나가 말하죠. 이스라엘의 선지자 곧 엘리사가 우리의 모든 논의 사항들을 하나님께 받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고해바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변방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죠. 그러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 오라고 병사를 보내죠. 그만 잡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변방을 능히 점령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벌어진 상황이 본문 13-15절의 말씀이죠.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안 아람의 병사들이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왔고, 그 모든 병거와 말과 수많은 군사를 본 엘리사의 사환은 지레 겁을 먹은 상황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어떻게 합니까? 본문 16-17절에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그와 같은 위기 상황에 엘리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세를 겸비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몸부림치며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돌봐주실 것을 믿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의 눈을 열어주어서,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 곧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할 때 탔던 그 천군과 천사의 병거가 훨씬 더 많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때 엘리사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아람 병사들의 눈을 다 멀게 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대로, 그 아람병사들의 눈이 멀었죠. 엘리사는 그때 그 아람 병사들을 이끌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 곧 여호람 왕이 있는 사마리아 성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자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엘리야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21절에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여호람은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하고 고백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람의 병사들을 코도 풀지 않고 한 순간에 완전히 진멸할 수 있는 상황이니, ‘내 아버지여하는 상황 아닙니까?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뜻이죠. 그래서 내가 다 죽이리이까하고 묻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때 엘리사가 뭐라고 합니까? 22절에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엘리사는 아람의 병사들, 눈이 멀어 지금 사마리아 성에 체포된 그 병사들을 죽이지 말고, 떡과 물을 먹게 하여 아람 왕에게 돌려보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너그럽게 돌려보내서, 아람 왕으로 수치를 느끼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람 병거와 말과 군사들이 다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 24-33절인데, 24절 서두에 “이 후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른바 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람의 병사들의 눈을 멀게 해서 사마리아 성까지 끌고 왔는데, 그들을 죽이려고 한 여호람 왕과는 달리 그들에게 떡과 물을 줘서 돌려보내게 한 그 후의 사건을 밝혀주는 내용입니다. 이때 아람 왕 벤하닷이 다시금 온 군대를 모아서,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읍을 에워싼 모습입니다.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성에 갇힌 사람이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해오지 못하니까, 다들 굶주려서 죽어가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로 인해 물가가 폭등한 상황이고, 그 속에서 도저히 먹을 것이 없는 집들은 자기 아들들을 죽여서 먹는, 한 마디로 인육을 먹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래서 왕에게 도움을 호소합니다.

그러자 여호람 왕이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본문 27절에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하나님께서 너를 돕지 않으면 나도 어찌 할 수가 없지 않느냐, 하는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본문 31절에서는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그만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완전히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본문 33절에서는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자신들이 성에 갇혀 굶주림에 처한 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일이라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항변하는 모습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한심한 왕이 된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되,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전에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또 형제지간인 에돔의 왕과 함께 연합군을 이끌고 모압을 점령하러 갈 때에도 7일간 기진맥진해 있던 그들에게 골짜기를 파서 그곳에 물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했었죠. 얼마 전에도 아람의 병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사마리아 성에서 그들을 체포했던 하나님의 대 역사를 맛보았죠. 그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에게 떡과 물을 줘서 아람 나라에 다시금 돌려보냈었죠. 그렇다면 이번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신뢰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는데, 왜 엘리사를 죽이려들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만큼 반신반의하는 신앙, 한 발은 주님께 다른 한 발은 세상 속에 두는 것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도 똑같지 않겠습니까? 이전에 우리 각자에게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했다면 여호람과는 달리, 하나님께 내어맡기며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인으로 사는 것 말입니다. 비바람과 눈보라 너머의 창공에 햇빛이 비치고 있는 것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보시고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불신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는지요?

저희들은 주님만을 의지하되, 어려운 난관과 한계상황에 치닫을 때에도 주님만을 신뢰하며 의지하게 해 주시옵소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나를 위해 일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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