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 이스라엘의 9번째 왕인 여호람은 미지근한 신앙의 전형이었습니다. 아버지 아합의 22년 통치 때에도,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비가 왔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 간에 세기의 대결을 통해 하늘에서 불로 응답해 주셨죠. 그것을 여호람이 모를 리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 그러니까 아합의 첫째 아들이자 북왕국 이스라엘의 8번째 왕 아하시야가 왕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동생 여호람은 확실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 아하시야가 왕으로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 돌아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죽음의 병을 가져다줬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오히려 이방 신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로 하여금 ‘그가 병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하고 심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응당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했죠. 하지만 그는 오히려 엘리야를 체포하려고 50부장과 50명의 군사들을 두 번씩이나 보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불로 그들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다만 세 번째 보낸 50부장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연약함을 구했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려주셨죠. 적어도 그 모든 상황을 지켜봤던 아하시야라면 그때에라도 하나님께 돌아서야 했는데, 끝까지 자기 고집을 피우다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아합의 아들이자, 아하시야의 동생인 여호람, 북왕국 이스라엘의 9번째 왕 여호람은 정말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아버지 아합이 세운 벧엘의 신전과 아세라 형상 곧 풍요와 번여의 신상은 제거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과 단의 황금송아지 신전은 그대로 놔 둔 채 백성들이 그곳에서 자기들의 욕망을 좇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대로 나라를 개혁한 게 아니라 자기 입맛에 맞게 개혁하는 정도였고, 그것이 곧 미지근한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미지근한 신앙상태는 그가 연합군을 이끌고 나간 전투에서 곧장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주도하에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자신의 형제 국가인 에돔 왕과 함께 연합군을 형성하여 모압을 치러 갔죠. 7일간 광야에서 기진맥진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그곳에 골짜기를 파게 했고, 그래서 물을 공급해 주시는 은총을 베푸셨죠. 뿐만 아니라 그 물을 핏빛으로 바라본 모압 군사가 쳐들어왔는데, 그때 매복하고 있던 그 연합군이 그들을 모두 도륙냈습니다. 내친 김에 이제 모압의 성읍까지 점령하려고 쳐들어가는데, 그날 위기를 모면코자 모압 왕이 자기 아들을 자기들이 믿는 신 그모스에게 번제물로 바칠 때, 여호람은 그만 모든 전쟁을 중단하고 돌아서버렸습니다. 이유인 즉, 그 그모스 신의 영향력이 자신들에게 화로 다가올까 두려웠던 까닭이죠.
그만큼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는데, 그때뿐인 게 아니었죠. 아람 왕이 이제 대신들과 의논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비대를 뚫고 점령하도록 군사들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철저한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이었죠. 그게 한 두 번이 아니라 수차례 그런 방어작전을 펼치니까, 아람 왕은 세작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죠. 그때 신하 가운데 하나가 말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사람 곧 엘리사 선지자가 왕에게 그 모든 비밀을 말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자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잡으러 가라고, 많은 군사를 보냈죠. 그런데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고, 졸지에 그들을 왕궁이 있는 수도 사마리아 성읍까지 데리고 가서 체포하게 만들었죠. 그때 여호람 왕은 그들을 모조리 죽이도록 했는데, 엘리사는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서 고국 아람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했죠. 그만큼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신뢰하라는 주문이었죠.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그렇게까지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봤다면, 이제는 여호람 왕이 미지근한 신앙심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좇고 의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제도 살펴봤지만, 아람의 병사들이 눈이 먼 채 체포되었다가 이제 자기 고국을 돌려보냈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서, 아람 왕 벤하닷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수도 사마리아 성읍을 애워싼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곡물 값이 폭등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들을 삶아 먹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죠. 그때 여호람은 그 모든 일이 엘리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엘리사를 죽이려 들고 있고, 그 모든 재앙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일이라면서, 하나님을 더 기다리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1-2절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엘리사는 지금 아람 병사에 의해 사마리아 성이 포위되고, 먹을 것이 떨어져 물가가 폭등한 상황이지만, 바로 이때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요, 폭등한 물가가 안정되고, 모든 게 회복될 것이라고 선포하죠. 그러나 이때 왕을 떠받들던 장관 하나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고 나서죠. 하나님께 하늘에 창을 내신다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이죠.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분명코 그 일들을 볼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걸 먹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말하죠.
그래서 본문 3-9절까지는 성문에 있던 나병 환자, 당시 사회적인 격리의 대상이었던 나병환자들이 하나님의 대역사를 먼저 보게 되죠. 그들은 이 성밖에서 죽나, 아람 군대에게 항복해 죽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이니, 차라리 아람 군사에게 항복해서 배나 채우고 죽자고 결단하고, 아람 군대의 진영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람 군대가 모든 물자며 무기들이며 먹을 식량까지 놔두고 떠나버린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 사실을 10-11절에 보면, 성읍 문지기들에게 알렸고, 또 12-15절에서는 왕에게 그 소식을 전하게 되었는데, 여호람이 그게 확실한 것인지 선발대를 먼저 보내서 알아보게 하죠.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사실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16절에 보면 선발대가 알아보고 오는 그때 이미 일반 백성들이 먼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진영에 가서 먹을 것들을 다 노략해 오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장관,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조롱했던 그 장관이 나서서 백성들을 정비하려고 하는데, 그는 그만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는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죠.
왜 하나님께서 완전히 포위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읍의 백성들에게 그런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까? 왜 여호람에게 그런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까? 그 백성들을 사랑하신 까닭이요, 미지근한 신앙의 전형인 여호람이 그때라도 하나님께 돌아서길 바라는 심정 때문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한 그 거만한 장관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목격하긴 했지만 백성들의 발에 밟혀죽는 최후의 심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22:22) 하나님의 능력을 철저히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여호람의 미지근한 신앙과는 달리 뜨거운 신앙인, 여호람을 떠받들던 그 장관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철저하게 의지하는 신실한 신앙인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새로운 역사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아합의 22년 통치때에도, 그 아들 아하시야의 2년 통치 때도,
그리고 여호람의 12년 통치 기간에도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호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미지근한 신앙상태를 보였습니다.
왕궁과 수도가 포위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또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떠받드는 장관도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고 조롱하다 끝내 백성들의 발에 밟혀죽었습니다.
저희들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더욱 신뢰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 속에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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