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적인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쥐고 있던, 그래서 여태까지 자기 방식대로 모든 것들을 판단해왔던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은혜를 덧입어 나병 곧 문둥병에서 고침 받았습니다. 그가 그 나병에서 고침 받은 것은 요단강에 내려가 일곱 번 몸을 씻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왜 굳이 그런 방식을 통해 그의 질병을 낫게 하셨나요? 요단강이란 이름 뜻이 ‘내려가다’는 의미였죠. 그만큼 자기 방색대로 판단하고 생각해왔던 교만한 심령 상태를 완전히 깨트리라는 뜻이었죠. 그 마음이 비고 비인 마음의 상태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심령의 상태가 되도록 한 것이죠. 그때 그의 나병을 치료시켜주셨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때로는 내 교만한 마음과 오만한 마음을 깨트리기까지 우리를 한계상황으로 몰아넣으실 때가 있죠. 내 심령의 상태를 완전히 밑바닥으로 내려놓게 하셔서 새로운 은총으로 회복해 주시는 것 말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고침받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다시 돌아와 인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나아만은 병을 고침받은 후에,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엘리사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고백하죠. ‘내가 이제야 이스라엘 외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는 줄을 알았습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만큼 그 나병에서 고침을 받게 한 하나님의 대 능력을 체험한 나아만은 하나님을 드높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제가 가져온 예물을 받으소서.’하고 말이죠.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당신의 종’이라고 부른 것은 곧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한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만큼 나아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를 처음 찾을 때와 완전히 대조된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때는 자기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엘리사를 대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다해 엘리사를 대하는 심정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세를 견지한다는 점이죠.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나추며, 예물을 받으라고 청하는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보인 태도가 어떻습니까? 본문 16절에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엘리사는 나아만이 처음 그렇게 말해도 받지 않겠다고 했도, 재차 강권해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엘리사가 거절했겠습니까? 그가 병 고침 받은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행위에서 나온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 나병으로부터 고침 받은 것은 겸손한과 믿음, 그 심령의 상태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는 자세로 나아갔을 때 받은 죄 사함과 병고침의 은총이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엘리사가 그의 예물, 곧 은 10달란트 약 340Kg, 금 6000개 즉 한 세겔을 약 11.4g으로 계산하면 약 68.4Kg, 그리고 의복 10벌,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금 1g을 58,980원으로 쳤을 때 약 40억3천400만원, 또 은 1g을 1,245원으로 치면 약 4억2천300만원이 되는 그 예물을 모두 거절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돈이나 물질로 살 수 없는 것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나아만은 그렇다면 이제 내 고국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경배할 제단을 쌓을 수 있는 흙을 싣고 가겠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18절의 말도 추가로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무엇을 뜻하는 말씀입니까? ‘내가 이스라엘 땅에서 모든 신 가운데 가장 위대하신 신, 곧 유일하신 하나님을 만나 병을 고침받았는데,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내가 살고 있는 아람 땅에서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내가 흙을 싣고 가서 저 홀로 따로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제 위치가 지금 군대장관으로서 왕으로 모시고 있고, 또 왕이 아람의 신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혀 절하고 경배할 때 저도 왕을 받들어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하는 고백이죠.
이때 엘리사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본문 19절에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이른바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너의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요, 네가 뜻하는 바를 받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죠. 이것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른바 믿는 집안의 딸이 믿지 않는 집안에, 더욱이 제사를 모시는 집안에 시집을 갔는데, 평소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그 아내가, 이제 남편의 집에 가서 제사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 또 그 제사상에 절해야 하는지, 이런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경우에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견해를 밝힙니다. 초반부터 완전히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우상의 집안에는 절대로 제사장도 차리는데 협조하지 말고 완전히 그 집안 행사에는 참석조차 하지 말라는 견해, 또 다른 견해가 있죠. 오늘 본문의 나아만의 상황처럼, 그 집에 가서 음식도 차려주고, 또 절을 하는 것을 형식적으로 하되, 그 전에 시어머니나 집안 식구들에게 잘 말을 해서 절하는 것만은 하지 않도록 하되, 대신에 그 음식을 만드는데 진실된 마음, 머잖아 이 집안 식구들이 나 때문에 모두가 구원받은 은총을 내려달라는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그 분들도 다 헤아려주지 않겠느냐, 하는 견해 말입니다.
본문의 엘리사, 곧 하나님의 마음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때의 상황은 나아만이 처음 하나님을 영접한 상황이고, 이 이후에 이스라엘과 아람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지는데, 그때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아만이 신앙심 때문에 자기 지위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그 신앙심 때문에 군대장관에서 좌천됐는지, 알 길이 없지만, 초신자의 경우, 그 집안의 영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없는 연약한 상태라면, 기꺼이 이런 모습도 우리가 포용하는 자세로 행하도록 권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어서 본문 20-27절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나아만이 그렇게 엘리사에게 인사를 하고 가져왔던 예물을 싣고 돌아가는데, 그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그 뒤를 좇아가 나아만에게서 예물을 취한 장면입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이름을 팔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서 자기 집에 숨기죠. 그런데 그 일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나아만이 걸렸던 나병이 게하시에 걸리죠.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곧 귀한 복음의 선물을 물질로 바꾸려는 가증스러운 죄악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아무 대가 없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구원은 돈이나 물질로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죠. 그런데도 돈으로 그 잇속을 챙기려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지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무얼 말씀하십니까? 초신자나 새신자가 제사를 드리는 집안에 살 때, 어떻게 내가 권면해야 하는가, 그걸 깨닫게 해 주십니다. 아울러 주님의 핏값으로 얻는 구원을 물질의 잇속으로 챙기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오늘도 그런 은혜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본대로 들은 대로 권면할 때가 많습니다.
본문 속 나아만처럼 영적인 초신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권면해야 할지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구원이니,
게하시처럼 물질로 잇속을 챙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살게 하시옵소서.
오직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 앞에 매일매일 신실하게 응답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새벽묵상DewSermon >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왕하7:1-20) (0) | 2021.07.30 |
---|---|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왕하6:1-33) (0) | 2021.07.29 |
이에 내려가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왕하5:1-14) (0) | 2021.07.27 |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왕하4:8-44) (0) | 2021.07.26 |
기름한 그릇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왕하4:1-7) (0) | 2021.07.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