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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받고, 친족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확실한 것인지 확인하러 그녀의 집에 갔었죠. 그때 복중의 태아가 뛰었고, 엘리사벳도 마리아를 보는 순간 성령에 이끌려서 그녀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주님의 어머니라면서 경외심을 갖고 대했죠. 그때 마리아는 하나님께 영광의 찬가를 불렀고, 6개월간 그녀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가, 드디어 엘리사벳이 출산하는 날이 돌아왔죠. 그때 엘리사벳은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고 싶어하는데, 그 가문 사람들은 사가랴로 짓자고 했죠. 그때 벙어리였던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라고 쓰자, 그때서야 그의 입이 풀렸고, 그는 마리아처럼 하나님께 경배의 찬가를 불렀죠. 그 사건은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임을 그 지역 사람들에게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실 때에는 뭔가를 예고하시고, 또한 확증해 주시는 사건을 펼쳐주신다는 것 말이죠.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그때에’란 요한이 출생하고 시간이 조금 흐른 때죠. 정확히 말하면 6개월이 흐른 시점이죠. 예수님은 그보다 6개월 뒤에 태어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때 아우구스투스B.C.44-A.D.14)가 로마의 황제였는데, 다른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Gaius Octavius)였죠. 그가 황제로 등극하여 통치하던 시절에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영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내린 호적 명령은 로마의 속국인 수리아, 다시 말해 시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받은 구레뇨(Quirinius)가 유대 지역까지 다스리던 때에 행해진 호적명령이었죠. 구레뇨는 역사적으로 두 번에 걸쳐 수리아 총독을 역임했다고 하는데 B.C3-2년과 A.D.6-7년입니다. 그 중에 B.C3-2년 즈음에 호적 조사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출생도 바로 B.C.4-3년 사이에 있었던 것인데,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B.C.4년으로 보죠.
중요한 것은 왜 누가가 그와 같은 로마의 황제와 수리아의 총독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냐는 것이죠. 어쩌면 그토록 막강한 세계 통치권자의 상황 속에서 이 땅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결코 영원한 구원은 줄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대비해 주기 위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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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4-5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마리아는 이미 엘리사벳과 함께 있던 그 6개월 전의 어간에 아기를 잉태한 상황이었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날 즈음에 남편 요셉과 함께 황제와 총독의 명령에 따라 호적하러 가기 위해서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간 상황입니다.
그런데 6절이 이렇게 증언해 줍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때마침 해산할 날이 다 찼는데, 여관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말 구유통에 뉘었다고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기 예수의 탄생의 흐름을 밝혀주는 세 가지 사건입니다. 이를테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로마의 황제와 그 속국의 총독의 치세 속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그러나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태어났다는 것을 통해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리고 그 분은 왕실이 아닌 말 구유통에 태어나셨는데, 그만큼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의 심령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시는 주님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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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20절까지는 주님의 사자, 곧 천사들이 목자들에 발표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를테면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는 상황인데, 천사들이 나타나서 주님의 영광을 그곳에 비추고 있는 모습이었죠. 그대 그 목자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천사들이 이렇게 선언하고 있 것이죠. 본문 10절의 말씀처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하고 말이죠.
목자들이 양 떼를 지키고 있는데, 그곳에 천사가 빛을 비춰주니,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윗의 동네에 구원의 주님이 태어나셨으니, 그가 그리스도라고 곧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것이죠. 그리고 12절에서는 너희들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실한 증표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바로 그때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을 부르죠.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이 모든 사실을 전해들은 목자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들은 곧장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 천사가 말한 것, 또 그 천사들이 찬양한 사실이 다 사실인지, 확인하죠.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곧 이 땅의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를 확인하게 되죠.
그런데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된 그 목자들이 이내 그 모든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게 됩니다. 물론 그 소식을 접한 베들레헴 동네 사람들은 ‘놀랄’ 뿐이죠. 그야말로 엉뚱하다는 뜻이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본문 19절의 마리아만은 그 일들이 사실임을 알고 있죠. 그래서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했다”고 밝혀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천사의 증언과 그 천사들의 찬송을 듣게 된 그 목자들도 정말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를 보고나서는, 그 모든 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고 본문 20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땅의 메시아 곧 구원자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 여전히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고, 반면에 그 모든 사실을 믿게 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죠. 이것은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최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전했어도 믿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과 똑같은 경우죠. 심지어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봤어도, 그래서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했어도 믿지 아니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바꿔 말하면 아기 예수의 탄생, 메시아로서의 탄생 역시 성령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야 사람들이 믿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본문 21절은 세례 요한의 경우처럼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8일이 되었을 때 할례 의식을 행하고, 그때 이름을 짓게 되는데 ‘예수’라고 하죠. 그것은 세례 요한의 경우처럼 천사들이 일러 준 그대로의 이름,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온 인류의 구원자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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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어떤 통치자와 권세자들이 다스린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평강을 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참된 구원자요, 영원한 평강의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2천 년 전에 그 분이 태어나신 것을 목격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때는 우리 식으로 빗댄다면 신라의 박혁거세가 알에서 깨어났다고 하던 그 시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떻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믿고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오직 성령님의 은총 속에서, 성령님의 감동하심 속에서 믿고 있는 것이죠. 오늘 하루도 그와 같은 성령님의 감동 속에서, 성령님의 이끄심 속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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