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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데오빌로여(눅1:1-4)

by 똑똑이채널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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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제 누가복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은 성경의 내적 증거 또 성경 밖 외적 증거로 누가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의 헬라식 이름으로 ‘루카스’ 혹은 ‘룩스’ 곧 ‘빛’ ‘빛을 주는 자’란 뜻을 지닌 자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할 때 그 빛,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알리는 자, 세상에 그 빛을 전하는 자가 곧 ‘누가’인 것이죠.

과연 누가가 언제 어떤 방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빛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그는 본래 유대인이 아닌 이방 사람 곧 비시디아의 안디옥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그 누가를 향해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4:14)라고 소개를 하죠. 그런 점들을 볼 때 바울이 실라를 데리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1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했던 기존 지역들, 이른바 최초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고향 다소로, 다소에서 루스드라로, 루스드라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아시아 지역의 무시아로 가서 돌아보고 오려고 했는데, 전혀 뜻밖에 밤에 환상 중에 성령님께서 드로아 사람들을 보여주셔서, 유럽 대륙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무시아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면 유럽대륙의 첫 관문인 빌립보로 가게 되는데, 바로 그 직전에 바울이 만난 사람이 의사 누가였던 것입니다. 본래 누가는 비시디아 안디옥 출신인데, 그 당시 아시아 지역의 버가모 지역에 있는 의과대학을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버가모 지역 인근에서 의원을 개원하여 의사로 일하던 사람이었죠. 바울이 그곳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누가를 만나서 복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의원 누가가 주님의 복음을 영접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고 이후에 바울의 선교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바울은 누가에게 영적인 의원으로, 누가는 바울의 지병을 돌보는 육적 의원으로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바울과 누가가 함께 선교지를 누비면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고, 그 이후 A.D.60년 초반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라는 두 개의 편지를 써 본문 3절의 주인공인 ‘데오빌로’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신약성경에 가장 긴 구절로 돼 있는데 무려 1,121절이죠. 마태복음은 두 번째로 긴 구절로 1,071절, 마가복음은 678절, 요한복음은 1,416절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1,007절입니다. 바꿔 말하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함께 묶으면 총 2,128절이 되는 셈입니다.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쓴 사람이 사도 바울 곧 27권 가운데 13권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총 절 수가 2,032절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절 수를 쓴 사람은 누가라는 사실이죠. 적어도 누가는 신약성경의 27%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는 누가복음을 쓰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을까요? 마태나 마가나 요한처럼 누가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었겠죠. 그런데 마태는 유대인을 겨냥해서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 곧 왕 되심에 초점을 맞추었고, 마가는 로마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고통받는 종’의 관점으로 썼죠. 그에 비해 누가는 헬라 사람들 곧 이방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 곧 ‘사람의 아들’에 대한 특징을 갖고 썼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방점을 두면서 썼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보고서 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자로서 제공하신 일들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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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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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1-2절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성취하신 일들에 대해 ‘목격자’가 있었다는 것, 또한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 준 내력들을 글로 쓰려고 붓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자기 자신을 밝히죠.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 자신이 그런 사람들처럼 붓을 들었는데, 그 근원부터,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처음 일들부터 제사히 살폈고, 그 사실을 토대로 누가복음서를 쓴 것이죠.

그런데 누구에게 써 보냈다고 합니까? ‘데오빌로 각하’죠. ‘각하’란 말은 ‘크라티스토스’(κράτιστος)로서 ‘총독’이란 말과 함께 ‘고위급 관료’(most excellent)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만큼 데오빌로는 가장 고귀한 직함을 갖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데오빌로’란 이름 자체는 헬라어로 두 가지 단어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뜻하는 ‘데오쓰’(θεός)와 ‘친구’ 혹은 ‘사랑’을 칭하는 ‘필로스’(φίλος)가 합쳐진 말입니다. ‘데오빌로’란 ‘하나님의 친구’(friend of God),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lover of God)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어느 인간이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4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나의 벗’ 곧 ‘나의 친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2:23)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 하나님의 벗,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는 본래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깎아 만든 자였지 않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친구가 될 자격조차 없는 자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찾아와 은혜를 베푸셔서, 그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셔서, 그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친구로 여김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데오빌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데오빌로란 사람이 이방 나라의 사람으로서 이방 지역의 ‘총독’ 혹은 ‘각하’로 직임을 감당했다 해도, 그는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데오필로스’ 곧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2차 전도여행 때 의원 누가에게 바울을 보내주지 않았던들 데오빌로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의원 누가가 영적인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먼저 베푸신 은혜요, 데오빌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누가를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일이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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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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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창세기의 첫째 날에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둘째 날에 궁창을, 셋째 날에 땅과 그 위의 식물들을, 넷째 날에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다섯째 날에 궁창 위를 나는 새와 날짐승들을, 여섯째 날에 땅 위의 짐승과 맨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맨 처음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다가 끝내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치 극장의 객석과 무대를 모두 셋팅해 놓으신 다음에 그 무대 위에 배우들을 올리게 하는 것처럼, 모든 천지만물을 준비해 놓으신 다음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춥고 배고프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 은혜가 바울에게, 또 의원 누가에게, 또 데오빌로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 아닙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들을 통해 당신의 복음을 널리 전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누가요, 하나님의 친구인 데오빌로로 살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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