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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의 시작하는 내용은 예수님의 족보를 나타내는 마태복음이나 예수님의 공적 사역과 함께 시작하는 마가복음과는 달리,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를 먼저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례 요한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 위한 예비하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죠. 이른바 아브라함처럼 나이가 많은 사가랴, 그리고 사라처럼 경수가 끊어진 엘리사벳처럼, 그 부부는 전혀 자식을 잉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부부에게 아들이 생길 것을 천사 가브리엘이 알려주었습니다. 그 증표로 그 남편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었고, 6개월 동안 엘리사벳은 창피해서 숨어지냈죠.
바로 그 즈음에 천사 가브리엘은 또 한 명의 여인에게 또 하나의 탄생 예고를 알리게 되죠. 이른바 결혼하기로 약속은 했지만 아직 부부관계를 맺지 아니한 동정녀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게 그것이었죠. 그때 마리아는 처녀가 임신하면 당시의 율법으로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일이 내게 있을 수 있겠냐고, 펄쩍펄쩍 뛰었겠죠.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부부가 겪은 일들, 도저히 임신치 못한 그 부부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들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죠. 그때서야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이오니,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하고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우리에게 예고하는 일들이 과연 성령님의 역사인가, 아니면 마귀 사탄의 장난인가,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먼저 이해를 시켜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먼저 경험한 이들의 체험과 간증을 통해 듣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평강과 기쁨을 주신다는 것이죠. 그때 비로소 담대하게 그 일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시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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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은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보인 행동과, 마리아가 부른 찬가, 그리고 세례 요한의 출생과 사가랴의 예언이 기록돼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이제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보인 행동이 무엇입니까? 본문 39절입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마리아는 곧장 유대의 한 동네, 이른바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서 엘리사벳을 만나보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빨리 걷는 마음이지 않았겠습니까? 왜죠? 정말로 엘리사벳이 임신해 있는지, 6개월이 된 상태인지, 자기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찾아간 것이었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41절의 새번역이 이렇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는데, 엘리바셋의 태아가 마구마구 뛰었고, 성령에 충만한 엘리사벳이 외쳐 말했던 것이죠. 당신은 여러 여자들 중에서 가장 복을 받은 자요, 당신의 태아도 복을 받았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높임말을 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조카 며느리로 여긴 게 아니라, 성자 하나님을 잉태한 ‘주님의 어머니’로 섬기는 모습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의 말이 사실임을 알도록 하라는 거죠.
그때서야 마리아는 진짜였구나,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곧장 기쁨의 찬가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본문 46-56절까지 나온 내용입니다. 이 찬가의 첫 번째 소절은 46-48절로서,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두 번째 소절은 49-50절인데,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과 자비하심을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 소절은 51-53절까지로, 하나님의 능력은 사회적인 연약한 자들도 당신의 권세 안에서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소절은 54-55절로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마리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향해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찬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마리아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셨고, 권세 있는 자나 교만한 자는 내리치시되 겸손한 자와 주린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는 조상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한 자비를 잊지 않으시는 전능자이심을 찬양하는 찬가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리아는 석 달 동안 엘리사벳의 집에 함께 있었는데, 9개월 곧 세례 요한이 태어날 그 시점까지 마리아 자신도 숨어 있으면서, 또 성령 안에 잉태된 아기 예수를 돌보면서 그곳에서 살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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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해산할 기한이 돼서 세례 요한이 태어납니다. 그때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난지 8일이 되었을 때 할례를 행하고, 이름을 짓게 되었는데, 아버지 사가랴는 벙어리가 돼 있는 상태였고 가문의 문중 어른들은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지으려고 하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엘리사벳은 사가랴로부터 전해들은 바가 있어서 ‘요한’이라 짓자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문중 사람들, 그 가문 사람들, 그들은 다들 말리죠. 아버지 사가랴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사가랴라고 해야, 뼈대 있는 가문임을 자랑할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때 벙어리인 사가랴가 나섭니다. 서판에다 ‘요한’이라고 쓰죠.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까지 벙어리로 지낸 사가랴의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된 것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요, 이전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세례 요한이 잉태하고 태어난 것도 자신들의 힘이나 자신들의 가문이 잘 나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요 은총임을 알 수 있게 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가랴는, 앞서 찬가를 불렀던 마리아처럼, 또 다른 찬가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본문 67-80절까지가 그 내용인데, 그 중 첫 번째 소절이 68-75절까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무슨 고백입니까? ‘메시아의 구원을 찬양’하는 내용이죠.
두 번째 소절은 76-79절까지입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무슨 내용입니까? ‘요한의 사명’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 사함의 구원을 알리는 자,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사명을 다할 것을 알리는 내용이죠.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역 곧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에 나설 때까지 빈들에서 지냈다고, 마지막으로 부분에 밝혀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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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은 예고로만 끝나게 하시는 게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셔서 주님을 찬양하게 만드신다는 것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이런 놀라운 성령님의 은총의 역사가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또 다른 찬가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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