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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가복음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막16:1-20)

by 권또또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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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사라지고 그 땅에 흑암 곧 어둠이 내리깔렸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 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일이 하나님의 진노인 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선조 곧 애굽 땅에서 430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어 출애굽할 때 그때도 그런 일이 애굽 땅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요, 그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 줬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구약성경에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임을 예언한 구절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3시간 동안 진행된 그 어둠, 그 흑암은 하나님의 심판임에 분명했죠. 그 3시간이 이제 끝날 시점인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는 아람아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면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2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임준식의 〈임종학 강의〉에 보면 사람은 마지막에 영안이 열려 빛을 보는 단계에 진입을 한다고 하죠.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특징인데, 바로 그때가 육신의 옷을 벗고 영적인 빛의 세계로 진입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로 그때 육신의 옷을 없고 하나님 나라의 빛의 세계로 입성하셨을 것입니다.

그 모습은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도 더욱 명확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통해 스데반 집사가 공회원들 앞에서 설교를 끝마쳤을 때, 그들이 이를 갈면서 스데반 집사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영안을 열어주셨는데,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55-56)한 것을 증언해주는 게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운명 직전에 영안의 세계가 열려, 하나님께서 당신을 바라보시되, 스데반 집사의 죽음보다도 더 안타까워하시면서, 서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그 모습을 영적인 세계의 눈으로 바라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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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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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예수님께서 일찍 숨을 거두셨는데, 그 소식을 접한 로마 총독 빌라도는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매 달아 놓으면 하루나 이틀 많게는 3일까지 가는 법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셨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바로 그 즈음, 오후 3시가 넘어가면 이제, 유월절이 시작되고 안식일로 넘어가는 시각이라, 로마 군병들은 물론이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 역시,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이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 동물 무덤에 안장하겠다고 하니, 빌라도 총독은 그렇게 하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다만 마가복음은 그 아리마대 사람이 예수님의 무덤도 준비했고, 또 예수님을 염하는 세마포도 모두 준비한 것으로 나오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공회원인 니고데모도 함께 준비했다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이나 유대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들은 정성을 다해 주님의 장례를 치러드리고자 했던 것이죠.

이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동굴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장면과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장면,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그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안식일이 지날 무렵에 미리서 향품을 사 두었던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 후 첫날 곧 우리식의 주일날에 예수님의 시신에 그 향품을 더 발라드리고 싶었던 까닭이죠. 그래서 안식 후 첫날 곧 주일날 이른 새벽에 그 동굴 무덤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본문 4절에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굴리기 힘든 그 돌이 지금 굴라가 있고, 그 동굴 무덤이 열린 상태를 보게 된 것이죠. 그녀들이 놀라고 있을 때, ‘청년 하나’ 곧 천사가 그녀들에게 말합니다. 본문 6절에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지금 주님께서 부활하셨고, 그가 누우셨던 자리에 그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해서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고 하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들은 아무런 말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 숨 돌린 다음에야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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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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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잘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9절부터는 이제 주님께서 친히 여러 사람들에게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신 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곧 주일날 이른 아침에 최초 막달라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여러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는데, 11절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마리아가 아무리 주님의 부활소식을 전해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에는 그 뒤에 시골로 가는 두 사람, 누가복음에서는 “엠마오 도상으로 가는 두 제자”(24:13)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그 소식을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알리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본문 13절 마지막 부분에서도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합니까? 주님께서 이제 11명의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신 장면을 본문 14절에 밝혀주죠. 왜죠? 처음 부활 소식을 접한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여자들, 그리고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에게 소식을 들었다면 곧장 갈릴리로 가야 했을 텐데, 아직도 예루살렘 주변에 머물고 있었으니, 속이 터진 주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이었죠. 그래서 14절 중반부에 “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었다”고 증언해 주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당신이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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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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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2천 년 전 제자들의 모습이었다면 과연 나는 믿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나 야고보의 어머니나 살로메가 부활소식을 전할 때, 혹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가 전할 때 곧이곧대로 믿었을까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시대의 세상 사람들만 봐도 똑같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해도, 세상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믿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심령이 어두워진 부분도 있지만, 성령님께서 그들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죠. 바꿔 말해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자연스럽게 믿는 것도 그와 똑같은 이치죠. 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 사실을 믿도록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내가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오늘도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확증과 더불어서 본문 15-18절은 온 천하에 다니면서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주님의 증인이 될 때 그에 따른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고, 본문 19-20절은 주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이제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음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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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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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우리 심령에 가장 깊숙이 새겨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것 같아도, 내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실은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내 믿음도 바람 앞에 등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만큼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믿음의 삶을 살면 살수록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더 고백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겸손한 심령으로, 궁핍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 수 있는 하루의 삶, 일주일의 첫날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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