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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유의 기름을 짜는 듯한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 그 기도는 나의 육신을 고집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 헤아리고 쫓는 기도요, 그런 응답을 받았어도 제자들의 연약한 수준을 나무라거나 책망치 않고 오히려 당신의 한 없는 사랑으로 품고 격려하시는 모습이 겟세마네의 기도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 수준이 점점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모든 게 실은 나의 열심과 나의 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주님의 한없는 긍휼과 사랑 때문에 성숙해지는구나,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만큼 가난한 심령, 빈들의 심령, 목마른 심령의 자세를 지니는 것 말입니다.
아울러 나의 수준보다 한 없이 못 미치는 것 같은 누군가의 기도 수준이 있을 때, 그에게 나의 수준을 따라오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그의 연약한 수준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을 따르는 자의 태도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피곤해서 눈이 축 쳐져 있는데, 왜 너희들은 나처럼 기도하지 못하느냐, 그렇게 깨어 있지 못해 쓰겄느냐, 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도록 해라, 하고 오히려 격려했던 모습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의 수준이 그런 주님의 모습을 따르는 기도자들, 그런 주님의 은혜를 항상 머금을 수 있는 목마른 심령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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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주님께서 그 기도를 끝마치실 즈음, 제자들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그 즈음에, 가롯 유다가 체포조를 데리고 그곳에 나타난 장면입니다. 본문 43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파송한 무리들, 곧 예수님을 체포하라는 그 체포조를 데리고 함께 나타난 상황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가롯 유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올라가실 때, 그때 이미 그쪽 사람들과 함께 장소와 시간까지 다 모의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체포조들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 검과 몽치까지 대동한 것일까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적어도 예수님이 어떤 능력을 행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분이고, 파도와 풍랑을 잠잠케 하신 분이고,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까지 제어하신 분이기에, 어떤 능력으로 그 체포조들을 제압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래서 검과 몽치 정도면 무난히 체포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롯 유다는 그 캄캄한 밤에 자신이 입 맞추는 자가 예수요, 그 예수를 너희 체포조들이 체포하라고 이미 신호를 짜맞춰놓은 상태였고, 본문 45절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죠. 그때 그 체포조들이 주님을 체포하려고 하는 찰나에, 본문 47절의 일이 벌어집니다.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 버린 것입니다. 이 제자에 대해 요한복음 18장 10절에서는 그가 ‘베드로’였고, 그 종은 ‘말고’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8절에는 그날 검 두 개 곧 큰 칼이 아니라 작은 단 검 두 개를 챙겨갔다고 밝혀주고 있고, 베드로가 지금 그 단검 중에 하나를 꺼내서 그 말고의 귀를 쳐 버린 것이었습니다.
‘말고’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말코스’(Μάλχος)요 히브리어로는 ‘말라크’ 곧 왕이나 왕권을 뜻하는 말입니다. 무엇을 암시하는 뜻입니까? 그 체포조들 중에 말고라는 사람이 가장 큰 힘을 가진 자이거나 자휘관 격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베드로는 갈릴리 바닷가 어부 출신이지만, 주님의 제자군 속에는 열심당원 시몬 곧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시몬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적어도 그로부터 어떻게 적들을 섬멸해야 하는지, 그의 영웅담을 듣지 않았겠습니까? 베드로가 그 까닭에 적들의 공격을 차단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적들의 대장, 적들의 가장 큰 왕 곧 지휘관을 처단하면 모두 맥없이 도망갈 것으로 생각하여 단검을 휘둘러 ‘말고’의 귀를 쳐 버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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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베드로는 이미 그날 밤에 자신이 호언장담한 말 때문에라도 주님께 헌신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죠. 마가복음 14장 29절에서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그때 주님께서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하셨을 때 마가복음 14장 31절에 “내가 주님과 함께 죽을 지언정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했던 그런 장담 때문에라도 그 지휘관 말고의 귀를 처 버렸던 것입니다. 적어도 베드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모시는 길이요, 주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자세라고 여겼던 것이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베드로야, 정말 멋지다, 정말로 잘했다, 너 정말로 충성된 일꾼이구나, 하셨습니까? 본문 48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그런 충성심이나 헌신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무리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이죠. 너희들이 강도를 잡듯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온 것이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있을 때에는 왜 나를 잡지 못했느냐. 그러나 지금 이런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니라, 곧 너희들의 뜻과 계획대로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좇아 내가 너희에게 나를 내어주는 것이니라, 더 구체적으로 말해 나는 너희들을 따르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로서, 지금 너희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베드로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한 마디로 완전히 뻘쭘해지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은 주님께 충성한다고 하는데, 주님은 그것에 순순히 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내가 내 열심과 내 자랑으로 하는 일이, 주님의 뜻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호기, 베드로의 자랑으로 빚어낸 일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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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아는 게 중요하죠.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죠. 그것이 곧 성경말씀을 성취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푯대는 나의 생각과 나의 판단의 푯대가 아니라 성경말씀의 푯대여야 한다는 것이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하실 때에도 오직 성경말씀이 우리를 따르게 이끄심을 믿고 따르는 것이죠.. 주님의 말씀이 내 심령 안에 살아 있으면 어떤 유혹도, 어떤 빈말과 어떤 거짓말도, 어떤 사탄의 계략에도 굳게 서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때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처럼 다 도망쳐 버리죠. 그런데 그중에 한 청년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성격학자들은 이 청년을 요한 마가로 곧 마가의 다락방 주인의 아들이자 마가복음을 기록한 요한 마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죠. 마가복음을 읽는 동안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주님을 버리고 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이죠. 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요한 마가처럼 주님 앞에 연약한 자들임을 고백하십시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을 때에만 진정으로 따를 수 있다는, 그런 가난한 심령으로 목마른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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