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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목요일 한 밤 중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짜고서 보낸 체포조에 체포되셨죠. 그때 명목상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아닌 실질적인 권한을 지닌 대제사장 곧 안나스의 공관으로 끌려가셨죠. 그곳에는 산헤드린 의원들 곧 70명 중에 23명이 모여 있었고, 예수님을 심문하며 증인들을 불러세웠지만, 그 증인이 일치하지 않자,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하고 진실을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하고 진실된 대답을 해 주셨죠. 그때 신성모독죄를 씌워서 예수님을 사형에 언도한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사이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떻게 끌려가시는가 보려고 멀찍이 뒤를 따라왔고, 그 안나스의 공관 뜰까지 좇아와 숯불에 불을 쬐고 있는데, 여종 하나가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고 말하는데, 베드로는 깜짝 놀라 ‘나는 전혀 모른다’고 부인했고, 또 다른 사람이 두 번째, 그리고 다른 사람이 세 번째 물을 때, ‘나는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을 향해 저주까지 하면서 맹세할 정도였죠. 그때 새벽이 밝아오는 닭이 두 번 울었는데, 그때서야 주님께서 어제 저녁에 하신 말씀 “네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하신 말씀이 떠올라 울었죠.
진리와 진실에 관한 질문 앞에 누가 진실되게 대답할 수 있는가? 자신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기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용기를 지닌 사람만 그렇게 대답할 수 있다고 했죠. 베드로는 당장 자신도 죽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했던 인물이죠. 우리가 2천년 전 그 현장에 있었다면, 우리도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가 주님을 진실되게 따르는 길은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베드로에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던 것, 그래서 울었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이 끊어질 것 같이 아파서, “통곡”하게 되었다는 것, 전적인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1절이 이렇습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이때의 새벽이란 고난주간의 금요일 새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목요일 저녁 한 밤중에 체포되어, 실질적인 대제사장인 안나스의 공관에 끌려와 한 참 동안 심문을 받으신 주님은, 다른 복음서를 종합해 볼 때, 또 다시 명목상의 대제사장인 가야바 공관에 끌려가 심문을 받으셨고, 이제 최종적으로 신성모독죄를 덧씌우게 되었으니,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로마의 법을 좇아 사형판결을 내려야,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공회 즉 산헤드린 의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 법정으로 끌고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지칠 대로 지친 주님의 모습임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빌라도는 그런 예수님의 체력이나 상황에 대해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공회 즉 최고법정 기구인 산헤드린 의원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이긴 하지만 심문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때 빌라도는 2절 말씀처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전과 동일하게 진실을 요구하는 질문 앞에 “네 말이 옳도다”하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실질적인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죠.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세계의 통치자요, 그것은 곧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뜻도 되기에, 기꺼이 그렇게 대답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사형시킬 수 있는 증언이 못 된다고 생각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그때 여러 가지 것을 가지고 고발했다고 본문 3절에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더 많은 것으로 고발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더 이상 아무런 대구도 하지 않죠. 그 사이 백성들은 유월절 명절을 맞이해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일이 있다면, 그 전례를 좇아 유대인 죄수 한 명을 풀어주라고 요구하고 나섭니다. 그때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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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본문 10절에 보면 빌라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지금 심문하도록 끌고 온 게, 대제사장들의 시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란 자의 이미지가 성전을 둘러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에, 그를 없애고자, 지금 대제사장들이 예수에게 신성모독죄를 들먹여서 처단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빌라도는 차리라 예수를 놓아주는 게 좋지 않겠냐, 하는 차원에서 “너희는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지 않느냐”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본문 11절에서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질해서 바라바를 놓아 주도록 소리치게 만듭니다. 이른바 백성들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것이죠. 그래서 그 군중들은 큰 목소리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하고 거센 물결처럼 요구하고 나섰죠. 그러자 빌라도는 도대체 무슨 악한 일을 하였길래, 십자가에 처형시켜야 한다고 하는지, 말합니다. 그 군중들은 다른 어떤 이유도, 말할 필요도 없이 막무가내로 “십자가에 그를 못박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러자 본문 15절에서 보여주듯이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드디어 빌라도가 최종 판결, 곧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예수를 넘겨주는 선언을 하게 된 것이죠.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었을 때에는 빌라도의 아내까지 나서서 제발 예수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도 있었고, 또 주일날 살펴 본 요한복음에는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행하는 협박 곧 “자칭 왕이라고 하는 이 사람을 놓으면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하고서 협박하는 내용들까지 나와 있는데, 오늘 본문은 그런 내용들까지는 기록돼 있지 않고, 단지 백성들의 군중심리에 이끌린 빌라도 총독의 결정을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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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는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빌라도가 군중심리에 이끌리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군중심리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게 동성애 곧 성소수자 문제와, 목회에서도 동성애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현장을 허용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근본취지 곧 절대적인 성경의 기준을 인간의 임으로 바꾸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 군중심리에 이끌려 가서는 안 되는 것이죠. 성소수자들을 주님의 긍휼로 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과는 그릇된 논리자체까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반대로 성령님께서 군중심리를 잘 이용케 하신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유리 창업주인 최태섭 장로님의 이야기죠. 장로님은 젊은 시절 중국에서 공장을 경영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는데, 공산혁명이 불어 닥치던 그때에 인근의 공장 근로자들이 곳곳의 사장들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즉석에서 처형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최태섭 장로님도 예외일 수 없었죠. 장로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겼다. 마침내 인민재판이 열렸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런데 한 근로자가, 우리 사장은 다른 사장과 달리 우리에게 진정으로 잘해 주었으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공산혁명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한국유리 창업주인 최태섭 장로님의 이야기죠. 장로님은 젊은 시절 중국에서 공장을 경영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는데, 공산혁명이 불어 닥치던 그때에 인근의 공장 근로자들이 곳곳의 사장들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즉석에서 처형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최태섭 장로님도 예외일 수 없었죠. 장로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겼다. 마침내 인민재판이 열렸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런데 한 근로자가, 우리 사장은 다른 사장과 달리 우리에게 진정으로 잘해 주었으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공산혁명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인민의 편이 아니라 자본가의 편을 든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일이었고, 그런 주장이 먹혀들 분위기도 아니었죠. 그런데 그 근로자는 용감하게 말했고, 이상하게 근로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그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모두가 동의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은 무사히 살아 귀국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 사람의 입술을 주장한 것입니까? 성령 하나님이시죠. 오늘도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 속에서 진리를 좇아 진실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성령님께서는 선한 군중심리를 동원하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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