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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곧 고난주간의 화요일 날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 베드로가 깜짝 놀랐죠. 그것은 주님께서 무화과나무 자체를 저주하신 게 아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책망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우상과 자기 탐욕을 숭배하고 백성들 간에 사랑과 긍휼어린 마음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그들의 죄악된 삶을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전의 장사치들을 다 내쫓으셨는데, 그 일에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성전 관계자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이 주님께 나와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물었죠. 그때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빗대어 그가 하늘로부터 온 것처럼 땅으로부터 온 것인지 물었는데, 궁극적으로 그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직접 밝혀주고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신 분이요, 사람들도 모두 메시아로 받들고 있는 권위를 부여받은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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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 비유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곧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농부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그들에게 보낸 종이란 곧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실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지 당신의 선지자들을 보내서 확인하고 혹여라도 그릇된 삶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돌이키도록 하기 위해 선지자를 보냈는데, 그 농부들 곧 열매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까? 그들이 그 종,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를 때려 죽였다는 것이죠.
그런 일들이 과연 있었습니까? 구약에 등장하는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인 아합과 그의 왕비 이세벨이 통치할 때 북이스라엘의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처단한 바가 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비롯해 7천명의 사람들을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려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주전9세기의 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전 8세기에는 아모스와 호세야, 미가와 이사야 선지자가 주로 활약했는데, 그들 역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선포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다가 남왕국 유다의 제 14대 왕이자 가장 악한 왕인 므낫세에 의해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주전 8세기의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유다 왕국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다가 왕을 비롯해 당대의 주도권 층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지고 또 감금당하여 죽을 뻔한 위기를 맞이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당한 핍박과 환란과 죽음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농부들, 곧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밖에 내던졌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농부들을 다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시편 118편 22절의 말씀을 오늘 본문 10-11절을 통해 인용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종들을 진멸했는데, 그 주인이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들의 중심축, 촛대를 옮긴다는 것과 똑같은 말씀이죠. 그래서 그들은 본문 12절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가 자기들을 향한 비유임을 알고 예수님을 잡고자 했지만, 수 많은 무리들 때문에 무리수를 둘 수가 없었죠. 성전의 장사치들을 내쫓고 성전을 정화시킨 예수님의 권위를 반박하고 싶었지만, 도리어 그들이 면박당한 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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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은 13절 말씀인데, 이제 그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잠시 뒤로 빠지고, 대신에 또 다른 책망 잡을 거리를 찾고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낸 장면입니다. 그때 그들이 무슨 논쟁거리, 무슨 책망할 거리를 찾습니까? 이른바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이죠. 본문 14절에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가이사란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시저 곧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의 은전 앞면에는 티베리우스의 얼굴 형상과 함께 ‘티베리우스 시이저, 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황제의 어머니인 리비아가 올림피아의 홀을 쥐고 왼손에는 감람나무 가지를 들고서 신들의 보좌 앞에 평화를 주는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주화는 로마 황제의 통치를 받는 모든 이들이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는 통치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로마의 경제적 수탈과 압제를 받고 있는 유대 민족으로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했던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놀라 입을 다물게 되었다고 증언해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만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면, 유대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매도할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께만 납부해야 한다고 하면 로마 황제의 대적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빌미도 주지 않는 주님의 대답에 그들의 입이 다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저 천국만 내다본 채 이 세상의 현실세계의 세금납부는 등한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죠. 좀 더 확대해석하면 이 세상의 현실정치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쇠로 무시하며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세금도 납부하고 현실정치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현실세계를 허락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우리는 믿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땅의 현실세계의 세금납부와 현실정치는 이 세상에 살 동안만 허락된 세계요,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저 영원하신 천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 십일조와 헌물 등의 하나님의 것도 놓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선한 청지기로, 하나님을 의탁하는 삶이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삶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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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두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 이 땅의 현실세계와 저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만 죽어서 가는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구현하고, 또 열매 맺도록 하나님께서 선한 청지기로 살게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그 은혜 속에서 성령님께서 띠 띠고 이끄시는 삶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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