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고난주간의 수요일날 예수님께서는 계속되는 논쟁과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사두개인들이 칠형제가 아내를 취하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 물었을 때, 주님은 부활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의 천사와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인간의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그 영혼은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 하나가 나와도 어느 계명이 큰지 물었을 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곧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도 이 땅에 두 발을 내 딛고 살지만 영원하신 저 천국을 소망하는 자로 살아야 할 것과, 이 땅에서 내 곁에 붙여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성령님께서 띠 띠며 살게 하시는 삶이니 말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주님께서 이제 성전에 가셔서 가르치시는 장면입니다. 서기관들은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주님은 그에 대한 분명한 사실을 일깨워주시는 모습입니다. 사실 사무엘상 7장 8-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조가 영원할 것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 곧 율법학자들은 유대인들의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틀린 게 아니죠. 예수님의 조상의 계보에는 다윗이 있고 아브라함까지 올라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의 혈통적인 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메시아는 육신적인 해방, 정치적인 해방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것은 육신적인 혈통으로 오신 분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죄에서 자유케 하는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신 메시아입니다.
그렇기에 서기관들 곧 율법학자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맞기는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37절을 통해 더 핵심적인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결코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37절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었다’고, 이른바 공감을 했다고 밝혀줍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서기관들이 바라보는 그리스도와 백성들이 바라보는 그리스도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죠. 이른바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를 율법의 학자로서 바라보는 관점과, 직접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고 듣는 그 차이를 말하는 것이죠. 좀 더 확대해석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관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관점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토대로 하기는 하지만 그 너머에 성령님의 은총을 통해 깨닫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로고스의 말씀을 레마의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8337270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 그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 38-40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서기관들 곧 율법학자들을 긴 옷을 입고 있었고, 시장에서 문안 받고 있었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 곧 상석에 앉기를 원하는 자들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백성들로부터 존중받고, 대접받고 싶어 안달하는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성경의 율법을 그만큼 연구하고, 그 연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백성들에게 가르쳐준다는 것 때문이죠.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일에 대해 청지기 자세가 아니라, 남다른 권위와 권세를 부리는 자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백성들을 섬기는 모습도 아니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자세도 아닌 것이죠.
그런데 그 정도면 좋으련만, 더 큰 문제가 있는데,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었고, 또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재산을 탐하는 자들이요, 또 백성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자랑하고 떠벌리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6장 6절에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대치되는 말씀이고, 또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나오는 세리의 기도 곧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는 기도와 상치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땅에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마음과 자세로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결코 자기가 맡은 일로 사람을 옥죄려 하거나 자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그 말씀을 드렸었죠. 김진표 국회의장이 강원도에서 세무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그곳의 총괄감독직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가는데 그 중에 공무원 한 분이 돈을 내지 않고 배를 타고 가려는 모습이 보였고, 훗날 그것을 잘 고쳐나가도록 시정했다는 것 말입니다. 그때 그 분이 깨달은 게 있었는데,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아주 조그마한 직함이라도 주어지면 그것으로 권세를 부리려는 게 사람의 속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오늘 본문의 서기관들은 오죽하겠느냐는 것이요, 우리에게도 그런 쥐꼬리만큼의 직함이 생기면, 교회에서 그런 직함이 생기면 그것을 무슨 큰 벼슬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우리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직함과 위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섬기도록 맡기신 청지기라는 자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 41절입니다.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 부자들은 많이 넣는데,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우리 식으로 말하면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를 넣은 모습입니다. 부자들이 헌금함에 그 돈을 많이 넣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또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걸 어떻게 주님께서 아셨겠습니까? 눈에 보이고, 소리가 났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죠.
이를테면 부자들은 지폐를 넣으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자랑하듯이 넣는 모습이 보였고, 가난한 과부는 그 헌금함에 쨍그랑 소리가 날 정도로 동전 두 닢을 넣었으니, 그 소리가 들렸던 것이죠. 그런데 그 부자들의 표정과 가난한 과부의 표정이 어땠을지 우리는 눈에 선하죠. 부자들은 왠지 당당하고 우쭐대는 마음이었고, 가난한 과부는 왠지 부끄러운 모습, 왠지 하나님께 더 드리고 싶었지만 더 드릴 수 없는 처지라 죄송스러워하는 마음 표정이었겠죠.
바로 이런 대조적인 모습을 주님께서 보시고, 본문 43-44절에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하시면서 말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심정이었지만, 오히려 주님께서는 '당신이 제일이요'하고 칭찬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상과 같은 말씀들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우리 주님은 다윗의 육신적인 혈통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메시아라는 사실이요, 그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맡아서 하든지 권세와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선한 청지기로 살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도 가난한 과부의 마음과 자세를 쏟아 부으며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재물의 가치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받드는 마음 자세 말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527332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넘겨줄까(막14:1-11) (0) | 2024.02.01 |
---|---|
깨어 있으라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13:1-37) (1) | 2024.02.01 |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막12:18-34) (1) | 2024.01.30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막12:1-17) (1) | 2024.01.28 |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막11:12-33) (1) | 2024.0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