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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가복음

깨어 있으라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13:1-37)

by 똑똑이채널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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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곧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 높이는 열왕기상 7장 5절을 보면 각각 18규빗입니다. 18규빗이란 본체만 그 높이에 해당되는 것이고, 머리 부분이 5규빗, 기둥 본체가 18규빗, 그리고 받침이 12규빗입니다. 총 30규빗에 해당되는 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미터로 환산하면 1규빗이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기 때문에, 1규빗을 45cm로 쳤을 때, 솔로몬 성전의 총 높이는 13미터 정도 되는 셈입니다. 13미터란 요즘 아파트 건물의 3층 높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야 그 높이가 그리 높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2천900여년 전의 건물 높이라면 대단한 높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던 솔로몬 성전이 B.C.586년의 바벨론 침략에 의해 무너지고 불타버렸습니다. 그 뒤에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제 1차 포로귀환자들이 스룹바벨 총독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하에 성전재건 공사를 하게 되는데, 중간에 반대세력들에 의해 2년 동안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90세에 가까운 나이 많은 학개 선지자와 3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재건을 독려했는데, 그렇게 해서 20년 만에 성전을 재건하게 되죠. 그때가 바로 B.C.515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느헤미야 시대를 끝으로 구약성경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간기 곧 페르시아 제국 시대, 헬라제국시대로 역사가 진행되다가, 신약시대 곧 로마제국시대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지 않습니까? 그 로마가 세계를 주름잡을 때 그들의 속국인 유대 민족을 위해 로마의 총독을 파견함과 동시에, 유대 지역을 자치할 수 있도록 왕을 세웠는데 그가 바로 헤롯 대왕이죠. 다만 헤롯 대왕은 이두매 출신 곧 에돔의 후예였기에 유대 민족들의 환심을 사야 통치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추진한 게 바로 성전보수공사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제2의 솔로몬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을 B.C. 20년에 보수공사를 착공했고 외형은 9년 만에 완성했지만 실제적인 세부 공사는 A.D.63년경에야 완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려 46년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펼친 셈이었죠. 그러니 최초 솔로몬 성전보다, 두 번째로 짓게 된 스룹바벨보다, 그리고 그것을 46년 동안 증개축한 헤롯 성전은 얼마나 더 웅장하고 더 높게 세웠을지 뻔하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으리으리하게 지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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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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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초반부에 나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의 수요일 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 감람산으로 가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으리으리한 성전의 건물과 그 돌들의 웅장함을 보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절의 새번역성경 말씀이 원문에 가까워서 읽어드리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제자들이 성전의 돌 자체에 놀라고 있고, 또 성전의 전체 건물에 대해 감탄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그것이죠. “너희들의 눈이 돌아가는 이 건물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성전을 건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 성전 건물이 헤롯의 신앙심으로 증개축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증개축된 것이고, 그 성전과 관련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과 백성들의 장로들도 그 성전을 통해 돈과 권력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앞서 읽은 마가복음 11장 15절만 봐도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 안에서 장사하고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신 일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성전으로서 기능을 하기 보다는 온갖 인간의 정치와 욕망과 경제적인 거래의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건물로서의 성전은 무너질 것이라고, 너희들이 하나님보다도 더 우상시하고 더 받드는 건물로서의 성전은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의 이 예언은 A.D.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처들어 왔을 때 완전히 무너졌고, 지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통곡의 벽 정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들도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눈에 보이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진정으로 섬기고 받들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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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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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이 감람산에서 나눈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그곳에서 성전을 바라보던 제자들이 ‘대체 언제 그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물음 속에는 예루살렘이 언제 정복당하고 완전히 파괴되는 것입니까, 하는 물음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본문 5-37절까지 앞으로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러면서도 본문 26절 이하에서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하는 말씀도 곁들이고 있고, 본문 30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말씀으로 다시 돌아오는 듯한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32절부터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다시 언급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어떻습니까? 최초 제자들이 던진 질문 앞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은 물론이고 성전건물도 다 무너질 것이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 그 당시의 관점에 비춰서 로마가 전 세례의 나라를 대적하고, 또 그 로마가 유대 민족을 대적하여 군사를 이끌고 올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 그때 주님을 믿는 자들이 핍박을 받을 것이고, 심지어 형제가 형제를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 내 준다는,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그 시대에 일어났었죠. 또 14절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주전 170년 경의 헬라제국의 셀류쿠스 왕조 중 하나인 ‘에피파네스’가 성전제사와 안식일제도를 다 폐지시켰고, 제단에 돼지머리를 놓고 절하게 만든 일이었는데, 그것처럼 로마가 장악하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게 만드는 이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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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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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까?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1:9)하고 말씀하는데, 그렇게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이 날뛰는 것,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구름을 타고 다시 이 땅에 오시는 일은 반복되는 일이 아니라 단 1회적으로 나타나는 일이기에,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전쟁과 난리가 일어나고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는 일에 처할때에는 끝까지 견디도록 강조하고 있고, 대신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을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37절의 말씀처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곧 우리와 우리 세대, 이 세상이 존속되는 한 그 모든 세대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 속에는 그런 핍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급변하게 바뀌지 않는 한, 공산권 국가로 뒤바뀌지 않는 한 그런 핍박과 억압은 없겠죠. 다만 주님의 재림만큼은 역사적으로 아직 성취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포커스는 이 부분에 맞추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성령님께서 우리를 띠 띠고 이끄시는 대로 삶을 살다가, 주님의 재림의 날에 기쁘게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깨어 있는 날로 성령님이 이끄시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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