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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가복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막12:18-34)

by 똑똑이채널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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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곧 고난주간의 수요일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서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대적했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명시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위한 세금도 납부하지만 더 큰 하나님의 나라 곧 영생의 나라를 위한 선한 청지기의 삶도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 말씀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현실세계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나라이기에 이 세상을 위한 세금은 물론이요 정치현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라는 뜻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의 현실세계를 허락하신 더 큰 영원한 천국의 세계도 놓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이 땅을 향한 시선과 저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시선, 두 개의 분별력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수요일 날에 이어진 사건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이제는 사두개인들이 와서 주님을 공략하는 모습입니다. 사두개인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사두개인 (Sadducees)이란 말은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인 ‘사독’으로부터 유래됐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당연히 그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뜻을 받들었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로서 예루살렘의 부유한 귀족들이 대부분 사두개인들이었고, 유대 최고법정기구인 산헤드린 의원들 역시 사두개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만큼 현실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던 그들이 헤롯 대왕과도 또 로마와도 정치적으로 결탁하며 살았던 그들입니다. 당연히 로마로부터 독립하길 바라는 일반 백성들은 그들 사두개인들을 좋아할 리가 없었죠.

그들은 구약의 모세오경 곧 기록된 율법만을 구속력이 있는 율법으로 간주했고, 유대 보수적인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그들이라 변화와 혁신은 체질적으로 거부했던 그들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부활도, 사후심판도, 천사의 존재도 믿지 않는 자들이요, 당연히 메시아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세계에 메시아가 왔다고 백성들이 떠들어대고 있었고, 그 메시아가 오병이어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고, 그 메시아가 귀신을 쫓아내고 수많은 병든 자들을 고치고 있고, 심지어 죽은 지 나흘 되는 나사로까지 살려내는 기적을 베풀고 있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메시아, 곧 나사렛 출신의 예수란 자가 메시아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처럼 여겨지 않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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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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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의 권위를 짓밟을 수 있을지, 바로 그런 올무에 빠트리기 위해서 형수취수제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형수취수제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이 아버지의 장자권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 장자권뿐만 아니라 모든 상속권까지 다 받던 시대였죠. 그러니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해 자식을 낳아 형의 장자권과 상속권을 세워줄 의무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야만 그 가문의 씨가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그것이 모세의 율법에 나온 바요, 사두개인들도 그 율법만큼은 존중하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바로 그에 관한 질문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온 것인데, 문제는 그렇게 칠형제가 다 죽어버렸을 때, 부활 때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본문 23절이 그것입니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어떻습니까? 아주 그럴듯한 질문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질문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본래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세오경에 나온 율법만을 믿고, 또 현실주의자들이라 내세나 부활이나 영생의 세계에 대해 전혀 관심없는 자들인데, 그들이 칠형제에 관한 형수취수제를 들먹이면서까지 부활을 꺼내 들어 누구의 아내가 될지, 궁금하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부활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문제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더더욱 부활은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께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본문 24절에 너희는 성경도, 곧 모세오경도,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모세오경에 나온 율법의 근본취지도, 그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도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제정해 주신 그 근본취지는 누구누구의 아내가 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가문을 보호해주려는 게 목적임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 하늘나라에서 장가가고 시집가는 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6절에 나온 말씀을 해 주시는데, 그 말씀은 출애굽기 3장 6절에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불이 나지 않는 그 희한한 광경을 보고 있을 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의 조상이 40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하며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지금껏 살아 있다는 것 말입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1천 5백 년 전에 다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버렸다면, 그들의 죽음과 동시에, 그들의 모든 것들도 다 무(無)로 돌아 가버렸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다 허무하게 끝나버렸다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육체는 죽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영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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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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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나 놀라운 진리요 생명의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본문 28절의 말씀처럼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이른바 서기관이 등장한 모습입니다. 서기관은 구약의 율법을 파피루스나 두루마리에 필사하던 사람입니다. 그들도 사두개인 못지 않게 율법에 대해 깊은 식견이 있고 능통한 사람들이죠. 그러니 사두개인과 예수님께서 논쟁하는 그 장면을 그가 유심히 들었을 것이요, 그 때 예수님께서 KO패로 승리하시는 모습 앞에 그가 감탄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예수님 앞에 자기 잘난 체를 한 번 해 보겠다며, 그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 그것을 예수님께 던진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본문 29절을 통해 “첫째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향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 그리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첫째와 둘째란 순서상의 차이나 무게중심의 차이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중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게 아닙니다. 첫째만큼 둘째도 똑같은 무게중심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보이는 바 네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과 같은 뜻이죠.

그때 그 서기관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깊은 공감을 표하자, 34절을 통해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고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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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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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도 죽은 자의 부활, 곧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요,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붙여준 세상 사람들을, 특별히 작고 여린 사람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뜻을 받드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스스로 띠 띠며 살았던 젊은 베드로와는 달리, 늙은 베드로 곧 성령님께서 띠 띠고 원하시는 대로 이끌려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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