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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곧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그 첫 주일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수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옛날 다윗의 영화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열광하고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신 게 아니라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군중들의 염원인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그런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로 연결되는 종려주일에 나귀 새끼를 타게 된 것은 그 주인이 기꺼이 주님께 내어드린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그 주인은 적어도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리칠 때 들었을 것이고, 베다니에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주님께서 살려내신 일도 알고 있을 것이요,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주님께서 식사하실 때 막달라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린 일도 알고 있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도 주님께서 나귀새끼를 쓰겠다고 하실 때, 기꺼이 주님께 내어드렸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무언가를 쓰시겠다고 하시는 감동을 주실 때 기꺼이 내어드리는 사람을 통해 주님은 더 큰 영광의 도구로 삼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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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 종려주일의 화요일과 수요일에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이튿날 곧 종려주일의 월요일이 지난 화요일 날을 가리키는 상황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3-14절입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께서 시장하셨고, 멀리 서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나무 하나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보셨는데,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그 무화과나무가 왜 열매가 없었는지, 그 이유를, “무화화의 때가 아님이라”하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아직 그 나무가 열매를 내놓지 않는 때임을 마가가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어떻게 하십니까?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면서 저주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다시 말해 제자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저주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황만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 괜히 무화과나무에게 화풀이 하신 것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괜히 그 말씀을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제자들이 듣도록, 일부러 말씀하신 것이라면, 뭔가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겠습니까?
과연 주님께서 그 무화과나무의 열매 없는 것에 대해 저주하신 그 의도하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무화과나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곧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서도 이미 그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렘8:13)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호9:10)
이른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같은 동족끼리 헐뜯고 있꼬,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신 말씀이요, 그들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게 된 것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바로 그것을 무화과나무의 열매 없음에 빗대서 말씀하신 것인데, 지금 예수님께서 그와 똑같이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거부하고 자기 탐욕을 좇아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해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탐욕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그 다음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본문 15-18절의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 돈 바꾸는 자들, 비둘기 파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묵인 하에,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상을 엎으시면서, 성전을 정화시켰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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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 20절의 “다음날 아침”의 상황입니다. 이른바 수요일 날이 밝은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화요일 날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서, 베드로가 깜짝 놀라, 주님께서 물어봤죠. 정말로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고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본문 22-25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가장 큰 핵심은 22절에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고, 그에 따른 부연설명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산을 바다에 던지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요, 구하는 대로 다 받을 것이요, 용서하는 대로 또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너희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소유하라는 데에 포커스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듯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열매맺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혐의가 있는 사람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는 참된 열매맺는 삶을 살 것이라고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말씀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너희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당부를 해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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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사건은 27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대 예수님께서 다시금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는데, 성전을 정화시킨 일로 인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나와서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주님께 묻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늘로부터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사람으로부터냐 하신 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하고 물으신 뜻입니다. 그들은 그에 대해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하늘로 나온 것이라고 대답하면, 왜 그를 믿지 못하느냐,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왜 믿지 못하느냐, 하는 말씀이고, 또 사람으로부터라고 대답한다면 왜 다른 백성들은 참 선지자로 아는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느냐, 하는 것처럼, 많은 백성들이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데, 왜 너희들만큼은 딴지를 거느냐,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 역시 참된 하나님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아니라 다들 자기 탐욕과 욕심에 이끌린 열매 맺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자들, 마음이 텅 비어 있는 불쌍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받은 은총을 누렸다면, 그에 걸맞는 열매 맺는 삶 곧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고 내게 붙여준 주님의 어린 양들을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영생의 은혜를 받은 자라면, 우리 곁에 붙여준 작고 여린 주님의 양들을 돌보고 섬기고 사랑하는 열매맺는 삶을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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