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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가복음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막9:30-50)

by 똑똑이채널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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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헬몬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들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아이의 귀신을 좇아내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그 아이의 귀신을 꾸짖으면서 쫓아내주셨죠. 이제 갈릴리 가버나움의 집에 오셨을 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왜 저희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이냐고 말이죠. 그러자 주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귀신들은, 천상의 세계에서 쫓겨나 지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라고 칭합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영적인 단계와 영적인 세력들이 다르기 때문에, 너희들도 영적으로 진일보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죠. 주님의 어린양을 먹이고 돌보고 지키려면 그 어린양보다 좀 더 성숙해야 한다는 차원 말입니다. 물론 크리스천이 기도하는 주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현상, 그런 능력을 받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을 힘써 알고자 하면 그의 나타나심이 새벽빛 같이 임하고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임하는 현상과 능력을 덧입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그곳 갈릴리의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인근 지역에서 사역을 하시는데, 그 집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신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본문 33-34절에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 사역 속에서 누가 큰 자인지, 서로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많은 사람들의 끝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와 똑같은 본문이 마가복음 10장 44절에 나와 있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실례를 들어주시는데, 거기에 있는 어린 아이 하나를 안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것이었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그런 어린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37절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당시에 여자들과 같이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한 약자요, 사회적인 소외계층입니다. 그런 계층에 대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관심으로 영접하고 품고 섬김의 삶을 살라고 당부하신 것이죠. 그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요, 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일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강조하신 점이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10:18-1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4:29)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삶을 기억하라면서, 너희가 종으로 살 때 나 여호와가 너희를 건져주었듯이, 그런 은혜를 받은 너희들이기에, 지금 너희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레위인들, 나그네들, 고아, 과부들까지도 돌보고 섬기며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도 당대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그것이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의 삶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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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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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을 확대해석해 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그 사랑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연약하고 소외되고 힘들어 하는 이들, 아파하는 이들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요, 주님을 대접하는 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죠. 본문 37절에 나와 있듯이 내 이름으로하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의 자아가 드러나고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뭐랄까요? 자기 힘에 넘치듯 과분하게 하는 일보다는, 그저 나눌 수 있고 할 수 있는 작은 범위 내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의 은혜를 계속적으로 공급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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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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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8-41절을 통해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의탁하여 귀신을 내쫓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가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을 위하는 일임을 천명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인 너희들만 크고 올바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아도, 그들의 영역에서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교든 성결교든 감리교든 교단과 교파가 다를지라도, 이단이 아닌 이상, 그 영역에서 주님의 역사를 드러내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는 것이죠.

앞으로 남북이 연합하고, 철도가 놓이고, 개성공단이 가동되고, 북한의 지하자원이 개발되면,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단들도 그에 발맞춰 북한에 올라가 교회를 세우지 않겠습니까? 그때도 어쩌면 남쪽에서 벌어진 교단과 교파간의 다툼이 그곳에서 재현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일들이 선한 경쟁 속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일임을 내다볼 수 있겠죠.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이 42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에서 ‘실족하게 하다’는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는 ‘죄에 걸려 넘어지게 하다’ 혹은 ‘믿음에서 떠나도록 하다’ ‘죄를 짓게 하다’는 뜻입니다. 43절의 ‘범죄하게 하다’는 각주 1)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손이 어린 양과 같은 초신자를 죄 짓게 만든다면, 우리의 발이 청년기에 있는 양들을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도록 이끌고 있다면, 우리의 눈이 성숙한 사명자의 삶을 사는 이들을 믿음의 자리에서 이탈케 하고 있다면, 온전한 육신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들을 자르고 찍고 빼버린 채로 천국에 가는 게 낫다는 말씀이죠. 물론 그것은 과장법입니다. 진짜로 그렇게 찍고 자르고 빼라는 게 아니라 나보다 연약한 자를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죠.

 

그래서 오늘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어린 양’과 같은 사람들을 맡기셔서 힘들어하는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라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내 힘에 붙이도록, 내 자아나 의로움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나의 형편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라는 것이죠. 아울러 나와 다른 형편과 방식으로 그렇게 주님의 나라를 세우고 있는 자가 있다면 존중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성숙한 은혜를 베푸셨다면 나보다 연약한 이들이 죄를 짓는 현장이나 믿음의 자리에서 이탈케 할 게 아니라 그들을 더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울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께서 당부하신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하신 그 뜻을 받드는 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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