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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1-5)_2024년 1월 21일 주일설교문

by 똑똑이채널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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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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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엊그제 새벽기도회 시간에 살펴본 마가복음 9장에는 특별한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흰 옷을 입은 것처럼 광채가 났고 모세와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말씀을 나눈 것이었죠.

 

사실 그 일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빌립보 가이샤라에 가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샤라는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40km 위쪽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분봉 왕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빌립이 자신의 이름과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이름을 합쳐 새로 명명한 도시였습니다.

그렇다고 로마 황제 가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일 수는 없었죠.

적어도 로마 황제의 이름을 갖다 붙이기 위해서는 그 이름에 걸맞는 도시 규모를 갖추고 있어야 했고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자리잡고 있어야 했죠.

그만큼 빌립보 가이샤라는 거대한 규모의 도시였고 그 도시의 언덕이나 산에 황제를 위한 신전을 갖춘 도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 빌립보 가이샤라에 도착했을 때 제자들에게 물어봤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말이죠.

그러자 제자들이 말했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부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죠.

그러자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막8:28)하고 대답을 했죠.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저희들의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메시아요 구원자이십니다.’하는 뜻의 고백이죠.

물론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의 해석요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고백 아닙니까?

‘이곳 빌립보 가이샤랴는 모두가 황제의 경제의 논리 돈의 논리를 좇아 살지만 저희들은 주님의 생명과 진리를 따를 것입니다’하는 고백 말이죠.

 

그런데 그토록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였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살아날 거라고 말씀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책망하고 비난하면서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하시면서 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을 꾸짖었죠.

그러면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하고 말씀하셨죠.

 

바로 그런 일이 있은 지 6일 뒤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변화산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성경학자들은 빌립보 가이샤라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헬몬산 부근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른바 헬몬산 정상의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빌립보 가이사랴라는 도시가 있고 그 도시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헬몬산에 당도하는 셈이죠.

그 헬몬산은 해발 2,814m 높이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높은 산이 없고 백두산이 2,744m라고 하죠.

중요한 것은 그 헬몬산에 내리는 눈이 봄철에 녹으면 계곡으로 흘르고 그것이 갈릴리 호수를 채우고 요단강을 거쳐 사해로 흐른다는 것이죠.

그러니 해발 2,814m의 헬몬산에 내리는 눈만 바라봐도 알프스 산맥의 눈처럼 얼마나 멋지고 영험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바로 그 헬몬산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영체의 모습으로 변화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죠.

 

(깨달음)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있는 그 헬몬산에서 당신의 변화된 영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일까요?

그것도 1천년 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가 부활체의 모습을 한 상태로 그 산에 내려와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일까요?

앞선 마가복음 8장에서 모두가 빌립보 가이샤라에서 황제의 논리를 좇아 살지만 저희들은 예수님의 생명과 진리를 좇아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한 제자들이었죠.

그런 믿음을 갖고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쫓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죠.

그런 믿음과 신앙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은 머잖아 예수님의 모습처럼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처럼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실물교육 차원에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적용)그렇기에 제자들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음을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소경과 중풍병자를 고친 것도,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것도, 파도와 풍랑을 잠잠케 한 것도, 물질의 세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었죠.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지만 실은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세계가 있다는 것 말입니다.

분명코 대낮인데도 한 낮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의 모습으로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코 1천년 전에 죽은 모세요 엘리야였는데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변화산에 예수님과 함께 변화된 모습으로 함께 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불면증에 시달릴 때 빛되신 주님께서 나를 어루만져 불면증을 치유케 하시는 그런 신비로운 세계도 마찬가지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군면제를 받는가 싶었지만 눈물로 기도하던 그날 밤에 주님의 어루만짐을 통해 온전케 되는 세계도 마찬가지죠.

결혼할 상대자를 찾아 만나는데 “아니다” 배에서 울림의 소리를 통해 들려주시는 신비로운 세계도 마찬가지죠.

누군가 그 시험에 합격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중보할 때 희미한 빛으로 합격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세계도 마찬가지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신비로운 빛의 세계를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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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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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과학이나 논리로 규명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태초가 언제인지 아는 인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가 경험한 하나님은 장님이 코끼리의 일부를 만지고 코끼리를 만졌다고 하는 격과 같다고 했죠.

하늘과 땅이 얼마나 광활한지 과학기술을 동원해도 그 전부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조뼈를 창조해내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뼈와는 결코 비교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분명코 내 머리카락이지만 흰 색으로 변화고 있는 내 머리카락을 내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내 사지백체요 내 오장육부지만 내 몸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몸의 노화를 막을 길도 없습니다.

 

그만큼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은 과학이나 논리로 규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수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고 싶어도 내 의지나 내 감정으로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내 심령에 오셔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게 되면 홍해를 가른 사건도,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한 사건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도 온전히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성령님은 우리가 마음문을 활짝 열고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도록 감동과 감화를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전개)지난 시간에 살펴 본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은 그것이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처음 하늘과 땅 곧 천지를 지으실 때의 모습이 어떤 형태가 없는 상태요 텅 비어 있는 상태요 온통 흑암으로 뒤덮인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범람하는 강물로 인해 모든 것을 휩쓸고 내려가는 형국도 그와 같다고 했죠.

이집트의 나일강 주변은 홍수가 나도 완만하게 물이 차지만 티그리스유프라테스의 강줄기는 비좁고 경사지가 심해 한 번 홍수가 쏟아지면 걷잡을 수 없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다고 말이죠.

이것은 여름철 계곡에 몸을 담고 있다가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면 순식간에 계곡에 물이 넘쳐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일이죠.

그렇게 급격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어떤 형태도 없고 텅텅 비어 있는 형국이고 온통 절망적인 상태 아니겠습니까?

 

(깨달음)그런데도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는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운행한다’는 히브리어 ‘라하프’(רָחַף)는 독수리가 날개를 편 상태(신32:11)라고 했습니다.

둥지에 있는 새끼 독수리에게 먹을 것을 주고자 어미 독수리가 날갯짓을 편 상태를 말합니다.

그 둥지에서 이제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도록 연습을 시킬 때 그 둥지에서 떨어지는 새끼 독수리를 어미의 날갯짓으로 펴서 품어올려주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애굽에서 3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독수리 날갯짓으로 업어서 광야 40년간 품에 안으신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만큼 홍수와 강물의 범람으로 모든 게 휩쓸려서 아무 형태도 없이 텅텅 비어 있어서 암흑과도 같도 온통 절망뿐이라 해도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당신의 날갯짓으로 품어 안으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올해 발생한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200명이 죽고 100여명이 행방불명 됐어도 2017년 경주와 포항에 일어난 지진으로 모든 게 아수라장이 된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령님께서 품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성령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자들은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과 절망적인 상태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적용)저도 하늘이 노랗다는 것을 몇 년 전에 처음 느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하늘이 노란 색을 띤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삶의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으로 그 어떤 것도 헤쳐나갈 수 없이 꽁꽁 묶여버린 상태였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 뿐이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방법으로 제가 원하는 때에 해결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정하신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절감할 때 그때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날개짓으로 품어올려주시는 아바 아버지의 영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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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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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원해)여기에 나오는 ‘빛’은 과연 어떤 빛을 말하는 것일까요?

‘빛’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르’(אוֹר)는 ‘빛’(light)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있으라’는 히브리어 ‘하야’(הָיָה)는 영어로 ‘let there be’입니다.

 

비틀즈가 불렀다는 ‘Let it be’의 가사도 그런 뜻이 있습니다.

“내가 곤경이 처함을 알 때 어머니 마리아가 내게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해 주세요. 그대로 되라고”

바로 거기에 ‘let it be’가 쓰인 것인데 비틀즈의 맴버인 폴 매카트니의 어머니 이름이 마리아라고 하죠.

폴 매가트니가 어려운 문제에 처했을 때 꿈을 꿨는데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let it be(내버려둬) (순리대로 맡겨)’라고 했다고 하죠.

그것을 노랫말로 만들어낸 게 비틀의 ‘let it be’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있으라”는 히브리어 ‘하야’는 ‘그대로 되니라’하는 말씀입니다.

자연적인 순리대로 되게 하신 게 아니라 전혀 없는 상태의 것을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로부터 “나는 나다” ‘하야 하야’라는 말씀이 나왔고 이 단어로부터 ‘야훼’라는 단어도 나왔습니다.

그만큼 ‘있으라’하는 단어는 아무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오직 야훼 하나님만이 사용하시는 단어입니다.

 

(깨달음)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셨는데 과연 그 빛은 낮과 밤을 나누는 자연계의 빛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 해와 달과 별들의 빛은 넷째날에 만드셨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째 날의 빛은 과연 어떤 빛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빛은 자연계의 해와 달과 별들의 빛이 아니라 실은 진리와 생명의 빛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휘황찬란한 빛으로 변화되신 것을 대낮에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그 빛과 같은 격이죠.

이것은 마치 오이디푸스가 들판에 버려졌다가 아버지가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죽이고 스핑크스의 수수깨기를 풀고 왕비와 결혼했지만 그 왕비가 자기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두 눈을 뽑고서 대신들에게 한 말과 같죠.

“이 세상의 눈을 그대들은 이 빛을 보지 못하리. 세상의 눈을 지닌 그대들은 이 빛을 알지 못하리”하고 고백한 것과 같은 빛이죠.

 

(원성)그것은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의 대적자요 교회의 핍박자였습니다.

멧돼지가 옥수수밭을 완전히 짓밟듯이 예수 믿는 자들을 붙잡아 감옥에 처 넣는 앞잡이 역할을 하던 자가 바울이었죠.

그 때문에 스데반 집사를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일 때 바울은 맨 앞에서 증인이 되길 자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이른 나이에 길리기아 다소에서 예루살렘에 유학을 왔고 가말리엘 문하생에서 율법을 수학했으며 앞으로 유대 관원이 되는 꿈을 갖고 있던 자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 관원이 된다는 것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죠 그것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긴 것도 없었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눈에 들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잔멸하는데 앞장선 그였죠.

 

그런 그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그 길목에 갈 때 어떤 일을 겪었습니까?

사도행전 26장을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이 자신을 둘러비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태양빛보다 더 밝은 빛, 한 낮의 빛과는 전혀 다른 진리와 생명의 빛이 바울을 둘러 감싼 것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주여 뉘시나이까?”하고 말했죠.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26:15, 9:5)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진리와 영생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이 세상의 출세와 성공만을 목적으로 살던 바울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빛으로 비춘 것이었습니다.

그 빛은 창세기 1장 3절의 빛과 같은 빛입니다.

그 빛은 이 세상의 자연계에 내리쬐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빛이 아니라 한 낮의 대낮에도 영적인 깨달음을 안겨주는 진리와 생명의 빛인 것이죠.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그대로 되니라”하신 말씀의 바로 그 빛입니다.

 

(적용)예수님은 그 대낮의 변화산에서 죽음 이후에 부활하실 당신의 부활체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심으로 너희도 머잖아 나처럼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만을 목적으로 살아가던 사도 바울에게 그 대낮에 빛으로 다가오셔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물리적인 시간과 장소를 넘어 신비로운 빛 진리와 생명의 빛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는 주님인 줄 믿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해 있는 그 곤경에 처했을 때 비틀즈는 그냥 내버려두라고 노래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의 빛으로 당신의 때에 역사해주시고 해결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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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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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진리와 생명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셔서 그대로 되니라 하신 그 말씀의 빛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대낮의 빛보다 더 찬란한 모습으로 변화돼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눈 장면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이유를 알지 않겠느냐?”

이 세상 출세와 성공만을 목적으로 삼던 바울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정오의 빛보다 더 찬란한 생명과 진리의 빛으로 비춘 것을 이젠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과 곤경에 처하면 비틀즈 노래처럼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너의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하도록 말씀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세상 사람들은 태양과 달과 별빛만 전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지금도 진리와 생명의 빛으로 너를 감싸고 있으니 말이다.”

설령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주님은 너를 소망의 빛으로 감싸 비상하도록 품어주시는 분이니 말이다.”

네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고 할때도 주님은 너를 진리와 생명의 길에 들어서도록 빛으로 붙잡지 않겠느냐?”

 

(찬양)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예화) 미국의 서커스단 중에 ‘링글링 브라더스’는 150년 역사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 유명한 링글링 브라더스 서커스단도 2017년에 영원한 막을 내렸다고 하죠.

그런데 링글린 브러더즈 서커스단이 뉴욕에서 공연을 할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 공연 중에 갑자기 정전이 됐습니다.

1분 간이었지만 관중들은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대에는 조련사가 호랑이 네 마리의 재주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창 속이니까 관중에게는 위험이 없었지만 그 안의 캄캄한 철장 안에서 혹시라도 조련사가 호랑이들의 공격을 받지 않나 걱정됐기 때문이죠.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고 캄캄했습습니다.

물론 무대에서는 조련사의 채찍 소리와 호랑이의 동작을 지시하는 명령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들려오고 있었죠.

이제 불빛이 다시 켜졌습니다.

그러자 그 무대를 숨죽이며 바라보던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그 조련사에게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서커스가 끝나고 기자회견을 통해 어떻게 그 어둠 속에서 침착하게 조련할 수 있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조련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들은 나를 잘 봅니다.

내가 호랑이를 못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 속에 있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깨달음)조련사가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를 여전히 제압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의 사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원수 마귀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성령의 빛을 공급받는 빛의 사람이 돼야 황제의 논리 돈과 경제의 논리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도 빛된 그리스도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5:8-9)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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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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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도)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캄캄한 서커스 공연자에서 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호랑이들을 조련한 그 조련사처럼 저도 빛의 자녀로 살게 해 주세요.”

이 세상의 빛이 없어도 주님을 참된 빛으로 생명의 빛으로 모시고 일평생 살게 해 주세요.”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세력이 주도하고 온통과 돈과 명예와 권력의 어둠 속으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빌립보 가이샤라처럼 황제의 논리 돈의 논리 쾌락의 논리가 온통 우상처럼 떠받드는 세상입니다.”

이런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세상은 내버려두라고 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을 더 갈망하라고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이 시간에 저희 심령 가운데 찾아오셔서 저희들의 심령에 진리와 생명의 빛으로 감싸주시옵소서.”

저희의 연약함과 무능함 위에 능력의 빛을 비추사 세상에서 욱여쌈을 당하는 이 혼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2024년 주님의 빛 가운데 행하여 거짓과 진리를 몰아내고 오직 빛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별빛 속을 걸으며 주의 은혜 헤어보니 수많은 별보다 더욱 크신 은혜라

저 별빛 보다도 따뜻한 은혜 저 달빛 보다도 애닯은 그사랑

주님 내게 값없이 이사랑 주셨으니 이젠 빛진자로서 더욱 주만 사랑하리

 

낙엽위를 걸으며 주의 은혜 헤어보니 수많은 잎보다 더욱 많은 은혜라

황금빛 보다도 소중한 은혜 노을빛 보다도 포근한 그사랑

주님 내게 값없이 이사랑 주셨으니 이젠 빛진자로서 더욱 주만 사랑하리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빌립보 가이샤라처럼 모두 황제의 논리 돈과경제의 논리를 우상처럼 떠받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은 믿음의 자녀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세상의 낙심과 절망을 통해 두려움과 무력감을 불어넣고자 하는 게 사탄의 세력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변화산에서 천사처럼 변화된 모습을 통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을 미리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빛의 모습 사도 바울에게 다가오신 진리와 생명의 빛을 오늘 우리에게도 비추시고 감싸주시길 원하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어둠에서도 호랑이들을 조련하는 그 조련사처럼 오늘 우리가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주님은 능력의 빛으로 우리를 감싸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주님의 그 빛 속에 거하게 하시고 빛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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