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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가복음

곧 그물을 버려두고(막1:12-28)

by 똑똑이채널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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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살펴봤지만 마가복음은 요한 마가가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수행원으로서 로마에서 순교당한 그 베드로를 돌보고 심부름을 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등 베드로의 동역자로 살았던 그가 베드로 사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삶을 정리한 책이 바로 마가복음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공통된 관점을 갖고 있는 공관복음서, 곧 마태와 마가와 누가복음은 서로 다른 점도 있지만 공통된 부분도 많이 있는데, 아마도 그 부분이 맨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마태복음의 특징은 예수님에 대해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드높이고 있다면 마가복음은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드높이고 있고, 누가복음은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을 높이고 있고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을 드높이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 각자 다르게 묘사한 것은 각자의 사역했던 대상과 이 복음서를 받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이죠. 마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면서 썼기에 왕이신 예수님을 강조한 것이었고, 마가는 지배계급이었던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썼기에 인간을 섬기기 위해 오신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했고, 누가는 헬라인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에 철학적 관점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했던 거죠.

그래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짧고 간결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는데, 마가는 예수님의 탄생설화를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계보를 소개한 것에 비해 마가복음에는 그게 없다는 점이죠. 대신에 곧장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가 베드로 사도와 주로 사역한 곳이 로마요, 또 이 복음서 역시 그 대상이 로마 사람들을 바라보고서 썼기 때문이죠. 그래서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맨 처음에 언급하기보다 오히려 곧장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세례 요한이 아무리 의롭고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예수 그리스도에 비하면 아무런 것도 아니라고 마가복음서에서 밝혀주고 있죠. 그 분의 신발끈을 묶고 푸는 것조차 감당치 못할 자요, 자신은 물로 세레를 베풀지만 그 분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분이라고 고백을 하죠.

그런데 왜 하필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백성의 죄와 자신을 일체화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받아야 하는 세례를 예수님께서 받지 않으면 결코 인간과 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인간과 일체화되는 것 자체가 복음 중의 복음 아닙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그렇고, 인간처럼 세례를 받으신 것도 똑같은 이치죠.

그렇게 인간과 일체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고, 하늘 아버지의 음성 곧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려왔죠.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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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12-14절입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시자마자, 이제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 몬 상황입니다. 그곳 광야에서 40일 간 지내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죠. 그 중에 기억나는 시험이 세 가지가 있죠.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보라는 것, 높은 데 뛰어 내리면 천사들이 네 발을 붙잡아 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내게 절하면 천하 만국의 권세를 다 주겠다는 그런 시험 곧 Temptation 유혹이었죠.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해답을 얻게 하려고 주시는 하나님의 시험은 Test인데 반해 마귀 혹은 사탄이 주는 악한 세력들의 시험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시험이요 그 시험들은 모두 유혹에 해당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의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은 Test 곧 그로 하여금 더 귀한 보석과 같은 믿음으로 세우시사 그 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자로 더 귀하게 세워주시고자 하는 시험이었죠. 그러나 아담과 하와를 시험한 그 유혹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하는 것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가져오는 시험이죠. 자기 자신의 영혼을 죽이게 하는 유혹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마귀가 주는 유혹의 차이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광야에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중에도, 13절의 마지막 말씀처럼 “천사들이 수종들었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냄 받은 존재들입니다. 바꿔 말해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귀나 사탄의 세력들에게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수종들도 섬긴다는 사실입니다. 그 천사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할 수도 있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돕는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본문 14-15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신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찼고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셨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를 부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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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문 16-20절까지는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를 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제자를 부르시고 선택하시는 장면 중 하나죠. 그곳 갈릴리 해변에서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고, 또 19절에서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다른 8명의 제자들도 부르셨는데, 그 중에 또 하나의 형제 사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곧 작은 야고보와 그 형제 ‘레위’ 곧 ‘마태’가 그들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는 세 형제가 포함돼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 형제가 목회자나 장로가 된 경우도 있고, 자매가 둘 다 권사가 된 경우, 그리고 형제나 자매가 함께 선교사가 된 경우도 많죠. 다만 주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되고자 하는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또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오늘 본문에서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다 믿음이 출중해서 그렇게 했겠구나, 싶지만, 실은 그들의 믿음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부르시는 능력이 더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믿음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총이 더욱 크기 때문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 21-28절은 이제 갈릴리에서 가버나움으로 이동해서 안식일을 맞이해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침 그 회당에 귀신들린 자가 있어서 ‘그 귀신을 내좇아 주신’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태껏 귀신을 내 좇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지,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놀랐다는 점이죠. 그러면서 27절에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하고 말합니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귀신들을 내 쫓으시는 능력을,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보게 된 것입니다. 왜 이와 같은 사건을 보여주신 것입니까?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심을 만 천하에 알도록 하기 위함이시죠.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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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이와 같은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마가가 계속 강조한 단어가 있습니다. 10절에 “곧”, 12절에 “곧”, 18절에 “곧”, 20절에 “곧”, 그리고 21절에 “곧”이라는 단어가 그것입니다. ‘곧’이란 at once, immediately ‘즉시’란 뜻이죠.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 분의 부르심 앞에 제자들이 곧 즉시로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한다면 ‘곧’ ‘즉시로’ 순종하여 영광돌리는 주님의 자녀들, 주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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