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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말씀을 통해 종교적인 형식에 따라 금식하며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그래서 우리의 내면 안에 있는 낡은 부분이 있다면 주님을 모시기에 온전한 심령으로 변화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안식일에 주님의 제자들이 벼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두고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다윗과 그 부하 장수들이 성막의 진설병 떡을 먹은 것을 이야기하시면서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듯이, 율법의 형식적인 관점에 치우치지 말고 그 의미와 내용을 되새김질하면서 살도록 하고, 인자는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든 날의 주관자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바꿔 말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들이 실은 주님의 날이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 3장의 초반부도 실은 어제 읽은 안식일 논쟁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님께서 그 안식일에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보고 고치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주님의 그 대답 앞에, 바리새인들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살리는 것이 선한 일이요,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악한 일임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란 것을 그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왜냐하면 그것에 대답하기로 하면 예수님의 페이스에 말려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그런 그들의 악함을 아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당신이 해야 할 일,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병든 자를 고치고, 소외된 자를 회복시키는 것, 그 일을 행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요, 그것이 그 영혼을 회복시켜주시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자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나오죠. 본문 6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이른바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헤롯당들과 함께 예수를 죽이고자 의논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라는 말에 대한 어원을 언젠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이후에 율법 준수에 목을 매건 사람들이 나왔으니, 그들을 일컬어 ‘바리새파’ 곧 분리주의자란 뜻을 지닌 자들이 유대 사회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했죠. 그러니 그들은 정치나 권력과는 거리를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신약시대에 헤롯 대왕과도 거리를 둔 사람들이었고, 권력이나 정치적인 행정과도 전혀 결탁하지 않는 자들이었죠.
그랬던 이들이 지금 누구와 손을 잡고자 하는 것입니까? 헤롯 당, 곧 권력과 정치력과 손을 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을 치려고 하는 까닭이죠. 바로 그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고 말입니다.
이것은 큰 그림으로 보면 이런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그래서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놓으면서 생을 바쳤는데,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게 목적이었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데,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은 지금 그 반대편에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겉으로는 그들의 만의 율법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그들의 내면은 이미 사탄의 세력속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탈을 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본문 7절 이하의 말씀은 그런 세력들의 연합과 활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의 능력과 역사가 더욱더 퍼져나가는 상황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역과 말씀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랐고, 심지어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까지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온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온 이스라엘 전역이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물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인파가 얼마나 많았는지,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까? 아무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서 금식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안식일 논쟁을 벌이고, 또 헤롯 당국자들과 결탁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지라도, 그들이 아무리 율법에 대해 자랑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그 주인공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곧 진리요 생명 그 자체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죠.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업적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생명을 무엇으로 비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그래서 더더욱 예수님 앞에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 13-19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온전히 반응하며 함께 세워갈 12명의 제자를 뽑는 상황이죠. 본문 14-15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가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방식과 그들에게 부여한 사명을 주목해 보십시오. 13절에서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께서는 어떤 자격과 조건으로 사람을 세우신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자격과 조건을 따졌다면 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이 아니라 똑똑한 예루살렘의 식자층을 제자로 삼으셨겠죠.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자들을 원하셨다면 굳이 갈릴리를 다니지 않았겠죠.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일하는 제자’로 삼으신 것 역시, 차별을 두고, 차이를 둔 게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신명기 7장 7-8절 말씀도 똑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능력이 있고, 세례 모든 민족 가운데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긍휼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일하는 제자들’로 부르시는 것도 이와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고,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당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당신의 동역자로 삼아주신 것,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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