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는 열왕기상의 연속입니다. 본래 단권으로 된 열왕기서도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가 세계를 재패할 때 세계 각처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케 했는데, 그때 72명의 학자들이 그 성경을 번역했다고 해서 70인역 성경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단권의 열왕기서가 사 하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 전통을 라틴어 벌게잇트과 영어 역본이 이어받았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열왕기하서의 기록자도 단권으로 된 것을 가정할 때 유대 전승의 탈무드를 따라 예레미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더 정확하게 본다면 바벨론 포로를 거치면서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후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제1차 포로귀환 이전의 편집자가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하지 않았나 생각하죠.
그럼 열왕기하서의 내용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열왕기상서의 내용은 1-10장까지 전반부로, 즉 솔로몬의 ‘통일왕국시대’를 보여주었고, 11-22장 마지막까지는 분열왕국시대의 모습을 그려줬죠. 그 중 후반부는 11-14장까지 남북분열 왕국의 과정, 15장 1-24절까지는 남 유다에 속한 두 명의 왕,즉 르호보암과 그 아들 아비얌, 15장 25절-16장 28절까지는 북 왕국의 다섯 명의 왕들, 즉 여로보암과 그 아들 나답, 그 밑의 부하장수 바아사가 역모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그 아들 엘라가 통치한 모습, 그리고 시므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잡는데 7일 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뒤이어 오므리가 역모를 꾀해 왕권을 잡는 모습, 16장 29절-22장 40절까지는 북 이스라엘에서 악한 왕 아합의 통치, 22장 41-50절까지는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22장 51-53절까지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 관한 모습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열왕기상서의 후반부 내용인데, 사실 남북의 왕들이 겹쳐서 등장하고, 그 속에서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도 활약한 장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서도 1-17장까지는 남과 북의 왕들이 뒤섞여 등장합니다. 그리고 18-25장까지는 남유다 왕국의 왕들이 연이어 등장하다가 끝맺습니다. 그래서 1-8장은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죽음과 더불어 엘리사 선지자가 활약하고, 9-16장까지는 남북의 여러 왕들이 뒤섞여 등장하고, 17장에서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당한 모습, 그것이 B.C. 722년의 일이죠. 후반부 18-24장까지는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 그리고 25장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모습이 나오죠. 그 때가 B.C. 586년의 일이죠. 어찌됐든 열왕기하서는 열왕기상서의 후반부를 계속 잇고 있는데, 그만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신저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이 말씀은 열왕기상서에서 그려주는 다윗 왕의 죽음 직후의 상황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말씀이죠. 열왕기상2장 12절은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다윗 왕이 죽고 난 후 솔로몬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은 더욱 견고했다는 뜻이죠. 그때의 ‘견고하다’는 말씀은 단지 국력이 강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위에 국가의 기강이 바르게 세워지고 공의와 정의가 제대로 시행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서를 시작하는 첫 마디는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1절) 이것은 아합 왕의 죽음 이후에 북 이스라엘의 국력이 쇠락해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말씀이죠. 이전에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는 아합의 죽음과 함께 그 나라가 배반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아합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아합은 아내 이세벨의 모략으로 선량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기회가 있었죠.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의 집안에 심판을 예고했죠. 이른바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너의 피도 핥을 것이고, 너의 아내 이세벨의 피도 그 개들이 핥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 심판의 메시지를 들을 때 아합은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겸비한 아합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당대가 아닌 그 아들의 대에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 심판의 신호가 오늘 본문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 관한 급작스런 지병이죠.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 육신의 질병이나 연약함을 통해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하시죠. 건강할 때는 잘 깨닫지 못하다가 몸이 아프면 육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죠. 그런데 아하시야는 어떻게 하는가? 자신의 병세를 두고 하나님을 찾는가?
본문 2절에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아하시야는 갑작스런 질병 앞에 하나님보다 이방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찾습니다. 그가 과연 하나님의 능력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 아합이 통치할 때 아합 너머에 살아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수차례 목격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8절의 말씀만 봐도 환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가 이방 신 바알세붑을 찾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본문 3-4절의 말씀을 엘리야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너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바꿔 말해 ‘너는 죽을 것이다’, 하는 말씀이죠. 그때 아하시야가 자기 사환에게 말하죠. 누가 과연 그런 말을 했느냐, 그러자 본문 8절에서 그 상황을 이렇게 소개하죠.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아하시아가 어떻게 해서 엘리야 선지자를 기억하고 있겠습니까? 그는 아버지 아합의 시대에 활동한 엘리야를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죠. 엘리야를 목격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목격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무시한 처사죠.
그래서 그는 자기 죽음을 예언한 엘리야에게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보내죠. 비무장 상태인 엘리야에게 군사 50명을 보냈다는 것은 엘리야를 에스코트해서 데려오고자 함이 아니라 체포령을 내린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오십부장과 군사50명을 하늘의 불로 태워버립니다. 이른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그 제단을 살랐던 하늘의 불이 그들을 잿더미로 만든 것이죠. 그러자 아하시야는 다시금 50명을 또 보내죠.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심판의 불을 내리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죠. 아무리 아하시야가 완고하고 교만하다고는 하지만 그의 명령에 따르는 군사들을 순식간에 100명씩이나 죽일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하시야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경고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반기를 든 모압 나라를 통해 예고하시고, 그의 질병을 통해 경고하시고, 그의 친위대 군사 100명을 죽임으로써 아하시야는 물론이요 앞으로 오므리 왕조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 왕국도 심판하실 것임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하시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군대도, 그의 안락한 왕궁도, 그 어떤 것도 그를 지켜주지 못하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는 침상에서 병이 든 채 죽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본문 13-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하시야의 명령을 따라 엘리야를 찾으러 간 세 번째 오십부장이 바로 그죠.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13b-14절) 그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 앞에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며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데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열왕기상의 후반부도 그렇고 오늘 열왕기하서 1장에서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계속 북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과연 누가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게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나의 교만을 꺾고, 오직 절대주관자이신 하나님께 항복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을 구원케 되는 유일한 길이요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앞에 비천함을 고백하는 자, 낮고 낮은 자의 심령을, 건져 올려주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다윗 왕에 이어 솔로몬이 통치할 무렵 그토록 견고했던 이스라엘이 분열 왕국 이후에 급격하게 쇠퇴합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권을 잡을 때엔 모압도 배반하고, 왕 자신도 죽을 병에 걸렸는데,
그 지경에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 그의 완악함과 교만함 속에서 100명의 군사를 보냈어도 소용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긍휼을 덧입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길임을 믿습니다.
저의의 비천한 심령, 낮고 낮은 심령, 가난한 심령을 굽어살피사 새롭게 세워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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