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 이스라엘의 9번째 왕 여호람이 통치할 무렵, 엘리야는 자기 사명을 다한 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회오리바람에 이끌려 하늘로 승천했죠. 그때 그의 겉옷을 떨어뜨리게 되었는데, 그 겉옷을 주운 엘리사는 그것으로 요단강을 가르는 능력을 행하게 되었죠. 이른바 엘리야의 겉옷, 구체적으로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를 덧입게 된 것이죠. 그런 엘리사가 맨 처음 행한 이적은 여리고 성읍의 쓴 물을 좋은 물로, 죽어가는 곳에 생기를 불어넣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벧엘에 이르러 보여준 사역은 ‘대머리여 대머리여’하고 놀려대는 어린 아이들, 성경의 원문은 17세에서 30대 초반에 해당하는 나이로,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보다 젊은이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요셉의 나이, 그리고 이새의 아들들가운데 말째 아들에 해당하는 그 젊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욱이 그 벧엘이 바알과 아세라 신전이 있는 곳이니, 그 젊은이들도 부모의 우상숭배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이들임이 틀림 없죠. 그래서 ‘엘리사 너도 네 스승처럼 하늘로 올라가봐라’하고 조롱한 것이었죠. 궁극적으로 이곳에 벧엘의 신전이 있는데, 과연 네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겠느냐, 하고 조롱했던 것이죠. 그때 엘리사는 레위기 26장 21-22절의 말씀을 그대로를 전달했죠. 하나님을 청종하지 않으면 너희의 죄대로 들짐승을 보낼 움킬 것이라, 하고 말이죠. 그래서 수풀의 암곰 2마리가 나와 그 중 42명의 젊은이들을 찢어 죽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9번째 왕 여호람이 남 유다의 4번째 왕 여호사밧과 함께 모압을 치러 가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본문 1-4절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람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죠. 그의 부모 곧, 아합과 이세벨이 섬겼던 바알의 주상을 제거했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의 시조였던 여로보암이 범한 죄는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쪽의 단과 남쪽의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신상은 그대로 두고 섬기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미지근한 신앙 모습을 보인 여호람은 자기 속국이었던 모압이 배반하자, 남유다 왕 여호사밧과 모압과 인접해 있는 에돔, 곧 자기 형제였던 나라와 함께 ‘동맹군’을 결성하죠. 그래서 본문 8절 말씀처럼, 모압의 배후를 치려고 사해바다 남부를 돌아 에돔의 광야길로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7일 동안 그 길목을 향해 나가갔는지, 그곳에 물이 없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 상황입니다. 그 위기 앞에 어떻게 하는가? 본문 10-12절에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북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탄식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고, 그에 반해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선지자, 곧 하나님께 의뢰하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상황이죠. 그때 북이스라엘의 병사들이 하나님의 선지자, 곧 엘리야를 수종 든 엘리사를 소개합니다. 그러자 그들 세 명의 왕들이 엘리사에게 나가죠.
그런데 그 미지근한 신앙의 표본이던 여호람이 뒤늦게나마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주신다는 점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여호람을 도와준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여호람을 돕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호사밧의 얼굴 때문이죠. 여호람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여호사밧 얼굴 때문에 그 상황을 돕겠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브라함 때문에 조카 롯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처럼 말입니다.
마찬가지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고, 우리의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경우도,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때문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며, 더욱더 그 분의 얼굴을 닮아야 할 것이고, 절박한 가운데 있는 이들이 우리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께 긍휼을 받도록,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여호사밧의 신앙의 얼굴을 보신 하나님께서 여호람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십니까? 본문 16절 이하를 보면, 그 골짜기에 개천을 파면, 하나님께서 그 골짜기에 물을 가득하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해 가축과 짐승들이 모두 마실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작은 일이요, 더 큰 일은 이 개천의 물들을 통해 모압 사람들까지도 너희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 에돔 쪽에서 물이 흘러나와 그 개천을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게 되죠. 뿐만 아니라 햇빛에 비친 그 물빛을 본 모압 군사들은 그 물을 피로 생각한 채 그 세 나라, 곧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그리고 에돔 왕들이 자중지란이 일어나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생각한 채, 모압의 군대장관이 성문을 열어제치며 군사들을 이끌고 ‘진격 앞으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모압 군사들이 그 개천가 근처의 골짜기까지 쳐들어오자, 매복한 채 숨어 있다가, 한 꺼번에 양쪽에서 나타나 그 모압 군사들을 도륙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 자신들에게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이제 전령을 통해 소식을 들은 모압 왕은 자기 성벽을 더욱 단단하게 걸어 잠그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연합군을 이끈 여호람이 이제 그 성벽까지 허물고 성을 완전히 점령할 무렵입니다. 그런데 그때 벌어진 희한한 일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27절에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 왕이 자기 성에서 전세가 불리한 것을 알고, 자기들이 믿는 ‘그모스 신’에게 자기 큰 아들을 불로 태워드리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광경을 바라본 그 연합군의 수장인 여호람이 그 성의 점령을 멈추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버렸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이 부분에 대한 현대인의 성경 번역본이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잡아다가 성벽 위에서 불로 태워 모압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연합군들은 자기들에게 내릴 재앙을 생각하고 두려워 그 성에서 물러나와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모압 왕이 자기 큰 아들을 자기들의 신 그모스에게 바치는 그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그 신이 자기 병사들을 해롭게 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서 그만 전쟁을 멈추고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채, 여전히 미지근한 신앙의 표본으로 남는 여호람 왕임을 알게 해 준 것이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완전히 뽑아내야 할 신앙의 모습이 있다면 미지근함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 듣고 경험한 여호람인데, 그래서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이 섬긴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긴 했는데, 여전히 황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그 반쪽짜리 신앙이 그것이죠. 우리 자신도 어려울때나 잘 나갈때나, 힘들때나 승승장구할때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사는 은혜를 주님께서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베풀어주셨건만
여전이 우리는 이기심과 자기만족의 길에서 떠나지 못하는 미지근한 신앙인은 아닙니까?
어려울 때만 주를 찾아 순종하고, 그 어려움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지근한 모습은 없었습니까?
어떤 환경과 상황속에서도 굳건한 주님만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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