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스가랴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슥11:1-17)

by 똑똑이채널 2023. 9. 21.
728x90
반응형
SMALL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오해하는 것이 있죠. 하나님의 말씀은 평화의 복음이며 위로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평화를 전하는 복음이긴 하지만 무조건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평화란 원수된 관계를 회복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원수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면 그것은 입바른 소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구약의 12 선지자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죠.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물도록 했고, 그때에만 화평이 주어진다고 선포한 게 그것입니다. 어제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그 때에만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복이 넘친다는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것은 출애굽의 모습만 봐도 환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9가지 재앙을 내리신 이유, 그리고 마지막에 장자를 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판에 출애굽 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그런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까? 더욱이 애굽의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굳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가? 하나님께서 아무런 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들을 구원해 내실 수는 없었습니까?

아니죠. 아무런 것도 하지 않는 채, 그들을 구원해 내실 수 있었죠. 하지만 구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0가지 재앙이라는 그 틀에 그들을 넣으신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이스라엘도 그 피가 없으면 전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킨 것입니다. 그 피를 볼 때에만 너희들에게도 죽임이 넘어갈 것이라는, 그런 존재임을 그런 관계임을 그들의 눈으로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신약시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죠. 누구에게나 구원의 문은 열려 있지만, 누구나 자연적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의지하는 자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죠. 그 분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결단코 화평의 관계, 샬롬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는 것이죠.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5:1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잘 사는 것이 평안이고 행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지쳐 있는 자에게 세상의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것으로 진정한 평안, 영생의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몸에 골음이 생기거나 물혹이 생겼을 때에는 정확한 진단과 함께 도려내는 게 진정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외친 복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들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고, 성전의 제사에 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탐욕이라는 우상을 좇고 있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들 곧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눔과 베품이 없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어찌 하나님의 이른비와 늦은 비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그 많은 선지자들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강력하게 회개를 선포한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에스겔 선지자는 그 당시에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 곧 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좇는 것 같지만 다른 한 마음으로는 점을 치며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서 이렇게까지 외쳤습니다. 에스겔 13장 9-10절입니다.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그 당시에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평강하다고 외치고 있었던 거십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만 하면 그리고 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선포한 것, 그것이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가 보기에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평강, 하나님의 샬롬일 수가 없다는 것이죠. 오히려 속은 썩어들어가면서도, 속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마음도 없는데 겉만 하얀 회로 덧칠해 놓은 상태라고 외친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899457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product.kyobobook.co.kr

오늘 본문의 스가랴 11장의 말씀도 그와 똑같습니다. 본문 말씀은 전부 이 땅의 안위와 행복과 자아를 기쁘게 하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요, 저주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당대 최고의 목재입니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도 마찬가집니다. 전부 인간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전부 불사르고 넘어지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자부심과 인간이 추구하는 영광을 전부 불태워 버리고, 모두 빼앗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저주라고, 화라고,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는 오히려 그것이 평강이고 복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 6절과 9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하나님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바산의 상수리나무들과 같이, 자기의 가치와 자랑으로 자부심을 가진 인간들을 결코 살려주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이웃 나라에게 패망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product.kyobobook.co.kr

실은 이 모습을 이미 유대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지 않았습니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을 당해, 그 땅에 포로로 끌려갔던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이제는 메시아의 왕국을 꿈꾸는 그 시대에, 과거의 그 일들을 떠올리면서까지, 진정한 평안, 진정한 샬롬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스가랴 1-8장까지는 성전재건과 관련된 말씀이라면, 9-14장까지 이 땅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바로 그 메시아가 통치할 나라가 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그와 같은 심판과 저주의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오셔서 너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이끌 때에, 너희들은 예전처럼 외적인 부와 번영만을 좇지 말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하라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진정한 샬롬, 화평의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길임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본문의 심판과 저주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집나간 탕자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아버지 품에 돌아왔을 때, 다시금 심판과 저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식이 그렇게 망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다시는 아버지 품을 떠나는 일 없이 아버지의 품 안에서 진정으로 아버지를 신뢰하며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는 게 행복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말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