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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8장까지로 그 내용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성전건축을 중단하자 성전건축의 중요성을 8가지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9-14장까지로 그 내용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분이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했으며, 그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의 정복자들은 나귀를 타지 않고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는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타심으로 세상의 정복자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 평강과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어려움에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헤쳐 나갈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언약의 메세지입니다. 이것은 스랴서의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께 구하는 것은 그 분의 뜻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스가랴가 말씀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1절에서 ‘봄비’로 표현되어 있는 히브리어 ‘말코쉬’는 ‘늦은 비’라는 의미입니다. 봄비가 왜 늦은 비인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비에 대한 개념은 우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크게 두 차례 비가 내립니다. 파종할 때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고, 결실할 때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죠 늦은 비는 태양력으로 3-4월에 내리는 비입니다. 곡식의 결실을 돕는 역할을 해 주는 비죠. 이른 비는 10월부터 내리는 비로서 농부가 씨를 뿌린 후에 씨앗들이 그 빗물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씨앗의 성장을 돕는 비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3-4월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 해야 할 것 같지만, 이스라엘에서 그것을 ‘늦은 비’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씨앗 파종을 10월에 하기 때문이죠. 땅에 뿌려진 씨앗의 입장에서 볼 때, 10월에 내리는 비는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하기에 ‘이른 비’가 되는 것이고, 3-4월에 내리는 비는 곡식을 잘 여물게 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늦은 비’가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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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크게 3번의 추수시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추수시기는 보리를 추수하는 초실절입니다. 이 날은 한 해의 시작점에서 첫 번째 보리를 수확하시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첫 수확한 보리를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리는 날로 삼습니다. 그 다음은 밀을 추수하는 오순절 또 다른 말로 칠칠절이라고 하죠. 첫 보리를 수확하는 초실절로부터 7주가 지난 그 다음 날, 곧 50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순절 혹은 칠칠절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 다음은 나무의 실과를 추수하는 초막절입니다. 이 날은 1년 중 가장 큰 절기로서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로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풍성한 추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비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비가 내리는 것으로 묘사하는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요엘서 2장 23절에 보면, “시온의 자녀들이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저가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시고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리니 곧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음이로다” 또 우리교회 예전의 표어인 호세아 6장 3절 말씀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중단된 것을 ‘가뭄’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이스라엘 땅에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이 있었죠. 그 이유는 아합 왕이 바알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비가 내리는 것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기후와 토양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토양은 석회암, 현무암, 누비사암이 풍화와 산화작용을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토양은 점성이 강해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고 있지만, 문제는 물입니다. 풍부한 물만 공급되면 농사하기에 아주 좋은 토질이 되기에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비는 농사에 필수불가결한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 묘사하곤 했던 거죠.
본문 1절을 보면, 봄 비가 올 때에 하나님께 비를 구하면 소낙비를 내려 주심으로 밭의 채소를 풍족히 수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는 의미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마다 소낙비와 같이 넘치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드라빔과 복술자를 의지함으로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2절에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드라빔은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작은 물건입니다. 창세기 31장에 야곱의 아내 라헬도 그 드라빔을 간직하고 다녔던 것을 알게 해 주죠. 오늘날로 말하면 부적과 같은 것으로 여기면 될 것입니다.. 또 ‘복술자’가 나오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무당이나 점쟁이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심판을 받은 이유는 바로 그 우상숭배 때문이었죠. 하나님만을 섬겨야할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기는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은 뼈저린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죠.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민족의 비극을 또 다시 초래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023년을 살고 있는, 오늘날에는 신앙인들이 그런 미신과 우상과 점술자를 찾지 않고 있는가? 오래 전 한국교회언론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점술인과 역술인이 무려 80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연간 미신업에 거래되는 예상 금액이 1조원에 달하고 있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미신을 좇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느 책을 보니까, 그런 재미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년운세를 점치는 집이 보이 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갔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점쟁이 하는 말이, 올 해 10월에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조심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분이 돌아오는 주일날 교회에서 무슨 기도를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10월 달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안 좋은 일이 잘 넘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죠. 과연 그런 신앙인들이 있기나 하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그런 신앙인들이 많이 있다고 하니, 어떤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죠.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오직 말씀 앞에 바로 서서, 자신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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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12절입니다.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가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이 미워서, 죽이고자, 싫어하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바로 세우시기 위한 사랑의 징계 차원인 것이죠. 그로 인해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로 바로 세우시려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설령 우리의 코가 깨지거나 그 점을 친 사람처럼 9월달에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 수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기 때문이요. 우리가 기드론 골짜기를 지날 때에 바로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더욱더 다가설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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