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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스가랴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슥7:1-14)

by 권또또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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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스가랴 7장 말씀은 실은 ‘금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3절 말씀이 이렇습니다.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페르시아 왕 다리오 통치 4년 아홉째 달 4일에 주님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 임했는가? 벧엘 사람이 몇 몇이 부하들을 선지자 스가랴에게 보내서, 우리가 계속 오월에 금식을 해야 하는지, 물은 상황인데, 그때 그 물음에 대해 주님께서 주신 대답인 것입니다.

스가랴서 8장 19절을 보면 바벨론 제국에 이어 페르시아 제국의 포로기를 보내고 있던 유다인들에게는 포로기간 동안 일 년에 네 번의 금식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넷째 달, 다섯째 달, 일곱째 달, 그리고 열째 달에 행한 금식이 그것이죠. 유대인들이 그렇게 네 차례나 금식을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넷째 달은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억하며 한 금식이었고, 다섯째 달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불태운 것을 회고하며 한 금식이었고, 일곱째 달은 유다 총독 그달랴가 암살 된 것을 기억하며 한 금식이었고, 그리고 열째 달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 된 것을 기억하며 한 금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들도 한 두 번 정도 금식해 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 끼를 금식했든, 3일을 금식했든, 심지어 40일을 금식했는지, 우리들도 금식을 한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없을 수도 있죠. 한 끼라도 굶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도저히 금식을 할 수 없는 분도 있죠. 그런데 금식을 하시는 분들은 그 당시 포로기의 유대인들처럼 이런 저런 이유가 있죠. 사순절 기간 동안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하루 한 끼를 금식했다든지, 입시를 앞에 둔 자녀를 위해 금식했다든지, 취업이나 결혼 문제를 놓고 금식을 했다든지, 또 자녀의 진로문제를 놓고 금식했다든지, 자신의 병이나 다른 분의 아픈 병을 고쳐달라고 금식을 했다든지, 그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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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그 금식과 관련하신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4-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바벨론 포로기인 지난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며 애곡하기는 하였으나, 너희가 진정, 나를 생각해서 금식을 한 적이 있느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도 너희 스스로 만족하려고 먹고 마신 것이 아니냐? 그리고 너희들의 수가 불어나고, 마음 놓고 살 때 내가 이미 이전 예언자들을 통해 아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느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유대인들의 금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금식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특히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하는 말씀이 두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금식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의 대부분의 금식이 그들 자신을 위한 금식이었다는 것이죠.

본문 8-1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금식할 때 행해야 할 그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공정하게 재판을 하고, 서로 긍휼히 여기며, 자비를 베풀고,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것을 약탈하지 않고 도리어 돕고 나누는 삶,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고, 단지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금식이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이루고 채우기 위한 금식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생각치 않고 사람을 생각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먹지만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금식을 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죠.

놀랍게도 이 말씀,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는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듯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본문의 이 말씀은 이사야 58장 6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라, 집없이 떠도는 나그네를 찜질방에들여 잘수 있게 하라, 단벌 신사에게 옷을 사 줘라, 8촌지간의 어려운 형제에게 너의 것을 무상으로 나누고 베풀도록 하라는 그 말씀,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매일 같이 상큼한 새 날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너의 아픔이 급속하게 고침받고자 한다면, 네 앞에 공의로움이 펼쳐지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너를 감싸고 지켜주길 원한다면, 그리고 정말로 네가 다급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신속한 응답해 주시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이 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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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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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우리는 일평생 두 가지 축을 실행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인 소유권과 주권을 내어드리며 온전한 예배자로 사는 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되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금식 그 자체, 밥을 굶으며 기도하는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아니라, 밥을 굶지 않을지라도, 밥을 먹고서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받으신 삶의 금식을 행하라는 것이죠. 그것이 곧 삶 속에서 진실한 재판을 하고, 서로 인해와 긍휼을 베푸는 삶,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억압하지 말고, 사랑하며 베푸는 삶이 진정한 삶의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들을 위해 나누는 것이 실은 내 삶을 빼는 것이고, 내 돈을 빼 내는 것이고, 내 양식을 줄이는 것과 똑같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삶의 금식이 되는 것이고, 그런 삶의 금식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신속하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두 가지 중심의 축의 신앙관을 신실하게 행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삶, 아래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되 내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는 삶 말입니다. 인애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행하는 삶의 금식,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그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이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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